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휴가] ‘뚜벅이’ 여행객, 제주를 걷다_KBC 광주방송 정의진 기자

정의진

나는 ‘뚜벅이’다. 여행할 때도 걷기 좋은 곳을 먼저 찾는다. 작은 배낭에 책 한 권, 물통 하나 집어넣고 떠나기 좋은 곳. 그래서 나는 제주도를 기억한다.
3년 전, 애월읍의 한 작은 동네에서 3일간 지낸 적이 있다. 요란하게 굴러가는 캐리어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조용한 곳이었다. 이곳저곳 둘러보며 토끼 눈을 한 도시 처녀가 신기했는지 문턱에 걸터앉아 담소를 나누던 어르신들도 덩달아 토끼 눈이 됐다.
딱히 정해놓은 일정은 없었다. 그냥 ‘끌리는 대로 움직이자’. 생각해보니 마을로 오는 길이 참 예뻤다. ‘그래, 걷자!’ 챙 넓은 모자에 손수건 하나, 물통까지 챙겨 숙소를 나섰다. 걷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마주하는 풍경이 하나하나 새로웠다. 바다였다가 울창한 숲길이었다가 금세 한적한 마을이었다. 평소 ‘셀카’를 즐겨 찍지만, 그 날 하루는 다른 풍경을 배경으로 찍은 내 얼굴 사진만 2백 장이 넘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새 물통은 텅 비었고, 입은 바짝 말랐다. 그때 유독 한 상가가 눈에 띄었다. ‘◯◯은행’. 주저 없이 들어가 일단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뻔뻔하지만 당당하게 물통을 가득 채우고 후다닥 나왔다.
또 한참을 걸었다. 올레길을 알려주는 깜찍한 화살표는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정처 없이 이곳저곳 눈에 밟히는 대로 걷다 보니 도착한 곳은 종합버스터미널. 그제야 땀에 흠뻑 젖은 걸 알았다. ‘씻어야겠다’는 생각에 목욕탕을 찾았는데, 마침 월요일이라 문을 연 곳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숙소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문 너머로 지는 해가 보였고, 반바지가 걸쳐 있던 내 다리는 무릎을 기점으로 흑과 백으로 갈라져 있었다.

젊은 부부의 게스트하우스였다. 특히 사장님의 새카맣게 탄 피부와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나이아가라 폭포 파마가 생각났다. 개그맨 허경환의 고향 통영에서 왔다는 갓 스무 살이 된 두 소녀 그리고 부산 사나이들과 함께 붉은 노을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삼켰다.
제주에서의 둘째 날, 하루 종일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탔다. 잠시 사이클 선수에 빙의됐다가 피도 봤다. 바닷바람에 모자가 날아갔는데 바보처럼 앞바퀴 브레이크를 힘껏 잡은 것이다. CF가 시트콤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손금이 사라질 정도로 깊게 상처가 났지만, 돌담길 사이로 앙증맞게 늘어선 이 작은 마을에서 약국을 찾는 건 사치였다. 반창고라도 붙이자는 생각으로 구멍가게에 들어섰다. 주인 할아버지는 내 손을 보더니 급하게 서랍을 뒤졌다. 그리고는 큰 연고를 하나 건넸다. ‘광범위 피부질환 치료제’.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상처에 주인 할아버지의 정성(?)을 떠올리며 연고를 듬뿍 발랐다. 아직 손에는 그 날 아로새겨진 영광(?)의 상처가 남아있다.

마지막 날, 전라도 사투리 ‘아따~’ 한마디에 자지러지던 소녀들도, 홀로 여행 온 여자 사람을 돌보듯 대하던 사나이들도 모두 떠난 게스트하우스. 평소 읽은 책 또 읽고 본 영화 또 보는 재미로 사는 나. 역시 그때도 난 족히 10번은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웨하스 의자』를 챙겼다. 하루종일 책을 보다 자다를 반복했다.
3일간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또다시 요란한 캐리어를 끌고 길을 나섰다. 하필 ‘길치’라 이곳저곳 헤매다 겨우 버스정류장에 도착. 어마어마한 배차간격 덕분에 기다림이 한계에 다다를 때쯤 생선을 가득 실은 트럭 한 대가 눈앞에 떡하니 멈춰 섰다. “어디 가세요?” 그렇게 인연이 돼 날 공항까지 바래다준 친절한 제주 아저씨는 지금도 가끔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다.

며칠 전, ‘면허도 땄겠다’ 관광객이라면 빼놓지 않고 간다는 중문 관광단지, 월정리 해변, 우도까지 제주 곳곳을 차를 몰고 쌩쌩 달렸다. 그러다 문득, 구멍이 숭숭 뚫린 제주의 거친 바위 위의 벌레를 보며 한참 동안 신기해했던 3년 전 ‘뚜벅이’ 여행객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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