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악기] 추억 속의 바이올린을 다시 만나다_아리랑TV 권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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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엄마 나 바이올린 배울래.”
만 6살이 되던 해, 난 엄마에게 바이올린이 배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음악 전공이었던 엄마는 독일 유학 생활이 한창 힘들었던 때라 내게 음악을 접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음악을 하면 괜히 아이도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던 모양입니다.
왜 바이올린이 배우고 싶은지, 엄마는 내 눈을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아마도 나는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습니다.
“바이올린 선생님이 윗집에 이사 오셨잖아. 그러니까 바쁜 엄마가 데려다 주고 찾고 하지 않아도 될 거고….”
며칠 후 엄마와 나는 음악 학교에 가서 윗집 바이올린 선생님 이름을 기입하고 레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신나게 갈래머리를 흔들며 일반 바이올린의 8분의 1 크기인 조그마한 바이올린을 들고서 말이지요.

윗집 바이올린 선생님
언제나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바이올린을 옆에 낀 채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던 바이올린 선생님. 그는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아는 분이셨습니다.
첫 연주회 때의 일입니다. 내가 무대에 오르자 바이올린 선생님도 함께 무대로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관중석을 향해 “소아는 바이올린을 배운 지 5개월이 되었습니다.”로 시작해서 평소 배우는 자세며 연주할 곡목을 설명했습니다. 선생님은 평소 레슨 시간처럼 연주를 시작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주고는 무대 한쪽에 계속 서 계셨습니다. 연주가 끝난 뒤 엄마는 떨리지 않았는지 물었고, 나는 양 볼이 발갛게 상기된 상태로 대답했습니다.
“레슨 받을 때랑 똑같이 하는 건데 뭐.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때문에 조금 떨리긴 했지만.”
얼마 후 다른 아이의 연주가 시작되었을 때 왜 선생님이 바이올린을 든 채로 무대에 계속 서 계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곡이 거의 끝날 때쯤 긴장이 풀렸는지 그만 실수를 해버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처음부터 계속 무대 한쪽에 서 계셨던 선생님이 스르르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오면서 그 아이가 틀린 부분부터 자연스럽게 연결해 연주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박자를 같이 맞추자는 고갯짓을 하면서 말이지요.
아이는 선생님의 도움에 힘입어 끝까지 연주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틀렸다는 것을 눈치 못 챈 사람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선생님의 순발력은 대단했습니다. 어떠한 돌발사태가 생기더라도 아이가 당황하거나 용기를 잃지 않도록 그런 식으로 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연주가 끝나자 선생님은 어려운 곡을 잘 소화한 아이에 대한 칭찬의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자 자격을 갖추고 음악이론까지 배우신 분이 왜 음악 교육을 다시 공부하셨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신나는 연습 vs. 하기 싫은 연습
그날 이후, 나는 바이올린을 꺼내 매일 연습을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10분만 연습하고 멈췄습니다. 선생님이 매일 연습을 하더라도 10분 정도만 하라고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이올린 연주가 재미있는 날엔 ‘나에겐 10분이 너무 짧다.’고 투덜거렸던 기억도 납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바이올린 수업인데도 30분 전에서야 부랴부랴 연습을 하고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일주일에 딱 한 번 하는 바이올린 연습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어릴 때 그토록 재미있었던 바이올린 연주도 커 가면서 의무감으로 다가왔던 것이지요.
이후 잠시 오케스트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악기들과 함께 호흡하며, 그 속에서 들리는 나만의 소리를 알아챌 수 있었을 때의 감동이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 악기든 뭐든 새로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동기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악기 연주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던 날은 마침 새집으로 이사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이삿짐 속에서 뽀얗게 먼지가 덮인 바이올린 케이스를 보는 순간, 다시 꺼내 들고 싶어졌습니다. 몇 년 동안 케이스 속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나를 기다렸을 바이올린.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해, 바이올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