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출신이 바라본 기자]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식수를 제공해야”_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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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_ 2013년 6월 13일
장소_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빌딩 40층
인터뷰_ 박성호 본지 편집위원장

 

“업무 프로세스 혁신 없으면, 방송기자 낙후 우려”

방송기자를 22년 하셨고 지금도 언론을 상대하시는데요. 방송기자들이 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보면서 어떤 걸 느끼십니까?
제가 걱정하는 첫 번째 이슈는 방송기자들이 신문기자에 비해 기본적으로 업무 프로세스, 즉 취재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에서 굉장히 불리하다는 겁니다. 물리적으로 신문만큼 많은 시간을 투자해 취재하지도 못하고, 출입처에 자주 나오지도 못하죠.

그래서 어떻게 차이가 나던가요?
저희 출입기자가 2백 명이 넘는데, 어떤 기자가 삼성전자 담당을 2년 하면, 신문기자의 경우 세계 IT산업, 전자산업의 주요 이슈와 동향, 전망, 우리 현실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나름대로 상당한 지식과 식견을 갖게 돼요. 반면에 방송기자는 업계 출입이라고 하는데, 그걸 2년 했을 때 그런 지식과 통찰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싶어요. 안타깝죠.
제가 삼성에 처음 왔던 2005년부터 화요포럼이라는 걸 했어요. 출입기자 서비스는 지식정보 서비스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1주일에 한 번씩 6개월간 24강으로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 등 주제별로 사내 최고의 강사들을 뽑아서 했는데, 결국 방송기자들은 거기에 못 오셨어요.

방송 경제부 기자들로부터 사건기자와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을 곧잘 듣습니다. 취재에 대한 갈증은 있지만, 제작에 대한 요구와 부담이 많다 보니…
저는 업무 프로세스 혁신을 해주지 않으면 방송기자는 제도적으로, 구조적으로 낙후할 수밖에 없고, 뒤처질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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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홍수 시대에도 ‘총 맞고’ 1분 20초 제작?”

사실 후배 기자들도 그런 걱정을 많이 합니다.
이제는 유비쿼터스 환경이잖아요. 언제 어디서나 정보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고, 정보는 바다처럼 널려 있어요. 그러면 방송기자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종이 신문의 미래, 정통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얘기해요. “신뢰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생산하면서 계속 존재하게 될 겁니다.”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무한정, 무분별할 정도로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정통 저널리즘이 살아남는 길은, 대중이 ‘이것은 믿을 만하다.’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정통 저널리스트의 눈으로 걸러진 정보. 신뢰의 가치죠.
그런데 홍수의 역설이라는 게 있어요. 홍수가 나면 식수가 없어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말 식수로 쓸 수 있는 정보는 빈약합니다. 『뉴욕타임즈』가 왜 유료화에 성공했을까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식수 같은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돈 주고 물 사먹듯이 사죠. 그런 점에서 홍수의 비유는 비유이면서 현실이에요. 결국 정통 저널리스트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식수를 제공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식수를 제공하는 기자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기자들이 많이 공부해야 하는데, 지금 보면 10년, 20년 전이나 똑같아요. “오늘 총 맞았다.”면서 인터뷰하느라 돌아다니고 쫓아다니기 바빠요. 그렇게 1분 20초 만들어 내놨는데 그 정보가 과연 홍수 속에 식수 같은 역할을 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봅니다.

자칫 방송기자만 바보 되고, 방송 리포트는 제일 별 볼 일 없게 될 것 같아요.
그럴 위험이 있어요. 얼마나 정확히 인식하고 개선에 뛰어드느냐가 관건이라고 봅니다. 그런 부분에 대한 방송기자들이 절박감이 있는지….

있죠. 기자들은.
회사가 업무 프로세스와 인사제도를 체계적으로 해결해 주지 않으면서 개개인에게 열심히 하라고 하기는 어려워요. 위로 갈수록 부장, 국장, 경영진, 사장이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모든 사람이 기자가 되고, 미디어가 되는’ 시대에 후배들이 기자로서 정통 저널리즘 영역에서 신뢰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어떻게 만들어 줄 것인가? 방송사의 생사가 달린 문제예요. 이것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후배 방송기자들은 모든 사람이 기자가 되는 시대에 그냥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돼요. 비참하잖아요. 걱정됩니다.

 

“방송사 재산은 사람, 교육 프로그램 절실”

기자들과 회사 모두 고민해야 할 문제인데요. 사실 좋은 뉴스를 내놓으려면, 첫째로 정치권력과 자본 등 외부 환경으로부터의 독립, 둘째 보도국의 건전한 편집 철학, 셋째로 기자들의 자질과 역량이 요구되는데요. 이 마지막 요소도 굉장히 중요하죠.
맞습니다. 기자 본인이 자신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게 중요하죠. 그런데 우리 냉정하게 질문해 봅시다. 회사에서 과연 교육 시스템을 가동한 적이 있습니까? 기자들에 대한 재교육을 한 적 있나요? 없어요. 저는 MBC에서 22년 반 있었는데 교육받아본 경험이 없어요. 우리가 공무원들 고시제도를 철밥통이라고 비판하면서 정작 우리는 라이센스를 받은 것도 아닌데, 공채 시험에 합격했다는 걸로 5년, 10년 그렇게 살아가는 거죠. 어떤 대상이든 교육 없이 발전할 수는 없어요.

기업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지금 기업들은 사람이 재산이고 경쟁력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 엄청난 투자를 해요. 사람에 대한 투자라는 게 교육 투자거든요. 삼성 같은 경우는 1년 365일 모든 직급별로 교육을 합니다. 사원이 들어오면 사원 교육, 대리 진급 앞두면 대리 교육, 임원 진급 앞두면 초급임원 교육, 부사장급 대상으로는 CEO 교육… 재무, 인사 등등 직군별로도 끊임없이 해요.
그런데 방송사는 공장이 돌아가요? 진짜 사람이 재산이잖아요. 여기는 공장이라도 돌아가지. 방송사는 오직 사람의 지력知力으로만 움직이는 곳인데, 사람에 대한 교육,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안타까운 거죠.

동감입니다. 한편으로 안타까운 것은 기자들이 자기 발전을 위해 집중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방송사들의 현실은 여전히 외부 환경, 보도국 내부의 편집 원칙을 놓고 싸워야 합니다. 그런 세월이 길어지면서 싸움에 민감해지는 것만큼, 저널리스트로서의 자기 연마에도 민감할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이 듭니다.
기자들을 그렇게 싸우도록 내모는 현실이 정말 안타까워요. 그런 현실과 싸워야 하는 그 에너지, 역량, 시간을 자기 내부를 키우는 데 쏟는다면, 훨씬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 안타깝죠. 하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도 기자들이 시대 변화에 대한 통찰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동시에 ‘콘텐츠 생산의 주체는 나다. 환경이 100% 나를 규율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외부 여건도 중요하지만 기자가 갖고 있는 역사관, 가치관, 지식, 이런 것들이 결국 어젠다 세팅에 작용하잖아요. 어쨌든 후배 기자들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에게 집중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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