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 추억이 깃든 나의 고향, 마산_SBS 윤나라 기자

고향은 무엇인가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나 젖은 전라도 광주에서 뗐고 유치원은 강원도 원주, 화천에서 다녔다. 초등학교는 전국 5곳을 옮겨 다녔다. 아버지는 충청도분이고 어머니는 서울분이라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답이 쉽지는 않았다. 군 장교였던 아버지는 전역 후 경상남도 마산에 터를 잡았고 나는 중고등학교를 그곳에서 나왔다. 고향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군가의 인격과 정서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친 자연과 역사와 사람이 있는 곳을 고향이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나 싶다. 나의 고향은 마산이다.

큰 바위 얼굴
어른이 되고 다시 보니 확 와 닿는 동화가 <큰 바위 얼굴>이었다. 매일같이 롤모델을 보고 자란 아이가 그 롤모델을 닮아간다는 이야기는 허구라기보단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다.
마산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매일 보면서 영향을 받았던 게 두 가지다. 하나는 3.15 의거 당시 숨진 김용실, 김영준 선배를 추모하기 위해 모교 교정에 세운 추모비다. 비문이 명문인데, ‘부정과 불법은 극에 달했고 국민은 입이 있으되 말을 못 했다…열아홉의 끓는 피는 마침내 민주주의의 거름이 되었다. 그들을 추념하여 비를 세우니 굽어보는 합포만은 의혈이 스며 산호가 붉다’라고 끝을 맺고 있다. 선생님들은 과장된 말로 역사를 자랑하기보단 ‘선배들 본받아 바르게 살아라.’는 소박한 말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영향을 받은 또 다른 인물은 모교 선배인 천상병 시인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자가 꿈이었는데, 글쟁이가 되고 싶은 18살짜리한테 그런 큰 시인이 선배라는 건 꽤나 가슴 뛰는 일이었다. 귀천, 새를 비롯한 천상병 시인의 시는 대부분 찾아 읽었고 글 쓰는 일을 하겠다는 꿈을 찾아가는데 상당한 동력이 됐다. 고향은 사람을 낳아 기르고, 그 사람은 다시 누군가의 고향이 돼 또 다른 사람을 낳아 기른다.

마산의 과거와 현재
마산은 일제 때부터 본격적으로 항구로 개발된 이후 80년대, 90년대까지 일본으로의 물동량을 상당 부분 담당하며 도시가 급성장하며 한때는 전국 7대 도시로 꼽히기도 했다. 당시의 성장세는 수출자유지역으로 대표되는데 소니와 산요 등 일본 기업들이 많은 수의 근로자를 고용해 월급날이면 동네 강아지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경기가 좋았다.
90년대 들어 수출자유지역에 들어와 있던 외국기업들이 생산기지를 인건비가 싼 동남아로 옮기고, 우리나라 산업의 중심이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넘어가면서 도시가 활력을 잃기 시작했다. 중공업이 발달한 창원이 급성장하게 됐고, 2010년 마산은 진해와 함께 창원시로 통합돼 지금은 창원시 마산 합포구, 마산 회원구라는 이름으로 남게 됐다. 마산을 고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겐 아쉬운 일이지만 통합으로 도시 규모가 커지고 예산이 투입되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는 모습이라 한편으론 다행스럽기도 하다.

마산에서 만나는 축제와 식도락
자, 이제 실용적인 이야기를 해 볼 차례다. 먹을거리와 볼거리는 무엇이 있나. 우선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 진해 군항제다. 진해는 마산에서 차로 30분 거리인데, 매년 봄 군항제 때면 도시 전체가 분홍빛으로 물든다. 가는 곳곳마다 분홍빛 벚꽃 터널이 만들어지고 그림자도 분홍빛으로 진다. 도시 전체가 한편의 애니메이션처럼 보일 정도로 화려하고 낭만적이다.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도 훌륭하지만, 군항제의 벚꽃을 보지 못했다면 반드시 ‘서울 촌놈’ 소리를 듣게 될 일이다.
전국적으로 가장 유명한 마산의 먹을거리는 아마도 아귀찜일 테지만, 아귀찜은 서울에서 먹는 것과 맛의 차이가 크지 않다. 마산식 아귀찜은 아귀를 꾸들꾸들하게 말려 몹시 맵게 쪄내는 게 특징인데, 요즘은 마산에 가도 생아귀를 달달하게 쪄낸 서울식이 대부분이다. 아귀찜보다는 매년 가을에 열리는 전어 축제에 가서 전어를 드시라. 마산은 전어 산지로도 유명한데 특히 가을 전어의 맛은 널리 알려져 설명이 필요 없다. 뼈째 썰어낸 세꼬시도 훌륭하지만 전어는 구이가 제격이다. 고등어보다 고소하고 살이 연해 입에서 녹는 맛이 일품이다. 3만 원어치 면 남자 셋이 소주까지 곁들여 넉넉하게 먹을 수 있다. 봄엔 군항제, 가을엔 전어. 마산 여행을 계획한다면 두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다시, 고향은 무엇인가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고향은 편안하고 익숙한 곳이 아닌가 싶다. 내가 나고 자라고 자아가 만들어진 곳이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뉴욕처럼 화려하지도, 파리처럼 예술적이지도 않은 곳이지만 그곳만한 휴식을 주는 곳이 있을까. 일에 치여 바쁠 때는 잠시 고향을 떠올려본다. 그리움과 편안함이 함께 물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