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바라본 기자] ‘소금’ 같은 기자, ‘가짜 소금’ 같은 기자_박은재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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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원 곤란하게 만들어도 멋진 기자
맵고 짜게 먹는 식습관이 몸에 해롭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소금이 아예 빠진 식탁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방송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뉴스 만드는 기자들은 이 사회가 부패하지 않게 돕는 적당량의 소금이다.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해내려면 기자들은 우수한 자질과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법조인 생활을 20여 년 하면서 내가 만나 온 많은 기자들은 그 어떤 직역의 사람들보다도 뛰어난 능력과 소신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사고가 논리적이며 핵심을 파고드는 능력이 뛰어나고, 그러면서도 훌륭하고 유쾌한 인성들을 갖추었다. 개인적으로도 참 호감이 가며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능력이나 인품을 따지지 말고 철저히 취재원 입장에서만 ‘좋은’ 기자를 꼽으라고 하면, 대답하기 곤란한 일에 대해서는 일절 묻지 않는 반면 홍보하고 싶은 일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제일 ‘좋은’ 기자일 것이다. 물론 이는 취재원의 바람일 뿐,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그런 식의 ‘좋은’ 기자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취재원을 갓 사귄 애인 대하듯 하며 곤란한 일은 전혀 캐묻지 않고 내가 자랑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만 물어보는 기자가 쓴 러브레터 같은 기사를 시청자들이 무슨 재미로 보겠는가 싶기도 하다.

만약에 ‘당연히 이런 것은 기사화하지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 취재원이 아주 민감한 이야기를 친한 기자에게만 살짝 해줬는데, 이걸 대문짝만하게 단독 보도해 버린다면 어떨까? 취재원을 매우 곤란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언론인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이런 기자가 참 좋은 기자다. 오히려 이 경우 잘못한 쪽은 기자가 아니라 취재원이다. 기자가 스스로를 의리 없는 사람이라 여기며 자학하게 만들고, 인간적 고뇌에 빠져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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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에게 거짓말 하는 기자가 최악
그렇다면 어떤 기자가 나쁜 기자일까? 취재원이 용기를 내어 솔직하고 진실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는데,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를 사실과 다르게 한껏 비틀어 보도하는 기자가 나쁜 기자다. 취재원의 앞니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으면 기자가 슬쩍 언질을 주기도 하고, 취재원이 하는 이야기가 너무 못났으면 기자가 좀 산뜻하게 꾸밀 수도 있고, 또 사실을 해석하는 관점에 있어서도 견해의 차이가 생길 수 있다. 그런 정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취재원이 속 좁은 것이다. 하지만 기자가 떳떳하지 못한 목적을 가지고 선을 넘어 사실을 엉망으로 왜곡해 버린다면 그건 진짜로 나쁜 기자다. 그런 기자가 쓴 기사는 애초에 기사라고 할 수도 없다. 흔한 말로 “기자가 소설을 썼다.”고들 하는데 그런 나쁜 기사를 소설에 비유하는 것은 문학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소설가들이 화낼 일이다.

기자에게 배신당한 취재원이 펄쩍 뛰는 것으로 끝날 일이라면 아무래도 좋다. 책임 있는 언론사에서 훌륭한 인재들을 두고 굳이 그런 가짜 기자를 뽑아 현장에 보내는 일은 드물기도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런 가짜 소금 같은 기자가 시청자들과 만나게 되면 큰일이다. 가짜 기자가 쓴 기사는 사회에 고혈압보다 더 무서운 탈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기자는 과도하게 짜게 먹는 식습관이 몸에 나쁜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게다가 이런 나쁜 기자들 때문에 취재원들이 등을 돌리고 문을 걸어 잠그면, 죄 없는 좋은 기자들까지 취재하기 힘들어진다.

일 때문에 점심을 거른 취재원이 뒤늦게 짜장면 한 그릇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중국집 배달원을 밀치고 뛰어 들어오는 기자도 좋고, 노트북 컴퓨터를 끌어안고 취재원이 들어가 있는 화장실 칸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기자도 좋다. 시청자를 위해서 취재원에게 핀잔 듣는 것을 겁내지 않는 기자는 누가 보아도 멋있다. 그러나 시청자를 위해 좋은 기사를 쓰겠다는 것 외의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기자는 위험하고 나쁜 기자다. 시청자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기자가 취재원에게는 최악의 기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