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정말 ‘취재 윤리’를 고민했을까_SBS 이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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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사는 괜찮고 총리는 안된다?
2013년 5월. 우근민 전 제주지사는 도청 출입기자와 점심식사 자리를 갖습니다. 제주 4.3과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우 전 지사는 “냉정하게 보면, 경찰이 무슨 명령만 내리면 가는 것 아니냐…. 그런데 ‘폭도 놈의 XX들’이 끼어가지고….”라고 답해 구설에 오릅니다. ‘폭도’라는 충격적인 단어를 쓴 것도 문제였지만, 당시 수많은 살상을 저지른 군경에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해석될 소지가 있었습니다. 우 전 지사는 처음에는 발언 사실을 부인했지만, 당시 한 인터넷 매체 기자가 오찬 내용을 녹음한 음성 파일을 공개하면서 우 전 지사는 해당 발언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이완구 국무총리에 대한 언론 검증이 한창이었던 1월 말. 일간지 기자 4명이 이완구 총리와 식사 자리를 갖습니다. 어떤 의혹에도 자료를 척척 내놓는다 해서 ‘자판기 총리’란 별명까지 붙었던 이완구 총리였지만, 언론이 앞다퉈 검증에 돌입하면서 상황은 불리하게 돌아갔습니다. 이완구 총리는 이 자리에서 언론에 대한 울분을 토해냅니다. 언론사 간부와 친분을 과시하며 원하면 기사를 뺄 수 있다, 자신의 입김으로 기자 인사에 관여할 수 있다는 식의 협박조의 발언도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기자 한 명이 음성을 녹취했고, 방송사가 이를 뉴스 시간에 그대로 내보내면서 총리의 언론관은 청문회의 핵심 쟁점이 됐습니다.
물론 두 사례의 전개 방식은 다릅니다. 이완구 총리의 사례는 식사 자리에 동석한 기자들이 첫 보도를 하지 않았던 양심의 문제, 음성을 녹취한 기자가 야당에 음성 파일을 건넨 정치적 해석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 외압’이 화두였던 국회 밖과는 달리, 국회 안, 엄밀히 말하면 국회 기자들 사이에선 정치인과의 사석에서 음성을 녹취하는 행위에 대한 ‘취재 윤리’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사적인 ‘식사 자리’에 대한 정치인의 경계가 커지면 다른 언론사의 취재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는 거죠. 더 나아가 일부 기자들은 독수독과毒樹毒果, 부당하게 취득한 증거는 재판에서 증거가 안 된다는 법리 얘기도 꺼냈습니다. 반론도 나왔습니다. 한 언론인은 정치인과 기자 사이에 사석은 없다, 비보도를 요청했을 때 들어주느냐 마느냐가 있을 뿐이라고 맞섰습니다. 함께 식사를 한 언론사가 기사화하지 않은 것은 ‘부당한 동맹’이라고도 했습니다.

누구를 위한 취재윤리인지 고민해야
35-1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를 떠나, 취재 윤리 논쟁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이를 계기로 취재 윤리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면 대한민국 저널리즘에 자양분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문이 생깁니다. 우근민 전 지사의 경우 공론화되지 않았던 취재 윤리가 왜 이완구 총리의 사례에선 나오게 됐을까요.
이런 사례를 들어보죠. 지금껏 제가 출입했던 경찰과 정부 부처를 빗대 비유해 보겠습니다. 경찰서장 혹은 정부 부처 간부가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고 칩시다.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아는 기자 선배들 많다, 내가 뭐라고 하면 너희 어린 기자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 이랬다면요. 저 역시 녹음을 했을 것 같고, 거기 있는 기자들도 함께 분노하며 윗선에 곧바로 보고했을 것이며, 윗선에서도 황당해 하며 기사 작성을 지시했을 것 같습니다. 이완구 총리의 사례는 새로울 게 없었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번엔 그 대상이 막강한 권력을 가진 여당의 전 원내대표이자 대한민국의 2인자인 국무총리 후보자였다는 것뿐입니다.
결국, 기자들이 이번 일에 취재윤리를 덧입히게 된 계기는 음성 녹취라는 ‘방식’이 아닌, 막강 권력자라는 ‘대상’에 기인했던 것 같습니다. 다들 ‘어떻게’를 고민한 것처럼 보였지만, 본질은 ‘누구’에 있었습니다. ‘덜 센 자’에 대해서는 침묵했던 취재 윤리가 ‘더 센 자’ 앞에서 쉽사리 꺼내 들 수 있었던 건 왜였을까요. 이번 일을 통해 취재 윤리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길 누구보다 바라고 있지만, 진정성은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우리가 취재윤리라는 명제를 본질부터 고민했던 건 맞는 걸까요. 권력 앞에 작아진 우리의 속살을 숨기기 위한 자기 합리화는 아니었을까요. 우리가 취재 윤리를 다뤄왔던 방식을, 저부터 반성해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