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노트] 공영방송 사장을 뽑는다는 것

박성호 본지 편집위원장(MBC 해직기자)

얼마 전 한 언론학 교수님으로부터 인상적인 말씀을 들었습니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은 국가와 국민, 국가와 공민(public citizen), 국가와 소비자의 관계를 바꾸는 근본적 수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뭔가 새로운 통찰력을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은 단순히 사장을 뽑는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시청자를 어떤 존재로 규정하느냐, 그에 따른 공영방송의 책무는 무엇이고, 그에 따라 공영방송사의 사장은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가의 논리적 연결 문제가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장을 뽑는 제도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기술적 절차에 해당합니다.

교수님이 소개하신 영국 BBC의 사례에 따르면, BBC는 일종의 시청자 ‘권리장전’에 따라 정부의 이해관계와 시민의 이해관계가 충돌했을 때 시청자를 ‘영국의 국민’으로 볼 것인지, 시민적 권리를 갖는 ‘공민(公民)’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시청자와의 협약인 셈입니다. 교수님은 우리에겐 그런 협약이 없다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사실 그런 고민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KBS와 MBC의 역사를 살펴보면, 국영방송, 관영방송, 민간상업방송, 공영방송 등 복잡한 정체성의 변천사가 있지만, 그야말로 방송사를 ‘지배’하는 힘의 변천사였을 뿐 시청자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별 흔적이 없습니다.

공영방송 사장 선임절차에 대한 논의가 ‘지배구조’라는 무거운 말보다 ‘시청자의 권리를 명확히 하는’ 대수술로 인식되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