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그 어딘가의 강아지풀



그 어딘가의 강아지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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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김성준 앵커



시골에 가면 산이 있고 강이 있고 들이 있다. 사방 어디에 카메라를 겨냥해도 작품이 나올 것만 같다. 그런데 시골에는 강아지풀도 있다. 어린 시절 친구 목덜미에 몰래 집어넣고는 송충이라고 장난치던 그 풀이다. 시골 풍경은 주인공이 누구든 구석 어딘가에 강아지풀들이 포커스 아웃된 채 숨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뉴스가 뭔지도 모르고 하루 종일 바쁘기만 하던 수습시절이 있었다. 허름한 마을의 이름 없는 서민이 털어 놓는 하찮은 얘기도 빠짐없이 수첩에 적어 기사로 만들어 보곤 했다. 대부분 데스크 옆 휴지통 몫이었다. 하지만 작은 사람들 얘기를 뉴스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치와 경제를 논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기사들을 생산해 냈다. 숲을 쓰는 기자가 된 내가 대견해 보인 반면 나무는 어린 후배들 몫 같았다.



숲 얘기만 쓰던 기자가 강아지풀 앞에서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강아지풀이 시골 풍경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을까?” 풀머리가 바람에 흔들려 렌즈를 톡톡 두드릴 만큼 바짝 다가가 초점을 맞췄다. 졸지에 강아지풀의 뒤 배경이 된 산과 들의 윤곽이 물 번진 수채화처럼 뭉개진다. 강아지풀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누구에 초점을 맞출지의 문제일 따름이다. 시골에 가면 산도 보고 강도 보고 들도 봐야 하지만 강아지풀도 꼭 보고 와야 한다. 큰 얘기 작은 얘기 빼놓지 않고 들어야 하기 때문에 기자라는 밥벌이가 쉽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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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지 않는 것과 색깔이 변하지 않는 것과 소리가 나지 않는 것들’을 좋아하는 김성준 앵커는 1991년 SBS에 입사해 워싱턴 특파원을 지냈습니다. 현재는 SBS 모닝와이드 앵커로 활동하며 매일 아침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