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내 품 안으로_YTN 양일혁 기자

82-1 양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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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사소한 고백. 내가 이 노래를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 말은 이 노래와 관련한 추억의 두께가 그리 두껍지 않다는 뜻이다. 당신은 반문할 것이다. 추억과 관련 없는 ‘나의 노래’라는 것도 있나요? 나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는 추억보다 지금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욱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다. 청탁을 받은 뒤 나는 당연하다는 듯 내 삶의 변곡점 마디마디 귓가에 아른거렸던 사운드트랙이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며 추억 속 아카이브를 뒤적였다. 아마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곧 그만두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내 마음 깊이 박혀 있던 노래의 목록들, 이를테면 인생의 암흑기였던 20살 시절 심장에 불꽃을 점화시켜 주었던 너바나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나 RATM의 ‘Killing In The Name’도, 청춘의 상실감을 담담하게 노래하며 점점 멀어져가는 내 청춘을 뒤돌아보게 하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이나 9와 숫자들의 ‘유예’도, 몇 번의 사랑과 이별 사이에 불쑥 찾아와 내 마음을 흔들고 떠난 노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정규앨범 수록곡 거의 전부를 따라 흥얼거릴 수 있는 콜드플레이Coldplay, 델리스파이스, 넬, 루시드 폴의 노래까지도, 이번에 다시 들었을 때 이상하리만치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몇 번을 반복해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무엇이 변한 것일까. 나의 결론. 이 목록은 2014년 4월 16일 이전에 작성되었고 나는 지금 그 이후를 살고 있다. 벼락이 내리치듯 생겨난 삶의 단절. 혹은 (이런 비유가 허락된다면) 아우슈비츠 이후 ‘시’라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라는 아도르노의 질문의 이상한 반복.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무력감. 이 노래가 주는 기쁨이 혹시 사치는 아닐까. 따라서 이 리스트는 새로 작성되어야 한다. 그 결과,

이 새로운 명단의 첫 번째 노래는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Nick Cave & The Bad Seeds의 ‘Into My Arms’이다. 97년 발매된 <The Boatman’s Call>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이긴 하지만 정작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건 지난 연말 개봉한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였다. 아버지의 죽음. 장례식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 시간 여행이 가능한 아들은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가 있는 서재로 들어선다. 마찬가지로 시간 여행이 가능한 아버지는 아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한눈에 알아챈다. 그러면서도 천연덕스럽게 디킨스가 얼마나 유머감각이 뛰어난 작가였는지 들어보라며 『위대한 유산』의 한 구절을 낭독한다. 둘은 쿡쿡 웃는다. 장례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밤, 아들 부부는 아이들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뒤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그동안 흐르는 노래가 바로 ‘Into My Arms’이다. 읊조리듯 툭툭 내뱉으면서도 어딘가 절절한 마음을 담은 목소리로 닉 케이브는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하나님이 끼어든다는 말 같은 건 믿지 않아 (…)
그래도 만약에 믿는다면 무릎을 꿇고 물어볼 거야
당신에게는 끼어들지 말라고
머리카락 한 올도 건드리지 말라고 (…)
그래도 그가 당신을 인도해야 한다면
그렇다면 내 품 안으로 인도해 달라고
내 품 안으로

이것은 죽음에 관한 노래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떠나보낼 것인가에 대한 고백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내 품 안에 꼭 끌어안겠다는 의지다. 아직은 너를 하늘로 보낼 수 없다는 하소연이다. 바다에 그렇게 웅크리고 있지 말고 어서 빨리 나오라는 명령이다. 신이 주신 시련 따위야 어쨌든 그저 넋 놓고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맹세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들린다. 그럴 수밖에 없다. 4월 16일 사고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 모두가 그랬듯이 나 역시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학생 전원 구조’라는 속보가 나오자 나는 어리석게도 안심하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그렇지만 당신도 잘 알고 있듯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깨지지 않는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아이들. 밥을 먹기 위해 입을 벌리는 나. 살려달라며 동영상을 찍는 아이들. 밥알을 튀기며 떠드는 나. 비슷한 시간 정반대의 풍경. 그날 숟가락질이 죄스럽게 느껴져서일까. 가슴이 얹힌 것처럼 답답해지곤 한다. 그즈음 이 노래가 귓가에 울리기 시작했다. 내 품 안으로, 내 품 안으로. 아직 품 안에 안기지 못한 주검이 여럿이고, 침몰과 구조 실패의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 한, 나는 이 노래를 하염없이 되뇔 것이다. 그것이 내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애도의 방식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83-2 어바웃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