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물] 눈물의 과자 폭탄_아리랑TV 이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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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한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난 남편에게 참 많은 선물을 받고 살았다. 소위 여자들이 받으면 없던 사랑까지 샘솟는다는 백, 지갑, 액세서리 등등. 근데 그 많은 선물을 제치고 아직도 내가 받은 선물 리스트 1위를 지키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과자. 그것도 아주 많은 양의 과자.

우리는 참으로 애틋한 장거리 커플이었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미국 땅 한번 밟아보지 못했던 남편, 그리고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자라 한국말조차도 서툴렀던 나.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왔던 우리였지만 여덟 살이란 나이 차가 무색할 만큼 우리 둘은 코드가 잘 맞았고 어느새 우린 커플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대학생이었던 나와 한국에서 일하던 남편은 지구 반대편에서 그나마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리움을 달래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숙사 방의 초인종이 울렸고 문을 열어보니 내 앞에 놓여 있던 것은 한국에서 온 거대한 사이즈의 소포 박스. 그 박스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슈퍼마켓 한 곳을 다 거덜 내고 온 듯한 어마어마한 양의 한국 과자들과 군것질거리였다. 그리고 그 과자들 위에 살포시 얹어져 있었던 남편의 편지.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맛있는 과자 먹으면서 내 생각도 조금 하고 동생이랑 친구들이랑 수다도 떨고 좋은 시간 보냈으면 좋겠어요. 우리 곧 만날 그 날까지 언제나 서로 아끼고 이해하고 사랑해요.’

과자를 눈앞에 두고 그렇게 펑펑 울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일 때문에 하루에 몇 시간도 채 못 잤을 그가 오직 나를 위해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내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군것질거리들을 하나하나 기억해나가며 카트에 실었을 생각을 하니 너무 고맙고 또 고마워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던 것 같다.

69그때 당시만 해도 내가 다니던 미국대학 캠퍼스에서 한국 과자를 구경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어렵게 한인 마트를 찾아간다 한들 종류도 거의 없었고 가격 또한 너무 비쌌다. 그래서 방학 때 한국에 들어가면 습관처럼 매일매일 편의점에서 과자 몇 봉지는 의무적으로 사서 먹었고(최대한 많이 사 먹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그때 내가 좋아한다고 얘기했던 과자들을 기억해서 그 소포에 넣어 보냈던 것이다.

과자 폭탄 소포를 받고 난 이후, 함께 대학생활을 하던 내 동생은 매일 저녁 내 기숙사 방으로 출근했을 뿐 아니라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다른 한국 친구들까지도 찾아와 함께 한국 과자를 즐겼다. (결국, 내 몸무게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과자 한 조각, 젤리 한 개를 먹을 때마다 떠오르던 그 사람의 얼굴. 난 미국에서 일자리를 구했음에도 어떻게든 한국에서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고, 마침내 한국 입성에 성공했다.

일명 그 ‘과자 폭탄 소포’를 받은 지도 벌써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난 한국에서 자리를 잡아 과자 소포로 나의 마음을 홀라당 빼앗은 그와 결혼을 했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공주님도 낳았다. 그리고 이제는 오히려 내가 남편이 먹고 싶다는 과자를 집 앞 마트에서 사다 주는, 다소 귀찮은 패턴대로 살고 있지만, 그때 그 과자 소포의 기억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앞으로도 즐거운 마음으로 내 남편의 과자 심부름을 해줄 것 같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새벽 3시 반에도 난 감자칩을 먹고 있다. 나에게 과자는 단순히 입이 심심할 때 먹는, 먹으면서 살찔까 봐 걱정하는 간식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전달해준 아주 고마운 사랑의 메신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