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이사회, ‘이념 전쟁터’ 되나_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13일 KBS 이사회 이사 11명(여·야 7:4),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9명(여·야 6:3)을 선임하고 새 이사진의 구성을 마무리했다. 이들은 공영방송 최고 의결기구의 이사들로서 KBS·MBC 사장 선임권을 쥐고 있다. 임기 내에 총선(2016년)과 대선(2017년)이 열린다는 점에서도 높은 관심을 모았다.

보수·우익 성향 인사들 대거 ‘입성’
이번 인선을 한마디로 평가하면 ‘보수의 장악’이다. 방문진에서 KBS로 옮긴 여당 추천 차기환 이사와 방문진 3연임을 현실화한 김광동 이사,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이인호 KBS 이사장 등은 모두 뚜렷한 보수·우익 성향의 이념과 역사관을 드러내 왔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임명된 이사들 가운데 다수가 뉴라이트 인사로 분류되거나 이념 편향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은 대표적인 공안통 인사다. 영화 <변호인>의 배경인 부림 사건 담당 검사였다. 그는 지난해 1월 인터뷰를 통해 “부림사건은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명백한 의식화 교육 사건”이라고 규정해 물의를 빚었다. 지난해 법원은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과거 유죄 판결을 받은 부림사건 피해자들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지난 7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애국진영에서 공정방송을 하는 데는 MBC밖에 없다고 한다.”며 최근의 MBC 보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광동 방문진 이사는 2006년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비공식 자문역을 맡아, 당선 이후 대통령인수위 정무분과위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그는 2009년 이동관 전 청와대 대변인의 추천으로 방문진 이사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이사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경영진이 노조에 휘둘리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주려 했다.”고 할 정도로 MBC 노조에 적대적인 인물이다.
차기환 KBS 이사는 2009년 방문진에 입성해 8·9기 이사로 활동했다. 그는 보수 진영을 결속시키는 활동을 활발히 해왔다. 2004년 설립된 뉴라이트 계열 단체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을 지냈고,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최근에는 ‘박원순 저격수’를 자처하며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주신 씨의 병역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새롭게 임명된 권혁철 방문진 이사는 고영주 이사장, 김광동 이사와 함께 보수·우익 성향의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소속 임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단체는 지난 2010년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 교수, 박원순 서울시장, 고 김근태 의원 등을 친북 반국가행위자로 규정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청와대·정치권의 속내는?
뉴라이트 성향 역사학자인 이인호 KBS 이사장은 MB정부에서 친일·독재 미화 논란을 일으켰던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의 감수를 맡았다. KBS가 지난 6월 “이승만 정부가 6.25 전쟁 발발 직후 일본망명을 추진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하자 그는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이사회를 소집하는 등 보도에 적극 개입하려 했다. 이후 보도 책임자들이 ‘물갈이’ 됐다.
KBS 이사로 선임된 조우석 문화평론가는 매체 칼럼을 통해 “KBS 구성원들이 종북 좌파적 지향으로 실무를 장악한 상황을 충분히 감안”해 “확실한 국가관으로 무장한 인사들이 이사진에 몰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년 세월호 참사 정국에 등장한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에 대해서는 “무능한 정부와 공권력을 대신해 세월호 저주의 리본을 치우겠다고 나선 그들, 서청의 전투정신을 되살리려는 그들에게 사회는 깍듯한 경의를 표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또 다른 KBS 이사 강규형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도 뉴라이트 성향의 교과서포럼 운영위원 출신으로, 교학사 교과서를 집필한 한국현대사학회 대외협력위원장 등을 맡았다. 그는 친일과 독재를 미화했다고 비판받았던 교학사 교과서를 “가장 안전한 교과서”라고 평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송통신 분야 핵심공약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었다. 당선 후에는 “방송 장악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처럼 이 역시 공약空約이 됐다. 지배구조 개선보다 공영방송이 ‘이념 전쟁터’가 되진 않을지 걱정해야 할 판국이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선거를 앞두고 장기집권이라는 정권의 욕망이 강하게 투영된 인사”라며 “대통령이 의지만 갖고 있었다면 제도 개선 없이도 공정한 인사를 뽑았을 것이다. 어떠한 언론 철학도 찾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