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산기] 요정을 만나는 일_MBC 강나림 기자

‘쩡이’. 우리 딸의 태명은 ‘쩡이’였다. ‘멀쩡이’의 쩡이.

딱히 임신 계획도, 준비도 없이 어떻게 되겠지 하고 있던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아이는 우리에게 왔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친 건, 연말이라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신나게 마셔댔던 술자리들이었다. 임신 초기에는 괜찮다고들 하지만 괜찮을 거라고 안심하기엔 너무 많이, 자주 마셨다.

“애는 멀쩡하죠?”
그래서였을까.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하던 어느 날 , 나도 모르게 “애는 멀쩡한 거죠?”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 때 “멀쩡히라니..애가 괜찮죠 그럼”이라며, 뭐 이런 산모가 있나 하는 눈빛으로 날 보던 간호사는 몰랐으리라. 나는 정말 아이가 ‘멀쩡’할지가 걱정이었다는 것을. 다른 욕심 다 버리고 멀쩡하게만 태어나라는 우리의 바람을 담아 그날부터 아이 태명은 ‘쩡이’가 됐다.
임신을 알게 된 순간도 그렇고 초음파 검사를 받으면서도 나는 내내 아이한테 별문제가 없다는 것에 안심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좀 시큰둥..했다고 해야 하나. 사실 임신은 축복이고, 아이는 천사고..이런 얘기들이 좀 낯간지러웠다. 부모가 된다는 사실이 두렵고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고. 걱정은 많은데 쿨한 척하고 싶어 하는 엄마인 걸 아기도 알았는지, 입덧 한번 없이 얌전하게 임신 기간을 보냈다.

정신 줄 끊어지는 고통, 출산
그리고 출산 당일.
나는 처음 갔던 산부인과에 마취가 의사가 상주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무통 주사를 맞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병원까지 바꿨었다. 무통 없이 애 낳다 아파 죽을까 봐. 내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무통이 없었으면 아파 죽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통이 있어도 죽을 만큼 아팠다. 쇠스랑으로 오장 육부를 파헤치는 듯한 고통..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하다. 그게 16시간 동안 이어졌다.
아침에 병원 침대에 누웠는데 아이가 나온 건 자정이 지나 날이 바뀌고 나서였다. 쩡이와의 첫 만남은.. CF에서처럼 아이는 우렁차게 울고 아빠 엄마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감격과 환희에 휩싸이는 장면 같은 건 없었다. 나는 고통이 채 가시지 않아 정신이 없고, 남편은 나 살피랴 애 보랴 더 정신이 없고, 처음 보는 빛에 눈을 가느다랗게 뜬 아기도 어리둥절한 채였다. 쩡이는 내 품에 잠깐 안겨 기념사진 한 장 찍고 곧바로 신생아 실로 옮겨졌고 나는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입원실로 옮겨졌다. 출산은, 얼마 전까지 세상에 없던 사람이 새로 생기는 과정은, 그렇게 정신없고 아프고 어수선했다.

요정을 만나다
50일 남짓 지난 요즘. 아기 태명을 멀쩡이로 지은 시큰둥했던 여자는, 한번 보고 어딘가에 던져놨던 초음파 사진을 새삼 다시 들여다보곤 한다. 작은 점이었던 너, 젤리 곰 모양의 너, 너의 작은 손가락과 발가락..이렇게 예쁜 네가 올 줄 알았다면 임신 기간 더 설레고 감사하며 순간순간을 보낼 것을. 예전 같으면 낯간지러워 미쳐버렸을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말이다. 쩡이는 만난 지 두 달도 채 안 돼 나라는 인간을 바꾸고, 우리 부부가 사는 풍경을 바꿔놓았다. 아이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는 기분이다. 우리 사이에 사람이 새로 생기다니.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이 내 눈앞에 있는 기분이다. 이렇게 예쁘기만 한 존재라니.
아이와 함께 찾아온 이 낯선 감정들은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애 낳으니 어때”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냥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 집엔 요정이 삽니다, 요정과 사는 기분이에요. 나는 벌써 이토록 주책스러운 부모가 되었다. 임신도 출산도 이 모든 과정이 왜 이토록 고통스러워야 하는가, 불평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고통의 의미를 이해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 내 안에서 나오기 위해서였구나. 사람이 사는 세상에 요정이 나타나는 게 거저 되겠는가. 나중에 아이가 커서 태명이 왜 ‘쩡이’냐고 물어볼 때를 대비해 대답도 준비했다. ‘요정’이라서 쩡이란다, 우리 요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