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논란의 한 가운데서_EBS 황대훈 기자

교육부 국감이 열린 10월 8일 벌어진 일들은 초짜 기자가 감당하기엔 너무 소란스러웠다. 국감장 책상 한구석에서 노트북을 켤 때만 해도 내가 여덟 시간 동안 의사 진행 발언만 받아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하긴 전날 밤 국정화 발표가 12일이니 13일이니 했을 때부터 그런 상황을 예견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예고편: 녹음기 장관, 확성기 여당
국정화 방침이 결정됐느냐는 질문에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국감이 끝나면 예정 고시를 하고, 20일이 지나면 확정 고시를 한다고 대답했다. 그건 대답이 아니지 않으냐는 질타가 이어졌지만, 앵무새 놀음만 반복될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날 이후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까지 국정화에 관해 우리 사회에 쏟아져 나온 모든 반응은 결국 그 장면들의 지루한 반복에 가깝다.

본편: 반대와 대안들
12일 이후엔 대학가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이미 국정화 발표 전 상당수의 대학이 국정화 반대 성명을 발표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연세대 사학과를 필두로 집필 거부 선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개별 대학 차원의 대응은 이제 의미가 없는 것 같은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던 대학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선언 대학’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각 대학 홍보실이 평소와 다르게 교수들 연락처를 척척 알려주는 게 괜히 통쾌했다. 청년 단체, 대학교 총학생회의 반대 성명도 급증했다. 찬성 단체들의 선언도 있었지만, 굵직한 역사학회들이 집필 거부에 동참하고 나니 기계적 균형을 지킨다는 게 다소 공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모두를 같은 방식으로 가르치라는 것”
일부 진보 교육감들은 즉각 대안 교과서를 들고 나왔다. 온도 차는 있었다. 한 교육청은 대안 교과서라는 게 꼭 모든 학교가 선택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국정 교과서는 일단 만들어지면 수업에서 절대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대안 교재를 개발하고 있다고 알려진 학회의 교수도 교과서 선택권은 현장 교사들의 것이라고 새삼 이르집어주며 대학교수들이 마치 일방적으로 대안 교과서를 현장에 던져준다는 식의 인상을 주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오히려 ‘대안’에 적극적인 건 현장 교사들이었다. 한 교사는 통화에서 지금도 교과서에 국한된 수업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내용을 조정하거나 설명 방식을 바꾸는 일은 ‘맞춤형’ 교육을 위해서도 필수라는 것이었다. 모두에게 같은 내용을 같은 방식으로 가르쳐야 하는 국정 교과서는 그 과정을 조금 짜증나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리라는 것이었다.

영원히 계속하자는 게 아니다?
“영원히 계속하자는 게 아니잖아요.”라던 찬성파 교수의 목소리는 얼마 후 황 장관의 입에서 그대로 나왔다. 하지만 학계와 현장 교사들 상당수가 등을 돌린 국정 교과서가 과연 목적한 바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국정 ‘국사’ 교과서로 수능을 치른 세대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교과서가 세계관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학생 입장에서는 산업화든 민주화든, 어느 선생님이 더 ‘썰’을 잘 푸느냐에 달려 있지 않았나 싶다. 정부가 바라는 ‘통합된 역사인식’은 교육 현장의 모든 인원과 대학 교재, 아니 존재 목적까지 뒤바꿔야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닐까.

후속편: 다시, 국민 vs 대통령
일주일이 지났다. 많은 성명과 선언이 나왔지만 내용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예비비가 지급됐을 뿐이다. 정책이 이미 결정된 뒤에 하는 논의는 논의가 아니다. 정부는 국민의 대표들이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단 하루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국정화를 강행하겠다는 의지가 명백해진 지금, 모든 말들이 힘을 잃었다. 의원실을 돌다가 만난 한 야당 보좌관의 말이 떠오른다. “정부가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누가 뭐라고 해도 해요. 우리도 예전에 그랬거든요.” 그는 씁쓸하게 한 마디 덧붙였다. “어차피 정권 바뀌면 다시 다 바뀌지만….” 지금 상황이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수천수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오기 전에, 30명의 교문위원이 또는 몇백 명의 교육전문가들이 다만 열흘이라도, 이 문제를 다뤄줄 순 없었을까? 수많은 제도적 장치들을 한 번에 건너 뛸만한 절실한 이유가 있었을까? 있었다면, 그게 뭐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