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지나친 ‘검찰 사랑’_KBS 김준범 기자

8-1

8-2

8-3

 

 

 

 

 

 

 

 

‘사법처리’라는 외계어

▷검색어: ‘검찰’ + ‘사법처리’ ▷▷검색결과: 약 77만 개 (0.46초, Google기준)
예) 박태환이 도핑테스트에… (중략) 검찰은 해당 의사를 사법처리 하는 방안을 검토…

검찰은 분명 수사·기소를 맡은 기관이다. 판단은 법원의 몫이다. 이는 우리 사법체계의 근간이다. 그런데도 법조기사에선 이런 상식이 가볍게 무시된다. 숱한 기사에서 ‘검찰은 사법처리 기관’으로 확고부동하게 표현된다. 불과 0.46초 만에 77만여 개의 기사가 검색될 정도다.
그런데 ‘사법처리’는 어떤 사전에도 없는 용어다. 일종의 외계어다. 정확한 뜻은 알 길이 없지만, 추측건대 ‘검찰이 피의자를 수사해 사법적으로 처리한다’ 정도일 것이다. 이 외계어는 기사에 수없이 반복되며 ‘검찰 수사=사법 결론’, ‘기소=유죄’라는 등식을 무한증식 시켜왔다. 헌법은 ‘무죄추정’ 원칙을 정했지만, 법조기사는 ‘유죄추정’ 원칙을 추종하는 셈이다.

‘단독’이니까 괜찮아?
이 폐해는 매우 크다. 특히 대형 사건일 때 심각해진다. 검찰의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된다. 이른바 ‘단독’ 경쟁이 불붙는 지점이다. 다음은 전형적인 단독 기사의 사례다.

[단독] 검찰, ‘CJ 외국인 주주’ 예탁결제원 압수수색
CJ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한국예탁결제원도 압수수색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재현 회장이 해외의 차명 주주를 내세워 부당한 주식 거래를 했다는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후략)

수사팀의 액션 하나하나를 기사화한다. 기사 속 의혹이 공소장에 포함될지, 재판에서 유죄로 인정될지는 안중에 없다. 설사 틀려도 ‘단독이니까 괜찮아’라는 식이다. ‘받아쓰기 기사’, ‘검찰의 확성기’, ‘유죄 단정적 보도’ 등 수없이 거론되는 검찰 기사의 폐해는 여기서 파생된다.
‘비공개’에는 눈에 불 켜면서
검찰에 대한 과다 취재는 법원에 대한 과소 취재로 이어지고 있다. 대형 사건의 재판이 열려도 ‘다 나온 얘기 뭐하러 또…’ 식으로 무시하기 일쑤다. 비공개 되는 수사에는 눈에 불을 켜면서, 공개되는 재판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보여줘도 안 보겠다는 행태다.
해외 언론은 정반대다. 유명 언론사들의 홈페이지에서 prosecution(검찰)을 검색해보라. trial(재판)이 거의 항상 따라온다. 거의 세트와 같다.

•Prosecution rests case in “American Sniper” trial(CBS, 2015. 2. 17.)
•Dominique Strauss-Kahn trial: Prosecution calls for acquittal as case all but collapses(The Independent, 2015. 2. 17.)

해외 법조기사에선 검찰은 대부분 재판 속에서 다뤄진다. 검찰의 수사 결과는 하나의 입장으로 다뤄지고, 피고인 측 변론도 충분히 담는다. 이런 기술법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해외의 법조기사는 적어도 검찰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측면에선 우리와 아주 많이 다르다.

다 아는, 그러나 바뀌지 않는…
구구절절 쓰긴 했지만, 결국 핵심은 법조기자들의 지나친 ‘검찰 사랑’이다. 이는 법조기자 누구나 상당히 공감하고 있는 문제다. 변화의 방향에 대한 공감대도 상당히 형성돼 있다. ‘문제적 수사는 적극 비판하자’, ‘법원 취재를 강화하자’, ‘생활 밀착형 사건에 집중하자’, 방송 기자라면 ‘방송다운 제작 방식을 찾아내자’ 정도가 추가될 것이다.
다만 지독히도 잘 안 바뀔 뿐이다. 과거 검찰이 워낙 ‘센’ 기관이다 보니 검찰만 죽어라 취재하던 적폐 탓일까. ‘재판까지 못 기다리겠다’, ‘일단 먼저 보도하자’는 속보 경쟁 때문일까. 이유야 많겠지만, 시간은 많지 않다. 날로 날카로워지는 시청자들의 감식안이 법조기사의 폐해를 언제까지 눈감아 주리라 기대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