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박2일] 먹을 것만 싸 들고 간 아빠와 딸의 첫 번째 캠핑_국립공원 풀옵션 야영장 체험기_MBC 고현승 기자

 

나이 마흔이 넘어 본의 아니게 여유 시간이 생기면서 등산을 시작했을 뿐, 나는 캠핑은 잘 모른다.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3년 전 당시 남자들, 특히 아빠들 사이에 캠핑이 유행하면서 너도나도 캠핑용품을 사들였다. 질세라 브랜드를 따지고, ‘가성비’를 계산했다. 세단을 팔고 SUV로 바꿨다. 주말마다 산이며 바다에서 텐트를 치고 바베큐를 굽느라 땀 꽤나 흘려야 했다. 이 정도는 해야 대한민국 아빠 노릇한다 했다. 난 여전히 텐트보다는 호텔방이 좋지만, 나도 아빠였다.
10살, 딸아이가 3학년이 되면서 여름 방학 때 캠핑을 가기로 했다. 육아에서 엄마는 머리로 놀아주고, 나는 몸으로 놀아주는 역할을 맡았었고, 캠핑은 몸으로 놀아주는 쪽이라 내 몫이었다. 막막한 마음에 인터넷을 뒤졌지만, 다른 아빠들과 경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회사 동료들에게 물어봤다. 여러 조언들을 얻었고, 그중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모범답안을 택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풀옵션’ 캠핑
‘월악산 닷돈재 풀옵션 야영장 산막텐트’. 이름부터 길고 뭔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있을 게 다 있었다. 월악산은 국립공원이었으므로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1박 예약을 했고, 4만 원을 입금했다. 그리고 날을 꼽다 딸아이와 둘이 1박2일 캠핑을 갔다. 전날 밤 마트에서 즉석밥과 라면, 삼겹살을 사고, 각자 먹고 싶은 과자 2개씩을 골랐다. 먹을 것만 가득, 나의 낡은 승용차에 싣고 단둘이 길을 나섰다. 1시간가량 고속도로를 달렸다. 중간에 각자 먹고 싶은 간식을 골라 먹는 휴게소 놀이도 했다. 국도로 나오니 충주호였다. 길지 않은 호반 드라이브를 즐기다 산길로 접어들었고 잠시 뒤 캠핑장에 도착했다. 접수를 마치자 큰 플라스틱 상자를 실은 카트를 내게 건네줬고, 내 앞으로 배정된 산막 텐트까지 50미터쯤 끌고 갔다. 1박2일 캠핑의 시작이었다.

 

 

관리 잘 된 계곡과 숲에 ‘가성비’ 높은 캠핑
우선 우리의 텐트가 있는 캠핑장 풍경부터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채 열 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물소리도 수다스러운 계곡이 있다. 바윗돌로 만들어놓은 계단을 내려가면 시원한 계곡물이다. 폭은 10미터 남짓 한데 위에는 철다리가 있고, 물 위에는 징검다리도 있다. 아이들 물놀이를 위해 적당한 깊이로 물을 막아놓기도 했다. 국립공원답게 맑고 깨끗함이 잘 관리되고 있는 계곡물 속에는 송사리 같은 물고기도 금세 찾을 수 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튜브를 들고 아이는 물놀이부터 시작했다. 물장구치고 헤엄도 쳤다. 아빠도 어린애처럼 어린 딸하고 물놀이를 했다. 흠뻑 물놀이를 하고 나서 이번엔 물고기 잡기를 시작했다. 트렁크에 싣고 다니던 족대를 들고 와서 좁은 계곡에서 2인 1조로 번갈아가며 송사리를 몰아댔다. 계곡 위로 아래로 원정을 다니며 어로를 거듭한 끝에 손가락 굵기의 송사리들을 적잖이 건져 올렸고, 송사리들은 다음날 계곡을 떠날 때까지 딸아이의 포로로 붙들려있다 아빠의 설득 끝에 겨우 풀려났다.

숙소이자 식당인 텐트는 기대 이상이었다. 큼지막한 텐트(산막텐트는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될 만큼 천장이 높다)에는 등 따스한 온수매트와 베개, 이불 등 침구세트가 들어있고, 위에는 랜턴이 달려있다. 큰 플라스틱 상자를 열었더니 버너, 코펠, 칼, 도마, 수저 등 살림살이가 가득이다. 텐트 앞에는 식사를 위한 테이블과 파라솔도 있고, 바베큐 설비도 있다. 없는 게 없는 이름 그대로 ‘풀옵션’이었다. 캠핑에 초보보다 문외한에 가까운 아빠였지만, 숯을 주문해 삼겹살을 굽고 즉석밥을 데우는 정도의 상차림은 어렵지 않았다. 등산할 때에도 느끼는 거지만, 도시와 건물을 벗어나 자연의 품 안에서 먹는 음식에는 원초적인 자연산 감미료가 듬뿍이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다고 흡입하는 걸 보면 딸아이도 그렇게 느끼는 듯했다.

캠핑의 묘미는 아무래도 밤에 있는 듯하다. 고기 굽던 숯불에 나뭇가지를 더해가며 둘만의 작은 캠프파이어. 숟가락에 설탕을 녹이고 소다를 넣어 만드는 아빠 어린 시절의 달고나. 옆 텐트에서 새나오는 불빛 말고는 어둠이 너무 짙은 덕에 쏟아질 듯 촘촘한 별빛들. 텐트 속에 누워 하나씩 주고받는 귀신 이야기에 아이는 겁을 먹고 아빠는 웃음을 삼키고… 그러다 짙은 어둠에 젖은 채로 잘 자라는 말도 없이 둘은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은 아이의 바람과 나의 능력에 맞춰 라면으로 결정했다. 평소 집에서 라면 횟수에 제한을 받아온 터라 아이는 옆 텐트의 성대한 아침식사를 전혀 부러워하지 않았다.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만 물놀이와 주변 숲 산책까지 만끽하고는 점심 무렵 캠핑장을 떠났다. 그리고 캠핑장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오래된 시골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짬뽕으로 1박2일의 마지막 식도락을 챙겼다.

이렇게 꼬박 1박2일을 딸아이와 함께 하면서, 으레 그랬을 법한 얘기는 없었다. 아빠로서 바라는 바나 해주고픈 말은 일절 안 했다. 그냥 재미나게 놀았다. 많이 웃었고 내내 들뜬 기분을 잃지 않았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해마다 한 번 이상 방방곡곡 둘만의 여행을 다녀왔는데, 항상 아이보다 내가 얻는 게 더 많다. 그해 여름의 1박2일도 그랬다. 내년이면 중학생.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올해도 가기로 했으니 기다림 또한 나의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