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술] 술시에서 덜어낸 시간 활용법_SBS A&T 박대영 기자

나의 술  

88-1

89-2많은 날을 술독에 빠져 살았지만 그 술들이 스스로를 살찌우지도, 키우지도 못하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고작 한 페이지를 채울 이야깃거리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쓸쓸함을 느낍니다. 아서라, 그 많은 술은 어디로 흘러가버렸기에 이 모양일꼬…. 어쩌면 그 술들이 제 이야기마저 어느 너머로 쓸어 가 버린 건 아닌지 조바심마저 생깁니다. 그런 이유로, 고민 고민하다 제 이야기보다는 술과 팔십 평생을 살아오신 고은 시인의 술 이야기를 통해 더불어 생각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인은 소주를 앞에 두고, “이 하얀 액체는 내 몸 밖에 있는 혈액이야. 20대 이후 변함없이 내 삶을 증명하는 혈액이지.”라고 하셨다는 분이십니다. 술 마시지 않는 시인이 무슨 시인이냐고 일갈하셨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老시인에게 술을 마시는 행위는, 그의 표현대로 ‘폐허’처럼 살았던 어느 시절 당신 삶의 모습이었고,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지식인의 면모이자, 자기 글을 향한 어쩌면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 의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시인께서 세상에 내놓은 수많은 글과 책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으니까요.

“귀신이 토해내는 검은 핏덩이처럼 써라. 달콤한 언어들을 살육하라.” 글을 쓰면서 가슴을 쪼개어 토해내듯, 진실 앞에서 정의롭게 끌로 새기듯 써야 한다는 시인의 지사적 열정에 술이라는 감속제는 어쩌면 당연한 사색과 사유의 동행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헌데, 그렇게 술을 좋아하던 시인마저도 “요즘은 술 먹는 시간이 아깝다. 술보다 책이 더 좋다…. 후반 생애에 오면서 전천후적으로 책과 함께 살고 있다.”며 “그렇게 황홀하던 술집도 책보다는 부차적이 됐다.”고 합니다.

누군가 술은 비와 같다고 합니다. 비가 내리면 진흙은 진창이 되지만 양질의 토지는 꽃을 피운다는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시간은 그 양질의 토지마저도 척박하게 만든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영원한 양질의 토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생을 책과 더불어 살았던 노시인의 나이 팔십에 즈음한 고백은 물론 겸손이겠지요. 하지만 이 고백은 봄날의 내 마음 밭에 지식과 사유라는 거름 한 삽을 흩뿌려주는 노력을 아끼지 말라는 충고를 담고 있는 듯합니다.

『네 마음껏 살아라』는 책을 남긴 티찌아노 테르짜니라는 저널리스트가 있습니다. 그는 “기자? 팩트를 찾아다니는 것이 본질이 아니야. 삶을 들여다보러 다녀야지…. 팩트에서 답을 찾을 수는 없어. 답은 훨씬 깊은 차원에서, 역사와 문화 속에 있는 거야.” 라고 기자의 역할을 정의합니다. 그리고 그는 “필립 존스 그리피스(영국 사진기자로 그의 베트남 전쟁 보도는 사진 저널리즘의 고전으로 꼽힌다) 같은 사진기자는 내가 읽은 책을 다 읽고, 내가 아는 것을 다 알고 있었어.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진을 찍기 위해서 말이지. 사태를 서술할 수 있으려면 그 뒤에 뭐가 숨어 있는지를 알아야 해. ‘찰칵’ 셔터야 누구나 누를 수 있지.” 라고 말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제는 어디에서든, 무엇을 하건 언제나 정답인 모양입니다.

저는 많은 술을 마시며, 그만큼의 시간을 더불어 마십니다. 물론 다양한 이유들이 존재합니다. 살다 보면 필요한 투자라고 나름의 억지를 부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나브로 늙어 가고 있는 스스로를 돌아보면, 이제껏 술에 내어 주었던 시간과 공간, 마음자리의 크기와 양이 좀 과도한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굳이 고은 시인이나, 테르짜니의 충고가 아닐지라도 술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요.

가을입니다. 술시에서 덜어낸 시간 토막들을 모아 모아서, 제목만 빼곡히 적어 놓았던 수첩을 들고 서점을 누벼 보는 건 어떨까요? 그러다 찜해 두었던 책과 감격스런 조우를 하는 나름의 사치를 누려 보아도 좋지 않을까요? 날씨가 너무나 좋아서 마음 한 켠이 외려 허전해지는 날입니다. 마음의 양식으로 조금이나마 채워 넣어야 할까 봅니다.

  

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