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가대표 출신 기자의 무한도전

일시_ 2015년 12월 7일   장소_ 서울 상암동 YTN   인터뷰_ YTN 나연수 기자(앵커팀)

‘되는데요? 해맑시즘!’ 그녀의 카카오톡 프로필 문구다. YTN의 여성 스포츠 전문기자이자 ‘이달의 체육기자상’을 수상한 특종 기자, 명문대 체대 출신의 전직 국가대표, 가히 ‘체육계 엄친딸’로 불릴만한 화려한 스펙. 이 모든 걸 일궈낸 게 그녀의 좌우명, ‘되는데요?’다.

“이동국과 아는 사이가 되어야겠다.”

소녀 조은지는 축구선수 이동국의 팬이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 반했어요. 팬클럽에 가입하고, 매일 편지 보내고, 사인회를 쫓아다녔죠. 그런데 이 선수, 인기가 너무 많았어요. 사인 한 장으로 안 되겠더라고요. 아는 사이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이동국 때문에 스포츠뉴스를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스포츠라면 줄줄 꿰게 됐어요. 그 나이에 ‘버디’고 ‘보기’고 다 알아들었으니까.”

축구를 좋아하던 소녀는 하지만 체육인이 되어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공대에 입학했다. 학과 수업에 영 재미를 붙이지 못하던 어느 날, 문득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지나가듯 던진 말이 생각났다. ‘너는 체육을 좋아하니 체대에 가 보면 어떠니?’ 반수를 결심했다. 오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오후에는 체육관에서 핸드볼 레슨을 받았다. 이듬해, 목표로 잡았던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스포츠 전문기자가 되었다. 이제는 ‘허구한 날’ 이동국 선수를 만나 인터뷰하고 기사를 쓴다.
“10여 년에 걸친 ‘덕질’이었고, 성공한 ‘덕후’가 된 거죠.”
“국가대표 한번 해볼까?”

조은지 기자는 대한민국 유일무이한 전직 ‘국가대표’ 기자다. 2011년 여자럭비 대표로 선발돼 여러 차례 원정 경기를 뛰었다.
“2010년에 밴쿠버 동계 올림픽 취재를 갔어요. 처음에는 금메달 후보에만 관심 있었죠. 그런데 가보니 올림픽 자체가 축제더라고요. 외국 선수들 가운데는 직업 변호사, 의사들도 있었어요. 스포츠 자체를 즐기는 모습, 올림픽 정신에 반했죠. 그때부터 국가대표가 꿈이 됐어요.”

막연히 동경하던 어느 날, 국가대표 선발전 기사를 보게 됐다.
“여자럭비라는 종목 자체가 우리나라에 없으니까, 일반인 중에 모집한 거죠. 해보고 싶었어요. 회사에 말도 하지 않고 선발전을 치르러 갔죠.”

도전에 의의를 뒀는데 뜻밖에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휴직을 고민하던 차에 당시 다니던 회사인 서울신문의 편집국장이 힘을 실어줬다. “네가 워킹플레이어가 되어 봐라.” 기자와 국가대표 생활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신문사는 토요일, 훈련은 일요일 하루만 쉬었으므로 휴일이 아예 없었던 셈이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종목이었고 저는 늘 엔트리의 경계에 서 있었어요. 기자 생활하면서 늘 골잡이만, MVP만 인터뷰했는데 비로소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이 보이기 시작했죠. 발톱이 다 빠질 정도로 열심히 훈련했어요. 그런데 막상 선발 명단을 발표할 때는 내가 안 뽑혔으면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자신 없고 무서워서요. 선수들이 주눅이 든 모습을 보면 파이팅이 없다고 혀를 찼었거든요. 이제야 그 부담감을 이해하게 된 거예요. 기자 중에 이런 마음을 느껴본 사람이 없을 거 아녜요.”

“어떤 감동은 그냥 보여주고 싶어요.”

그녀는 대한민국 여자럭비 사상 첫 승리의 멤버다.
“승부가 갈리는 찰나의 순간, 선수들의 땀방울과 눈물을 담아내는 데 텍스트만으로는 한계를 느꼈어요. 어떤 감동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잖아요.”
2013년 서울신문을 떠나 YTN에 새 둥지를 틀었다.
유쾌한 성격과 꾸준히 다져놓은 취재원 덕에 금세 안착했고 모두가 놀랄 정도로 빠르게 방송기자로 변신했다.
“사실 예전에 방송기사는 수박 겉핥기라고 생각했거든요. 기사는 고작 열 문장 남짓이고 현장에서도 인터뷰만 하고 빠지고. 방송기자가 되어보니 이게 더 어렵더라고요. 신문기사가 ‘소설’이라면 방송기사는 ‘시’ 같다고 해야 할까요. 아직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평생 기자로 살고 싶습니까?”

참 식상한 질문이다 싶어 다른 걸 물어보려는데, 그녀가 아무 망설임 없이, 말하자면 박태환의 스타트 리액션과 같은 속도로 “네!”라고 대답해 당황했다. 아니 정말로?
“스포츠의 세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게 정말 많아요. 정정당당하게 룰을 지키는 태도,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 우리 모두가 스포츠 정신을 안다면 사회가 이렇게 어지럽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서 평생 스포츠 기자로 살고 싶어요. 승부의 세계, 역전 드라마, 이 재미와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어요.”

조은지 기자는 내 동기다. 매일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함께 여행도 다닌다. 이 정도면 ‘조은지’라는 사람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웬열’, 새삼스레 마주앉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나는 한 사람의 인생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가, 그 이야기를 꺼내어 나누는 일이 얼마나 빛나는 일인가를 생각했다. 이토록 순수하게 자기 분야를 사랑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토록 해맑게 ‘되는데요? 되던데?’라고 외치는 영혼을 만난 적도 없다. 매 순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무엇이 되어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고 조은지 기자가 이야기하는 ‘스포츠 정신’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