[발행인 칼럼] 낮은 자세로 새 출발하는 KBS Reset 뉴스

 

KBS 유원중 기자

(KBS 기자협회장)

 

언론은 절대 길들여질 수 없다는 자존심의 표현… 우리는 이미 승리했다

 

리셋 KBS 뉴스제작팀의 베이스캠프는 KBS 기자협회 사무실이다. 기자협회 사무실은 KBS 보도본부 안에 있다 2년 전 본사 외곽의, 사장실과 가장 먼 연구동 꼭대기로 쫓겨 난 바 있다. 협회장과 간사를 제외하곤 하루 종일 신문 배달 아저씨만 찾아오던 이곳이 요즘 북새통이다. 대략 10평 남짓 사무실엔 평균 7 ~ 8명의 기자가 자리를 틀고 있고, NLE 편집을 위한 컴퓨터 한 대와 기자들 개인 노트북이 책상 한 가득이다. 인터넷 랜선이 꼽혀 있는 협회장의 데스크톱도 이미 파업뉴스를 제작하는 후배들이 접수했다.

 

리셋 KBS 뉴스가 기존 KBS 뉴스와 다른 점은 파업 중인 기자가 만들고, 데일리가 아닌 위클리 뉴스, 생방이 아닌 녹화, 지상파가 아닌 인터넷을 근간으로 하는 방송뉴스라는 형식적인 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리셋 KBS 뉴스의 제작시스템은 기존 뉴스와 별 차이는 없다. 우선 KBS 뉴스제작시스템이 그대로 적용된다. 새 노조 초대 편집국장인 김경래 기자가 보도국장 격이고, 촬영기자 중 선임기자가 영상데스크다. 아이템은 회의를 통해 대부분 정해지는데 가끔 오더(?)가 내려오기도 한다. 영상취재를 나가려면 선임 촬영기자로부터 담당자를 배정 받아야 한다. 수천만 원짜리 ENG 카메라를 안 쓰고 수백만 원짜리 6미리 카메라를 쓴다는 점, 오디오맨이 없어서 취재기자가 카메라 삼각대를 들어야 한다는 점, 회사 차량과 운짱 형님 대신 택시를 이용한다는 점이 약간(?) 다르다. 뉴스 원고는 휴대용 녹음기를 들고 승용차 안에서 읽으면 방음장치가 된 부스에서 읽는 것과 비슷하다.

 

 

 

 

 

리셋 KBS 뉴스가 기존 뉴스와 가장 차별화 되는 점은 이렇다. 우선 리셋 KBS 뉴스엔 부당한 간섭이 없다. 일당백으로 일해야 하다 보니 거의 방치 수준의 제작자율권을 가지고 있다. 옛말에 가난한 집 형제들이 우애가 좋다고 했던가? 어깨를 부딪혀 가며 일해야 하는 리셋 KBS 뉴스의 작은 보도국엔 신뢰가 있고 격려가 있고 웃음이 있다. 기존 뉴스를 만들며 최근 보도본부를 무겁게 짓누른 갈등과 반목, 냉소가 여기엔 없다. 노트북과 서류들이 테이블 위를 점령한 탓에 중국음식이 배달돼 오면 그냥 신문지 깔고 땅바닥에서 식사를 하지만 KBS직원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다는 점도 매우 다르다.

 

 

한 때 대한민국 넘버 1 뉴스인 ‘KBS 뉴스9’를 제작하던 기자들이지만 소꿉장난 같은 리셋 뉴스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 한마디로 신나 있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KBS의 수많은 자료화면을 못 쓰고, 완벽한 편집시설을 못쓰고, 화려함을 자랑하던 3D 컴퓨터 그래픽을 못 쓰고 있지만 뉴스 내용만큼은 자신 있기 때문이다. 기존 뉴스가 완벽한 뉴스제작 시스템을 가졌지만 김비서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만큼 정권 편향적인 제도권 언론으로 추락했다면 리셋 KBS 뉴스는 완벽하게 독립된 언론사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네티즌들도 리셋 KBS 뉴스를 팟케스트 검색 순위 1위로 만들어주며 화답해주고 있지 않은가!

 

 

 

 

이번 KBS 새노조 파업의 구호는 <RESET KBS! 국민만이 주인이다!>이다. 그래 맞다. 이제 시작이다. KBSMBC 소속 방송기자들이 가지고 있던 선민(?) 의식을 떨쳐 내고 이제 정말 시청자,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기자들이 일반 중산층보다 특혜를 누리고 있는 나라들을 보라! 모두 후진국들이다. 과거 전두환 시대 기자들은 어땠나? 언론 통폐합 과정에서 살아남은 기자들은 거의 전설적인 특혜와 접대를 받고 이권에 개입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그 때 썩었었다. 구악 기자의 DNA가 대한민국 언론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은 시점이다. 언론인이 썩은 사회에서 민주화와 인권, 자유 시민의 권리는 모두 후퇴했다.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방송기자들은 좋은 학교 졸업해, 선망 받는 직장에 합격했고, 방송에 얼굴 좀 들이 밀면서 그렇게 자신이 대단한 사회인이 됐다고 착각했고 기득권의 맛을 깊숙이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나. 스스로 반성하자. 그 달콤함의 끝은 결국 모멸감이었다. 총칼은 안 들었지만 인사와 징계를 교묘히 이용해 언론 통제를 일삼은 MB 낙하산 사장과 그 수하들로부터 수 백, 수 천 명이나 되는 언론인들이 눈 뜨고 직업적 살해를 당했다. 000 방송사 기자라고 명함 내밀기가 창피한 시대를 살았다.

 

 

<뉴스타파>, <제대로 뉴스데스크>, <RESET KBS 뉴스>가 지향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는 MB정권의 언론 통제로 방송하지 못했던 뉴스들을 새로운 형태로 내보내자는 취지이기도 하지만 언론은 절대 길들여질 수 없다는 자존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리셋 KBS 뉴스를 만들고 있는 후배기자들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지금의 어려움이 정말 우리 뉴스를 튼튼히 하는 밑거름이 될 거라고, 이 소중한 경험이 앞으로 10년 또는 20년 정도 언론을 통제하려는 세력들에게 맞서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리셋 KBS 뉴스는 콧대 높았던 기자들을 리셋해 다시 태어나게 할 것이다. 더 낮은 자세와 따뜻한 시선으로 약자를 바라보라고, 권력과 자본을 날카롭게 감시할 때 언론인은 박수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직 파업 중이지만 이미 승리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