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기협]살인적 징계를 즉각 철회하라!

 

믿기지 않았다. 모두들 눈과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끝내 우려했던 일은 우리의 눈앞에서
버젓한 현실로 벌어지고 말았다. 어제 오후 특별인사위원회를 연 사측은 이른바 지난해
8월 8일 사태 이후, 신성한 방송의 터전인 KBS에 부당하게 경찰력을 투입하고 방송 길들이기를
넘어 장악 음모를 숨기지 않은 정권의 부당한 압력에 맞서 투쟁한 우리의 선·후배, 동료들에
대한 살인적 중징계를 결정했다.

이들 8명에게 내려진 파면과 해임, 정직과 감봉이라는 징계 수위는 과거 KBS의 오랜 역사에서
일찍이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비이성적, 비합리적 결정이다. 사측에 다시 한 번 묻겠다.
파면하고 해임해야만 했는가? 감봉과 정직이라는 극약 처방만이 능사였는가? 징계 대상자들이
그토록 중한 징계를 받을 만큼 잘못을 저질렀는가? 그들의 말 한 마디, 몸짓 하나 하나는 결코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우거나 자신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뜨거웠던 지난해 여름, 그들이 한 일이라곤 정권의 부당한 방송장악 음모에 맞서 공영방송 KBS에 대한
폭압적 공권력 투입을 막아내고, 정상적 절차와 규정을 모두 내던진 채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서슴지
않은 이사회를 막아내려 했던 것뿐이다. 오로지 공영방송 KBS, 국민의 방송 KBS가 정권의 주구(走狗)가
되어 시청자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는 저 80년대 ‘땡전뉴스’의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싸웠을 뿐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사측에 여러 차례 묻고 또 요구했다. 그동안 진행돼온 징계 절차와 그 결과가 정당하다면,
이사회의 지시만을 따라 동료들을 폭행한 청원경찰들에 대해서는 왜 책임을 묻지 않았는가?
과연 징계를 할 계획과 의지는 있는 것인가? 신성한 방송국에 경찰의 난입을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 허용했는지 그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은 과연 얼마나 했는가 말이다. 우리의 선배, 우리의 후배,
우리의 동료가, 한솥밥을 먹으며 취재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땀 흘렸던 우리의 사랑하는 벗들이
지금 중징계라는 서슬 시퍼런 칼날 앞에 서 있다. 이들 누구 하나 자기 자신을 위해 싸운 일이 없음을,
지난 무더운 여름의 치열했던 투쟁 내내 우리는 똑똑하게 목도했고 기억한다.

비판과 견제를 숙명으로 알고 살아가야 하는 기자에게 나를 비판할 수 있는 비판의식과 양심은
어떤 경우에도 버릴 수 없는 지고지순의 소명이다. 그가 받드는 이념이 무엇이든,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정권의 부당한 방송장악 음모에 맞서 의롭게 싸운 우리의 동료들이 폭압적 중징계를
당하는 치욕스런 모습을 우리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우리 보도본부 기자들은 하나의 일치된 뜻으로 이번 중징계를 단호하게 반대한다. 아직 시간은 남았다.
사측은 사원들에 대한 살인적 징계를 즉각 철회하라. 징계로서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구시대적 발상은
버리고, 지난해 여름 사장 교체 이후 불거진 사측과 사원 간의 갈등과 반목을 조금이라도 씻을 수 있는
길은 화해와 용서임을 다시 한 번 깊이 인식하기 바란다. 지금 우리 KBS를 둘러싼 현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냉혹하다. 여당의 방송법 개정과 수신료 인상 등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사측과 사원들이 똘똘 뭉쳐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쳐 나가도 벅찬 일들이다. 이제 더는 좌시할 수 없다.

우리 기자들은 사측이 사원들에 대한 중징계를 즉각 철회하고, 회사의 미래를 위해 이해와 화합의 길을
적극 모색하기를 촉구한다. 만일 사측이 이번 징계를 그대로 시행할 경우, 우리 기자들은 제작 거부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사측과 싸워나갈 것임을 선언한다.
2009.1.16 KBS 기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