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숨겨진 맛집] 돼지고기로 스트레스 푸는 법_MBC 남상호 기자

그 간판을 처음 본 건 고가도로를 건너면서였다. 고가도로 밑, 철로 옆. 막다른 길의 조건은 다 갖췄다. 지나는 사람도 많지 않을 터. 테이블 5개 들어갈지 의문인 고깃집. 어울리지 않게 간판은 매장 폭을 전부 채울 만큼 컸다. 흥미로웠지만, 첫인상은 ‘오래 못갈 집이겠지’였다. 하지만 매번 고가를 지날 때마다 간판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결국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미 술이 한 순배 돌았을 시간인데도, 썰렁할 줄 알았던 가게 앞에는 줄이 만들어져 있다. 가게 바로 앞에서는 아저씨가 연신 연탄불을 피우고 있었다. 시뻘겋게 화를 내고 있는 연탄 위 석쇠에서는 항정살이 불꽃을 머금으며 익어가고 있었다. 아저씨 얼굴까지 닿는 복사열은 주변을 빨갛게 물들인다. 앞선 두 팀을 들여보내고 드디어 우리 차례다.

혀뿌리 옆을 타고 목으로 흘러들어오는…
돼지고기의 기본인 삼겹살을 시켰다. 테이블마다 연탄이 놓여있다. 기름이 반질반질한 무쇠 불판이 얹힌다. 불판에서 김이 올라올 무렵, 초벌을 마친 삼겹살이 자리를 잡는다. 지글지글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호모 에렉투스의 후예인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저씨는 무심한 표정으로 삼겹살 토막을 숭덩숭덩 자른다. 속살은 발그레하고 여전히 두툼하지만, 달궈진 불판 덕에 금방 익는다. 한 점 집어 윤기가 흐르는 비계 부분이 종지에 닿도록 소금을 찍어 입에 넣어본다. 이미 입을 채운 군침이 고기를 ‘살캉’ 깨물 때 나온 즙과 섞여 혀뿌리 옆을 타고 목으로 흘러들어온다. 친구는 요즘 상황이 예전 같지 않음을 신세타령하는 것 같다. 대충 “그렇지….” 추임새를 넣으며 한 잔씩 넘긴다. 삼겹살은 사라져있다.

술은 입가심으로 마시면 된다
다음은 돼지갈비. 달큼하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양념에 재운 고기가 나오고, 타지 않도록 부지런히 뒤집어야 한다. 친구는 이때쯤 아이 키우기 힘들다는 말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달콤함이 녹아있는, 불에 그슬린 맛은 목을 타고 쉽게도 내려간다. “아이가 생겼다고 끝나는 게 아니구나.” 추임새를 한 번 더 건넨다. 마지막은 볶음밥이다. 신 김치와 잘 섞인 밥, 그리고 반숙으로 아슬아슬 얹힌 달걀. 톡 터뜨려 마구 비빈다. 한눈 팔다 보면 바삭바삭한 누룽지가 만들어진다. 매콤 새콤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쓴다. 술이 남아있다면 입가심으로 마시면 된다. 탄수화물로 허기가 가실 때쯤 되어서야 친구의 말이 들어오기 시작하지만, 이미 한탄은 마무리됐을 터라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 내줘서 고맙다.” 속으로 되뇐다. ‘미안. 나도 고마웠다.’

‘헬조선’ 탈출 열망의 끝, 삼겹살
돼지의 체지방률은 15% 미만이라고 한다. 사람으로 치면 꽤 근육질이거나 마른 사람의 체지방률과 비슷하다. 돼지보다 더 돼지 같은 사람들이 돼지를 상대로 스트레스를 푼다. ‘헬조선’ 탈출의 열망과 절망과 무력감을 어디에 풀어야 할지 몰라 방황하며 속을 삭이는 우리는 결국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앞으로 모여든다. 이 바람과 답답함을 어디에다 풀어야 하나. 일단 나를 포함한 두 명이 4인분밖에 안 먹는 거로 봐서 양도 푸짐한 것이 분명한 이곳으로 모이는 것은 어떠한가.

고가길 9공탄 삼각지역 8번 출구 부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