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그들이 있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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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사흘째인 4월 18일 오전, 실종자 가족들이 호소문을 발표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이게 진정 대한민국 현실입니까? 아이들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고 구조는 없었습니다.” 실종된 한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는 “여기서는 방송과는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절규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이 말하고 싶었던 건 ‘정부가 구조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거짓말만 하고 있고, 방송이 정부의 거짓말을 그대로 방송하면서 국민들을 속이고 있으니 우리 좀 도와주십시오.’입니다. 실종자 가족에게, 방송은 정부가 하는 거짓말의 공범처럼 보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만약’이라는 가정을 하고 생각을 한번 해 봤습니다.

‘우리에게는 방송기자의 직업윤리를 좀 더 충실히 지키려다 해직된 동료들이 있다. 그리고 해직되지는 않았지만 같은 이유로 뉴스 현장에서 배제된 수많은 동료들이 있다. 그런데 정말 만약에, 직업윤리에 충실한 그들이 방송뉴스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제가 말하는 방송기자의 직업윤리란 대략 이런 것입니다. 첫째,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 둘째, 정부 발표를 그대로 믿지 않고 확인 취재를 하는 습성, 셋째, 문제점을 보면 그 부분을 지적하고자 하는 비판의식. 이 세 가지 정도가 버무려져 방송기자의 직업윤리를 형성한다고 봅니다.

상상이지만, 상황은 이렇게 진행됐을 겁니다. 그들 대부분 각종 참사사고를 취재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과거의 방송이 평균적으로 했던 취재지시를 했을 겁니다. 우선 정부 발표대로 속보 자막을 띄웁니다. 그러면서 서울과 지역기자들의 현지 관계자와 주민 전화 취재를 독려하겠죠. 원래 사건 초기에는 정부대책본부에서 나오는 팩트가 거의 없으니까 속보를 하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수백 명의 학생이 배 안에 갇혀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여러 경로로 포착됐을 겁니다. ‘학생 전원구조, 또는 368명 구조’라는 정부 발표와는 완전히 상황이 다른 거죠. 이 지점에서 지금 방송과 큰 차이가 생깁니다. 방송기자의 직업윤리에 충실한 그들은 정부 발표보다는 현장취재를 중시했을 것이고, 아마도 ‘수백 명, 배 안에 갇혀 있다’라는 속보 자막을 올렸을 겁니다. 중요한 점은 방송이 그런 자막을 올린 순간부터 이번 세월호 사고는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겁니다. “다들 구명조끼 입고 있는데, 왜 구조 못 하냐.”는 안이한 인식 대신에,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슬픈, 최악의 참사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사고 초반부터 정부가 깨닫게 될 테니까요. 사건사고 발생 초기에 방송이 사안의 성격을 규정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기자들의 리포트도 달라졌을 겁니다. 사고 첫날, 배를 타고 침몰현장에 다가간 기자들의 눈에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 보였을 겁니다. 현장에 다녀온 실종자 가족들도 방송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구조작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증언했을 거고요. 당연히 첫날 속보부터 메인 뉴스까지 “수백 척 동원, 수백 명 투입”이라는 정부의 발표가 ‘거짓말’이라고 지적하면서, 정부의 무성의한 대응을 비판하는 리포트를 계속 했을 겁니다.

사고 첫날 바다 날씨는 잔잔했다고 합니다. 그 지역 주민들의 증언입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배 안에 갇힌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시간인 첫날, 이튿날을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만약 방송이 처음부터 제대로 보도하고 정부의 성의 없는 구조대책을 비판했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이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보도 가이드라인이 나오고 있습니다. ‘신속함에 앞서 무엇보다 정확해야 하고, 피해 관련 통계 등은 반드시 재난구조기관의 공식 발표에 의거해 보도하자.’는 겁니다. 방송기자들이 새겨야 할 원칙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떤 면에서 재난보도 가이드라인의 그 부분은 ‘참사사고에 제대로 유능하게 대처하는 정부’를 전제로 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경우는 좀 다릅니다. 정부의 피해 관련 통계는 엉터리이고, 정부의 재난구조기관은 우왕좌왕하고, 구조 작업은 사실상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엄청나게 하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실종자 가족들이 분노를 터뜨릴 때, 방송기자들은 어떻게 취재해야 하고, 어떻게 방송해야 할까요?

저는 몇 년 전까지 대부분의 방송기자들이 취재해왔던 방식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큰 사고인 만큼 정부 발표만 기다리지 않고 신속하게 현장 상황을 현지 주민들에게 취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정부 재난구조기관의 피해 관련 통계가 틀릴 수 있다는 비판의식도 발휘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정부 구조작업에 문제점이 있다면 더 좋은 구조 방식이 있다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신속하게 비판해야 하고요. 어쩌면 과거 우리 사이에 그냥 평범하게 통용되던 방송기자의 직업윤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새삼 방송기자의 직업윤리를 조금 더 충실히 지키려다가 해직된 동료들이 더 생각납니다. 정말 그들이 뉴스현장으로 다시 돌아왔으면 합니다. 왜냐고요? 우리 아이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방송기자의 직업윤리에 충실한 그들이 필요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