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산기] 견디기 힘든 고통을 뚫고 찾아온 행복한 만남_SBS 이혜미 기자

지난해 개천절, 나의 딸이 태어났다. 이름은 지온이다. 지온이는 또래보다 머리숱이 많고 손발이 크다. 두상은 좀 작은 것 같다. 바나나를 먹는 것과 공을 차는 걸 좋아하고, 눈과 코를 동시에 찡긋하고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아이다.

나올 기미도 안 보이더니 갑자기 “저 나갈래요”
출산 전날까지, 아이는 이제 그만 엄마 뱃속에서 방을 빼겠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순산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짐볼 운동을 열심히 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아파트 계단을 올랐지만 소식이 없었다.
예정일을 이틀 앞두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한밤중 양수가 터졌다. 양수인지 아닌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매일 밤마다 잠 못 이루며 출산 육아 사이트의 출산 후기들을 정독했던 터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다니던 산부인과 병원에 전화를 걸었더니, 바로 짐을 싸서 분만실로 오라는 답을 들었다. 미리 준비해놓은 출산 가방을 챙기고, 새벽 3시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분만실에 들어가 눕자마자 간호사가 들어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출산이 진행될지 설명했다. 일부러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설명이란 게 죄다 부정적인 상황을 가정한 것들이었다. 이미 양수가 터졌으니 48시간 안에 분만을 하지 않으면 태아가 위독하다, 아기가 나올 기미가 안 보여서 최소한 1박 2일은 진통을 해야 할 거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잔뜩 겁을 먹었지만, 나의 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건강하게 세상에 나왔다. 병원에 도착한 지 정확히 12시간 뒤의 일이었다.

너무 아파서 “수술할래” 말 절로…무통은 천국이어라
출산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단어가 진통이다. 자연분만을 한 경우는 물론이고 제왕절개를 한 산모들 중에도 진통을 다 겪은 후에 수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처음 진통이 시작됐을 때는 참을만하다. 진통 주기가 길고 통증의 강도도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견딜만하다는 건 앞으로 다가올 시련을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단단한 착각이었다. 출산이 임박할수록 진통의 강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지는데, 입에서 나도 모르게 “여보, 나 더 이상 못하겠어. 수술하고 싶어”라는 말이 나왔다. 그나마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건 아직 덜 아프다는 뜻이다. 진통이 정점에 이른 순간에는 입을 움직일 수조차 없을 만큼 강한 통증을 느끼고, 제대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다. 라마즈 호흡법이 분만할 때 도움이 된다고 해서 연습을 했지만 실전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고통을 줄여준 건 라마즈 호흡법이 아니라 주사 한 대였다. 산모들 사이에서 무통 천국이라고 칭송받는 무통주사가 출산을 도운 일등공신이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찾아온 무통주사는 정말로 천국과 같았다. 무통주사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내 경우에는 무통주사 덕을 톡톡히 봤다. 주사를 맞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증이 빠른 속도로 줄면서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제야 잊고 있던 라마즈 호흡법도 생각났다.

콩나물처럼 자라는 아이, 사소한 발달 하나하나가 감동
고리타분한 표현이지만 아이는 정말 물만 줘도 쑥쑥 크는 콩나물과 같다.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만 했을 뿐, 특별한 선물을 주거나 도움을 제공하지 않았는데도 아이는 스스로 잘 자라서 얼마 전 첫돌을 넘겼다. 아이는 스스로 목을 가누더니 몸을 뒤집고 일어나 앉다가 물건을 잡고 선 뒤, 앞으로 걷는 방법까지 터득했다. 지난 1년간 아이의 사소한 발달 하나하나가 경이롭고 감동적이었다. 복직을 앞둔 시점에서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1년, 합쳐서 15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아이의 성장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아둘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생긴 건 물론이고 가끔은 하는 행동조차 쏙 빼닮은 아이 덕분에 나의 생활 패턴은 출산을 전후로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밤이고 낮이고 맘 편히 눈을 붙이는 게 쉽지 않다. 아이는 낮잠이 길어야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한 아이는 새로운 것을 만지고 빨고 탐색하느라 자는 시간도 아까운 것 같다. 이 호기심 많은 아이가 세상에 유익한 일을 하는 쓸모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오래도록 아끼며 지켜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