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휴가] 연애 같은 결혼, 선택은 태교 여행!_YTN 최지환 기자

 

애지중지 지켜왔던 머리카락이 어느덧 빠지기 시작한 노총각과 시나브로 나잇살이 붙기 시작한 태릉(배드민턴 구력 8년) 노처녀가 불처럼 뜨겁던 여름날, 우연히 만났다. 맥주를 앞에 두고 과년한 나이와 결혼 압박에 대한 흉금을 터놓던 둘은 갑자기 눈에 스파크가 튀었으니…. 그들은 그해 여름 짧았던 연애를 ‘불꽃 같은 사랑’이라 부르며 ‘결혼생활을 연애처럼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음 해 여름이 돌아오기 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결혼에 골인했다.

‘연애 같은 결혼’을 위해 그들이 선택한 것은 ‘여행’이었다. ‘자녀가 너희를 속박에 이르게 하리라.’는 친구들의 조언은 그들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이미 그녀의 뱃속에는 2세가 자라고 있었다. 친구들의 말대로라면 출산 이후 제대로 여행 다니기 위해서는 몇 년이 더 필요할 터였다. 출산 전까지 그들은 최대한 많이 다니고, 많이 먹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더 늙기 전에 사진도 많이 찍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둘은 그렇게 쏘다녔다. 여수엑스포에서 발바닥이 까질 때까지 걸어 다녀보기도 했고, 남이섬과 춘천을 누비며 달달한 신혼 분위기를 맘껏 내보기도 했다. 거제와 통영의 푸른 바다를 눈에 담고, 벌교와 순천의 너른 지평선에 시름을 던져버리기도 했다. 멀리 나가지 못할 때면, 그들이 사는 전북의 산과 들 어디든 발이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먹는 것도 참 열심히 먹었다. 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는다는 그녀와 평소 입맛이 없다는 그는 마치 거짓말이라도 한 것처럼 대식가의 풍모를 자랑했다. 각 지역에서 특산물로 소문난 것이라면 꼭 먹어봤고, 신혼부부답게 삼단 찬합을 싸 들고 다니며 부지런히 먹었다.

그래서인가. 그들의 추억은 사진으로만 남은 게 아니라 2세의 DNA에도 뚜렷이 새겨지고 말았다. 엄마가 꼭 닮길 바랐던 아빠의 눈과 아빠가 꼭 닮길 바랐던 엄마의 얼굴형과는 정반대로 태어나, 손에 받아 들 때부터 만만치 않은 놈(?)임을 직감케 한 그들의 아들. 그는 폭주기관차를 연상케 하는 왕성한 활동력과 식신의 가호를 받은 왕성한 식욕으로 아빠의 지갑과 엄마의 허리를 아작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애 같은 결혼’을 꿈꿨던 그들은 이제 밤이면 직장과 육아에 지친 몸을 소파에 뉘이고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는 ‘노회한 부부’가 되었다.
“여보, 근데 그때가 좋았어? 아니면 지금이 좋아?”
“정신은 하나도 없지만 지금이 좋지 않냐?”
“그래, 그렇지? 근데 너 그때 나 아니었으면 결혼 못 했다. 그거 아냐?”
“웃기고 있네. 늙은 사람 구해준 게 누군데….”
“응.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 맥주나 한 잔 먹자.”
“그래, 근데 안주는 뭐 먹을 거야?”

아파트 창밖으로 보이는 저 수많은 불빛, 그 안에는 이렇게 가족의 시간이, 역사가 소리 없이 쌓여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수상한 시절, 부디 모든 이들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기만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