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왜 제안하고 언론인은 왜 응하는가] 방송기자 ‘롤 모델’의 현실, 민경욱이거나 윤도한이거나

[권력은 왜 제안하고 언론인은 왜 응하는가]
방송기자 ‘롤 모델’의 현실, 민경욱이거나 윤도한이거나.
언론인들은 왜 정치인의 길을 가게 되나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정치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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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치는 정당 기반이 허약하고 일부 정치인의 카리스마와 인기에 의존한다. 이념보다는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권이 나뉘고, 정책보다 선전이 중요하다. 이 같은 토양에서 △신뢰감 △대중성 △전문성까지 갖춘 방송기자들은 정치권 영입 1순위다. 그렇다면 언론인들은 처음부터 국회의원이 되고 청와대에 가고 싶어 기자를 선택했을까. 그런 이들도 일부 있겠지만 언론인의 정치권 이탈은 언론인으로서의 비전을 보여주는 ‘롤 모델’의 부족 탓에 반복적으로 벌어진다.
30~40대에 정치권으로 가는 언론인은 드물다. 바꿔 말해 대부분이 50대 이후 직업을 바꾼다. 왜일까. 기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뉴스룸에 설 자리가 없다. ‘눈칫밥’을 먹게 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발간한 <제13회 언론인 의식조사>에 따르면 언론사의 부장급 이상 간부 비율은 평균 22%인데 신문사는 23.1%, 방송사는 25.9%였다. 방송사는 국장/국장대우 5.4%, 부국장/부국장대우 5.4%, 부장/부장대우 15.1%로 ‘역피라미드형’ 인력구조가 가장 심각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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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연차가 쌓이면 방송기자들은 출입처-기자단 중심의 취재영역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일선에서 반강제로 물러나야 하며, 데스크급으로 승진해 간부가 되지 않을 경우 ‘퇴물’ 취급을 받으며 명예퇴직을 고민한다. 지금껏 바람직한 언론인의 ‘롤 모델’이 부족한 현실도 이들의 선택을 합리화한다. 기자들은 결국 자신들의 유일한 자산인 ‘인적 커뮤니케이션’을 활용해 이직을 고려하게 되는데, 평생을 ‘갑’으로 살아온 기자들에게 정치권만큼 매력적인 곳도 드물다.
수십 년간 ‘단독’에 반응하는 기자들은 평생 ‘인정투쟁’을 하게 되는데, 그들에게 삶의 목적이란 자신의 ‘쓸모 있음’이 계속해서 증명되는 것이다. 이는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퇴직을 앞둔 언론인의 화두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회적 활동과 안정적 노후다. 앞선 조사의 직업 환경 요인별 만족도에 따르면 ‘노후 준비’에 대한 언론인의 만족도는 5점 척도 기준 2.16점으로 11개 환경 요인 중 가장 낮은 만족도를 나타냈다. ‘각자도생’인 탓이다.

 

“형편 없는 언론인들의 퇴직 후 삶” 각자도생. 폴리널리스트의 복귀 용인 분위기도 한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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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펴낸 한국언론진흥재단 <퇴직언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선일보 출신 퇴직언론인은 “경제적 측면과 자기만족도 측면에서 언론인들의 퇴직 후 삶은 다른 직종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조사에 응한 600명의 주요 신문·방송 퇴직 언론인 가운데 2/3는 퇴직 이후 임금노동을 하지 않는 것 으로 나타났다. 일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응답자의 63%가 “적당한 일자리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한국일보·중앙일보 출신 퇴직언론인은 “금전적 문제보다도 뭐 하나에 기여할 수 있다, 아직 쓸모가 남아있다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쓸모가 끝났다는 것에 대한 좌절감, 박탈감, 이런 것이 크다”고 털어놨다. 서울신문 출신 퇴직언론인은 “명함 없는 게 정말 괴롭더라”고 말했다. 후배 기자들의 존경을 받았던 김의겸 한겨레 기자가 청와대 대변인이 되고, 윤도한 MBC 기자가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된 배경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적지 않은 기자들이 나이가 들수록 ‘체면’과 ‘의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신들이 만나온 취재원들 탓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몸값이 더 이상 내려가기 전에’ 재빨리 정치권을 택한다. 대표적 사례가 민경욱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다. 그는 KBS <뉴스9> 앵커 당시 박근혜 정부의 확성기를 자임하다 청와대의 대변인 제안을 받고 어느 날 KBS로 출근해 오전 회의를 마친 뒤 오후에 청와대로 출근하는 ‘기행’을 선보이며 공영방송 기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폴리널리스트’의 언론계 복귀를 용인하는 분위기도 주요한 원인이다. 국방부를 출입하다 국방부 대변인이 되었고, 대변인을 마치고는 다시 중앙일보 국방전문기자가 되었던 김민석 씨의 사례, 조선일보 기자였다가 한나라당 후보로 총선에 나가 낙선한 뒤 다시 TV조선 사회부장으로 돌아왔던 이진동씨의 사례들이 언론인의 정치권 행을 가볍게 만든다. ‘잘 안 풀려도 다시 돌아와 비벼볼 수 있다’는 일종의 직업윤리 붕괴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손석희 “정치는 정치고, 방송은 방송이다” 자리 지키는 ‘롤 모델’ 저널리스트 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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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책 <손석희 현상>에서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이 16대 총선에서 44명, 17대 총선에서 42명, 18대 총선에서 36명이었던 점을 언급하며 “한국의 정치지상주의, 언론 산업의 불안정성, 산학 협동 체제의 부재, 언론인이라는 직업의 전후후박 문화, 언론의 신뢰 저하로 인한 자긍심의 박약”을 폴리널리스트가 양산되는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하며 “폴리널리스트의 길을 단호히 배격한 롤 모델 저널리스트를 부각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치는 정치고, 방송은 방송이다. 무척 관계 있어 보여도 관계 없는 것이고, 또 관계 없어야 한다”. 2003년 손석희 아나운서가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자기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큰일’이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언론인들이 ‘대접’받는 뉴스룸의 진화가 필요하며, 그러한 ‘롤 모델’ 저널리스트가 늘어나지 않고서는 권력의 달콤한 제안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이에 응하는 언론인은 지속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