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육아] 누군가의 세상이 된다는 건…_MBC 성지영 기자

“나도 나도….”
“민서야 왜?”
“나도 해볼래.”
“그래, 그래. 민서도 해보자.”
“네….”
(토닥토닥)

28개월 둘째는 잠꼬대를 한다. 또렷하게 문답까지…. 내용은 주로 “나도 이거 해보고 싶어.” “나도 큰 거 먹을래.” 등등. 오빠가 하는 일, 엄마가 하는 일은 죄다 해보고 싶은 욕심 많은 둘째의 성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엄마의 잠버릇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는 게 주변인들의 증언인데…(물론 잠꼬대니까 정작 당사자는 당최 알 수가 없는 일이다). 태교로 강제주입식 인문학 교육을 수강한 덕분인지 민서는 말이 빠르다. 온종일 재잘재잘 세심하게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는 능력(‘발레리나가 그려진 컵에, 잠깐! 빨대를 꽂아서 오렌지 주스를 주세요.’ 류의)에 가족들은 이미 두 손을 들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 민준이는 또 어떠한가? 갈수록 아빠 판박이다. 선이 굵은 외모부터 뼛속 깊은 모범생 기질까지. 마트에서 한꺼번에 장을 보면서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면 조심스레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많이 사도 돼? 돈을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냐?”라고 소곤거린다. 또래보다 한 뼘은 더 키가 큰 탓에 1학년 취급을 잘 못 받지만, 동생과 호비 영화를 보면서도 울컥해서 (참고로 동생에게 엄마의 사랑을 빼앗긴 오빠의 슬픔이 담긴 영화다) 눈물을 훔칠 만큼 감수성이 여린 아들. “수지 누나 참 예쁘지?” 묻는 아빠에게 “엄마가 더 예쁘지!” 하고 명쾌하게(?) 답해주고, 『엄마를 화나게 하는 10가지 방법』 책을 읽고 나서는 엄마를 사랑하니까 화나게 하기 싫다고 얘기해주는 달콤한 아들이다(물론 언젠가 며느리의 남편이 될 분이지만…).

민준과 민서, 터울은 5년. 둘째를 낳아야 할까 하는 고민을 안고 살아오다 어렵사리 우연찮게(?) 구성된 4인 가족. 두 아이의 애정을 한 몸에 받다 보니 진정한 인생 최고의 전성기랄까. 요즘의 나의 인기도는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그 인기는 “엄마가 책을 읽어줬으면 해.”, “엄마가 유모차를 밀어줘.”, “엄마와 함께 숙제를 하고 싶어.”, “엄마가 샤워시켜줬으면 좋겠어.” 등의 요구로 반영되다 보니 몸이 다소 힘들어진다는 게 함정이긴 하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된다는 건,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는 과정이다. 임신 4~5개월까지 식도가 헐 정도로 극심했던 입덧도, 오로지 식염수 비강 세척으로 버텨낸 임신성 비염도, 호흡법이니 요가니 죄다 필요 없고 그저 간호사 호통 소리밖에 기억이 안 나던 출산의 순간도…. 의지대로 안 되는 일이 있으니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체득하게 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아이가 커갈수록 내려놓고 인정해야 할 일은 늘어만 간다. 친환경 장난감 등의 기준을 들이댄다 한들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조각을 쥐고 내려놓지 않으면 게임은 끝이다. 다른 아이를 보며 ‘왜 저런 조합으로 옷을 입힌 거지?’ 싶었던 미혼 시절의 의구심이 무색하게 외출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만큼 난감한 옷을 벗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아이와 어느 정도 선까지 타협할 건인가도 관건이다. 무림의 고수가 아니더라도 이쯤에서 물러나 후일을 도모해야 할지 끝까지 꺾이지 않고 굳건한 의지로 관철해야 할지 고민하기 마련이다.

일하는 엄마가 된다는 건, 미안해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과정의 연속이다. 갑작스러운 출장이나 근무에도 ‘해야 할 일이니까 미안해하지 말자’고 머리로야 다짐하지만, 마음으로는 이미 죄인인 탓이다. 하지만 당당하게 대해야 아이들도 엄마가 하는 일을 소중하게 여긴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진다. 사실, 이 당당함의 뒷배에는 알뜰살뜰 손주들을 돌봐주시는 친정 부모님의 애틋한 노력이 자리한다. 면구스럽게도 부족한 2%를 100%로 채워주시는 두 분 덕분에 당당한 엄마 노릇도 가능한 터, 죄송하고 감사한 일이다.

기자 엄마가 된다는 건, 예측 불허하는 상황에서 난감함이 배가 된다. 친척들을 초대한 조촐한 돌잔치를 하루 앞두고, 난데없이 북한이 미사일을 쏘겠다고 나선다든가 아이와 함께 놀러 가기로 손가락 걸고 약속했는데 대형 사건이 터진다든가…. 뉴스에서 속보가 뜨면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민간인치고는 여기자의 남편이 될 만한 지극히 훌륭한 미덕을 지닌 남편 덕분에 넘긴 순간들이다. 지금은 예측 가능성이 그나마 큰 편인 주간뉴스부에 있는 덕분에 1학년 학부모라는 어려운 고비를 헤쳐 나가고 있다.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 감사한 일이 많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하는 일을 조곤조곤 설명해주고, 회사에도 데려와서 엄마가 일하는 곳은 이런 곳이다, 이런 일을 한다고 보여주고 얘기하는 것이 이해를 얻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잘 알지 못해도 엄마의 일에 대해 아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된 덕분이다.

여성이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포기와 희생이 따른다. 준비가 필요하고 마뜩찮은 상황에 떠밀려서 엄마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된다는 건 해볼 만한 도전이고 축복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의 세상이 되고, 그 누군가에게 보여줄 좋은 세상을 위해 한 번 더 고민하고 노력하는 일은 기자로서 엄마로서 참 특별하고 의미 있는 경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