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악기] 시작은 ‘땜빵’이었으나…_제주MBC 권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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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Of Puppets’. 고등학교 1학년 때쯤인가…. 짝꿍의 이어폰을 나눠 끼고 들었던 메탈리카의 곡. 날카로운 기타 리프에 뒤이어 심장을 울리는 드럼 소리는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악기라곤 다룰 줄 몰랐던 나는 그저 벌렁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언젠가는, 언젠가는….’ 이란 다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단지 손가락이 길다는 이유만으로 피아노 학원 선생님께 길거리 캐스팅(?)됐지만 1년 동안 바이엘 상·하권도 못 끝내서 파문당한 나였기에 악기는 꿈꾸기도 어려웠다.

스쿨 밴드
대학에 입학했다. 억눌린 자아를 분출하려는 듯, 일단 밴드의 문을 두드렸고 머리부터 기르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때 사진

을 보면 끝없는 후회와 좌절을 맛본다.)
기타를 치고 싶었다. 메탈리카의 Kirk Hammett, 오지 오스본 밴드의 Zakk Wylde, 드림 시어터의 John Petrucci. 생각만 해도 간지(?)나는 모습을 떠올리며 기타를 치고 싶었다. 그러나 밴드에 도전한 동기들 중에 기타를 잘 치는 녀석이 있었고, 나에게 돌아온 것은 커다란 타이어와 빨래방망이만 한 1A 사이즈 드럼 스틱이었다. 그렇다. 나의 밴드 인생은 ‘땜빵’으로 시작됐던 것이다.

음악적 재능이 없던 나는 드럼 앞에서 항상 막막했다. 리듬과 그루브를 타지 못하는 딱딱한 드럼. 내가 택한 것은 그냥 악보를 외워 수학적으로 치는 것이었다. 왼손 뒤에 오른손이 오른발과 함께 나오고 왼쪽 작은 북을 거쳐 오른발 더블 스트로크. 이런 식으로 공식을 만들어 외워서 쳤다. 몇 번의 공연을 거치며 내 인생의 가장 열정적이었던 시간을 보냈지만 돌아온 반응은 ‘너의 드럼은 딱히 뭐라 콕 집어 얘기하긴 어렵지만, 1/100초쯤 엇나가는 그런 느낌?’ 이런 것이 대부분이었다.

결별
연주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음악을 향한 욕구만큼은 대단했다. 1998년 메탈리카의 공연은 암표를 사서 주한미군들과 함께 맨 앞줄에서 봤고, 군대 있을 때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 내한한다는 소식을 듣고 휴가까지 맞춰서 나왔다. 공연 현장에서 직접 본 드럼 플레이는 한 가닥 남았던 기타에 대한 꿈을 완벽하게 드럼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잘 때도 손가락으로 리듬을 두드리다가 선임병한테 혼나기도 일쑤였다.
하지만 결별은 제대한 뒤 일어났다. 피땀(?) 흘려 일구어놓았던 나의 헤비메탈·하드코어 밴드에서 후배들이 에메랄드 캐슬 같은 가요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였다.(그때는 그랬다. 센 거 아니면 배신이었고 반역이었으며 Rock spirit에 대한 모독이었다.) 밴드를 떠났고 나의 음악생활도 그렇게 끝이 났다.

부활 그리고 꿈
성산 일출봉 앞에서 늦은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는 중이었다. 뒷자리에 앉은 카메라기자 선배가 음악 얘기를 꺼냈다. 레드 제플린부터 시작해서 러쉬와 핑크 플로이드를 향해 가다 결국 우리는 밴드를 만들기로 했다.
지금도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달린다. 라디오 헤드로 시작해 봄·여름·가을·겨울을 거쳐 RATM과 메탈리카를 연주한다. 어쩌면 작은 일탈이고 어쩌면 이루지 못한 꿈이다. 똑딱이 판이라 불리는 드럼 패드도 시간이 날 때마다 메트로놈을 켜놓고 두드린다.
땜빵으로 시작한 드러머의 길. 그런데 이게 묘하다. 시간이 갈수록 음악의 중심을 잡고 가는 묵직한 드럼의 매력에 빠져든다. 물론, 가끔은 스네어 드럼 위에 짜증나는 취재원이나 야속한 데스크의 얼굴을 오버랩시켜 놓고 연주할 때의 쾌감도 무시할 수 없다. 열정이 불타던 20대 때와는 분명 다른 느낌이지만 이제는 그때보다 편하게 드럼을 대할 수 있는 것 같다. 일정 부분의 포기와 깨달음이 합쳐진 결과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꿈꾼다. 마흔이 되기 전, 상의 탈의한 모습으로(식스팩은 생략하겠다.) 드럼 앞에 앉아 ‘Master Of Puppets’와 ‘Seek And Destroy’를 이은 메탈리카의 멕시코시티 라이브 버전을 커버하는 나의 모습을. 물론, 그러기 위해선 뼈를 깎는 극한의 다이어트가 선행돼야 한다는 엄혹한 현실도 분명하다. Rock & 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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