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산기] 그 엄마는 어떻게 겸손을 배웠나_YTN 홍주예 기자

초보 임신부의 원대한 꿈
나는 육아가 걱정됐지 출산은 겁나지 않았다. 순산할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막달까지 늘어난 몸무게는 11kg으로 딱 적당했고 부른 배에도 몸놀림은 가벼웠기 때문이다. 우아하고 점잖은 산모도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날카로운 비명 대신, ‘으음’ 하는 낮은 신음으로 진통을 이겨내야 했다. 가능해 보였다. 주수에 맞춰 별 탈 없이 커온 아기도 건강할 거라 확신했다. 출생 직후 신생아의 상태를 나타내는 ‘아프가 점수’(Apgar score)는 10점 만점에 10점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분만실 풍경을 그리면서도 커다란 환상을 품었다. 기나긴 산고가 끝난 뒤 응애응애 우는 아기를 가슴 위에 올려놓는다. “내가 네 엄마야.”라고 속삭이자 아기가 목소리를 알아듣고 울음을 뚝 그치는 장면. 너무 감동적이어서 상상할 때마다 울컥했다.
걱정이 딱 하나 있긴 했다. 출산 예정일이 2월 5일이었는데 6일부터는 설 연휴였던 것이다. 대체휴일까지 더해져 연휴는 자그마치 닷새나 됐다. 그때는 의료진도 당직 체제에 들어가는 터라 정상적인 의료 서비스를 못 받는 기간도 닷새였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출산 예정일을 받아든 순간부터 끊임없이 아기에게 주문했다. “아가야, 연휴 중간에 나오면 너도 나도 피곤하다. 연휴 전이나 후에 나와라.”

포유류 암컷의 험난한 운명
엄마의 강력한 주입식 태교에도 아기는 말을 듣지 않았다. 2월 8일 설날 당일 새벽 0시 무렵, 양막이 파열되며 양수가 흘러나온 것이다. 그길로 입원했다. 모든 것은 틀어지기 시작했다. 진통 간격은 점점 줄어들었고 강도는 점점 세졌다. 그리고 머릿속에선 생각이 점점 사라져갔다. 저녁엔 희소식이 전해졌다. 이런 진행 속도라면 밤 9시나 10시쯤엔 아기가 나올 것 같다고 했다. 곧 ‘힘주기’에도 돌입했다. 자세가 잘못됐다고 지적받으면 얼른 고쳤다. 그래야 아기가 조금이라도 빨리 나올 테니까.
아기 머리가 보인다고 했다. 내게는 보이지 않는 까만 머리가 캄캄한 동굴로 비쳐드는 한 줄기 빛보다 더 밝게 느껴졌다. 그런데 의사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아기 얼굴이 엄마 등을 향해 있어야 하는데 배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상태로는 자연분만이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아기가 스스로 돌아갈 수도 있다며 기다려 보자고 했다.
아기는 정말로 몸을 돌렸다. 그러나 안도도 잠시. 녀석은 금세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누운 자세가 편한지 이후로는 요지부동이었다. 나의 고통은 한계점에 다다랐다. 뼈가 부서질 것 같은 괴로움과 함께 이러다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본능만 남은 나는 그저 새끼를 낳는 한 마리 포유류 암컷일 뿐이었다. 우아한 산모가 되겠다던 계획은 자연스레 폐기됐다. 온몸을 비틀며 단말마의 비명을 토해냈다. 부끄러움도 잊은 채 헛소리도 거침없이 내뱉었다.

나: “살려주세요.”
간호사: “뭐라고요?”
나: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요(원래 어떤 사람이길래?), 살려주세요.”
간호사: “…….”

엄마는 수술실로, 아기는 인큐베이터로
입원한 지 만 하루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기는 하늘을 바라보고 누운 자세 그대로였지만 거의 다 나온 듯했다. 간호사들이 나를 분만장으로 옮길 채비를 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었다. 연휴라 의료진이 모자란 가운데 나보다 더 위급한 산모가 발생해 먼저 분만장에 들어간 것이다. 내 차례는 뒤로 밀렸고 시간은 그만큼 더 흘렀다. 어느새 날짜도 바뀌어 있었다. 이제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응급 제왕절개 결정이 내려졌다. 그렇게 순산의 꿈도 멀어져갔다.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이동했다. 건강검진 때 수면 내시경 검사조차 받아 본 적 없는 내가 얼떨결에 전신 마취에 들어갔다. 한순간에 정신을 잃었다. 갓 태어난 새끼를 안고 교감을 나누는 아름다운 경험도 나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남편에게 물었다. “아기는 봤어?”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응……. 그게……. 아기가 아파서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들어갔어.” 40주하고도 4일, 주수를 꽉 채운 아기는 내 배에서 나온 뒤 숨을 못 쉬었다. 머리도 찌그러졌다. 산도에 너무 오래 머물면서 고생을 한 모양이었다. 나는 이틀을 꼬박 울었다. 며칠 뒤 병원에서 준 출생증명서에는 ‘출생아의 건강 상황: 불량’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프가 점수 만점’을 노리던 철없는 엄마의 욕심은 좌절됐다.

출산과 육아에 각본은 없다
이튿날이 돼서야 나는 허리가 펴지지 않는 몸을 이끌고 신생아 집중치료실 면회를 갈 수 있었다. 3.5kg으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아기는 꽤나 건장했다. 새처럼 자그마한 미숙아들 틈에서 본인도 좀 멋쩍을 성싶었다. 나는 눈물바람으로 첫인사를 건넸다. 양미간을 찌푸리고 고함치듯 울어대는 아기의 얼굴은 내가 화낼 때의 모습을 똑 닮아 있었다.
나는 내 몸과 출산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무지와 오만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매 순간 나의 기대를 저버리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진통은 겪을 대로 겪고 자연분만 문턱까지 갔다가 말 그대로 배를 갈라야 했고, 잠시였지만 아기가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전조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낳는 일뿐만 아니라 아이를 기르는 일이야말로 결코 내 뜻대로만 은 돌아가지 않는, 예측을 뒤엎는 일들의 연속 아니겠는가. 나는 더 겸손해져야만 한다.
오늘도 아이는 ‘음마’나 ‘엄머’ 비슷한 소리를 내고는 싱긋 미소를 지어 나를 설레게 하더니, 소파를 잡고 멀쩡히 잘 서 있다 갑자기 뒤로 넘어지며 내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아이가 커갈수록 나는 더 많은 예상치 못한 재롱과 말썽, 때로는 반항과 마주치며 웃고 울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엔 언제나 각본이 없을 것이다. 2016년 설날,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그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