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 그 냉소와 조롱의 이름_SBS A&T 양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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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모든 카메라기자들은 자신이 속한 언론사의 이름을 각자의 카메라에 달고 다닌다. 사람들에게 그것은 때로 반가움이나 놀라움일 수 있다. 그리고 때로, 분노일 수도 있다. 4월과 5월, 팽목항과 진도 체육관에서 그것은 분명 분노의 대상이었다.
세월호 사건 초기, 대한민국 언론은 거듭된 오보와 무리한 취재로 실종자 가족들에게 절망과 분노를 안겨줬다. 가족들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경마 중계처럼 속보 경쟁을 펼쳤고, 결국 그 경쟁의 결과는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날아왔다.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로 그들의 분노와 실망을 담았다. 제대로 내보내 달라고 울면서 부탁하는 이도 있었고, 욕을 하는 이도 있었고, 카메라를 부숴버리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멱살을 잡는 가족들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무례함
기자라면 누구나 일종의 사명감이 있다. 진실을 보도하고,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을 외면하지 않으며, 정확하고 신속하게 뉴스를 전달한다는 것, 이것을 부정할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다. 하지만 그런 사명감 이전에 기자로서 최소한의 재난 보도 준칙을 지키면서 취재한 기자들은 얼마나 됐을까. 사고가 발생한 후, 실종자 가족들이 팽목항과 체육관으로 모여드는 시점에서 취재 경쟁은 불이 붙기 시작했다. 뉴스가 계속되면서 가족들은 언론의 가벼움과 무례함에 분노했고, 결국 기자들은 체육관 2층으로 쫓기듯 물러나야 했다. 급기야는 장비가 부서지기도 했고 체육관 입장이 불허되기도 했다. 방송사 태그가 붙어있는 ENG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눈총을 받았고, 어느 방송사인지 직접 확인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방송사 중계차가 가족들의 항의를 받아 철수할 수밖에 없었고, 욕설과 완력을 사용한 의사표시도 있었다.
NHK나 BBC 같은 외국 방송사들은 재난 보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명확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을 고려하고 예의를 지키며 불쾌감이나 공포를 자극할 수 있는 장면들은 보여주는 것도, 촬영하는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때 일본 기자들은 물론, 대부분의 외신 기자들은 절망에 빠진 피해자들의 모습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무리하게 인터뷰를 시도하는 일도 없었다. 진도에서 만난 대부분의 외신 기자들 또한 생생한 그림을 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희생자나 가족들에게 직접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았고,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했다.

실종된 재난 보도 가이드라인
우리는 어땠나. 실종자 가족들 중에 한 사람이 울거나 실신이라도 하면 지상파, 케이블, 종편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모두 달려들어 그 모습을 근접 촬영하고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 흰 천을 둘러싼 시신의 모습이 최소한의 처리도 없이 그대로 방송되기도 하였고, 부적절한 표현과 어처구니없는 인터뷰도 줄을 이뤘다. 취재가 불허된 곳에 카메라를 숨긴 채 몰래 들어가다 적발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름이 알려진 인사가 브리핑을 하거나 실종자 가족들을 방문할 때는 여러 언론사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가족들의 앞을 가린다고 항의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취재진들이 접근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정해졌고, 현장이 풀 체제로 돌아서고 나서야 취재 경쟁의 열기가 식어갔다. 뒤늦게 사문화되어있던 재난 보도 준칙이 거론되었으나 이미 싸늘해진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터넷에선 이런 기자들의 모습을 보고 ‘기레기’라고 불렀다.
제작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기자는 없을 테다. 타사에서 하지 않은 뭔가 새롭고, 뭔가 더 생생하고, 뭔가 더 가슴을 울릴 수 있는 기사와 영상의 발굴을 위해 한발 더 뛰고 때론 위험을 감수하기도 한다. 그것이 어찌 보면 기자의 의무이자 숙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기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있겠다. 몇몇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우리가 이만큼 노력했기 때문에 이 정도라도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된 것이 아니겠느냐고. 그 노력이 사람들 눈에는 과열로 비춰진 것이 아니겠느냐고. 마냥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좋은 기사를 만들려는 진정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모든 상황에서 면죄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레기’가 아닌 ‘기자’가 되는 길
세월호 참사는 희생자의 대부분이 어린 학생들이었다. 일반인의 희생도 큰 슬픔이지만 제대로 꽃피지도 못한 학생들이 희생을 당했다는 점에서 가족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도 더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주위의 학생, 교사, 가족 등 뭔가 새로운 건수가 나올만한 대상에게는 어떻게든 다 달라붙었다. 기자를 꿈꿨던 단원고의 어느 학생이 이번 일을 계기로 기자의 꿈을 접었다고 한 것은 현장 취재가 어땠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한 소설가는 세월호 참사를 두고 “상으로 맺혔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콘택트렌즈마냥 그대로 두 눈에 들러붙어 세상을 보는 시각, 눈 자체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언론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각에도 그대로 적용될 테다. 근래에 이번 세월호 참사만큼 언론이 사람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 일은 없었다. ‘기레기’가 아닌 ‘기자’로서 잃어버린 신뢰를 찾는 길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기본을 지키는 것, 기사가 우선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이라는 것. 그것 말고는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