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술] 술 마실 때 이야기 하는 것들_YTN 시철우 기자

나의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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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똑딱똑딱 똑딱똑딱… 꼬르르륵….’ 사무실에 걸린 시계가 퇴근 시간을 향해 달려갈 즈음, 배꼽시계도 민생고를 해결해 달라며 아우성이다. ‘꺄똑, 띵동, 삐리리릭, 지이이잉….’ 누군가의 휴대전화에서도 쉴 새 없이 약속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신호가 울린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치킨에 맥주 한잔, 파전에 막걸리, 족발과 소맥, 어쩌다가 양주 한잔…. 맛집을 찾아, 정겨운 사람을 찾아, 술을 향해 오라는 초대장을 따라 발길이 닿는 곳. ‘드르르륵’ 문이 열리며 우리들은 술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술을 마실 때 우리는 무엇에 관해 이야기하는가? 못된 선배 뒷담화, 정든 친구 이야기, 취재 에피소드, 사랑하는 사람과의 다툼, 경제적인 고민, 자라나는 아이 이야기 등등. 술자리에선 수도 없이 많은 종류의 이야기가 술잔에 담겨, 주거니 받거니 이어진다.

“위하여!!!” 지난 10월 6일 상암동의 한 치킨집.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연신 건배를 하며 서로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잔이 오가는 사이 한 켠에 보이는 현수막. ‘YTN 해직 6년, 이제는 돌아가야 합니다!’ 우장균, 조승호, 노종면, 현덕수, 권석재, 정유신 여섯 선배의 사진과 함께 가슴을 후비는 문구가 담겨 있다. 6년 전 그날 낙하산 사장 반대, 공정방송 쟁취 투쟁의 선봉에 섰던 YTN 기자 6인의 해직 통보가 있었다. 그날을 기억하는 동료들이 함께 모인 자리. 시간이 지나고 술자리가 깊어가면서 그동안의 이야기도 무르익어간다.

처음으로 파업을 하던 날 우리는 술을 마셨다. 선배들이 경찰서에 긴급체포 되던 날도, 노종면 선배가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던 날에도 우리 곁엔 술이 있었다. 기쁠 수 없었던 매 순간 우리 곁을 지켰던 술은 희망이었다. 술을 마시며 우리는 똑바로 살자고 약속했었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그렸었다. 절망의 친구는 술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선배들의 해직 통보가 있었던 날도, 1년이 지나고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술은 희망이다. 다시 모인 지금 이 순간에도 변치 않은 사람과 변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술이란 연일 계속되는 방송 장악과 시시각각 목을 졸라오는 억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자유의 수단이었다. 절망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 술상 앞에서 우린 그저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꺄르르 대는 여고생처럼 해맑고 즐겁기만 했다. 그러다 점차 ‘지사’가 되고 ‘현인’이 되다가 순간 ‘투사’가 되곤 했다.

공정방송을 꿈꾸며, 난생처음 거리로 나설 수 있는 자유에 청춘을 걸었던 사람들. 우리들은 낭만적 희망을 술잔에 담아 서로 나눠 마셨다. 술자리가 없었더라면, 희망과 상식이 거세되는 순간을 참아낼 그 자리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마치 나침반을 잃은 난파선 같은 존재가 되었으리라. 축제와 같았던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아직 선배들은 회사로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절망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돌아와 함께 기쁨의 술잔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며 화를 달래고, 피로를 풀고,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선배들이 해직된 지 6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선배들의 복직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희망을 안주 삼아 상식이 도래하는 세상을 위해 건배를 한다. 다 같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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