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인의 지하사투,감동의 순간은 계속될까_KBS 정제혁 기자




칠레 시인 네루다 생각만 하면 웃음이 나온다. 작은 일에도 감동 잘하는 그 이는 자신이 신던 털실 양말에까지 무슨 송가인가를 지어 바쳤다. 40대 상원의원 시절 파업 광부들을 모조리 감옥에 잡아 가둔 정부대응을 의회에서 공개 비난하고 망명해 버렸던 좌충우돌의 돈키호테, 지금 살아 있다면 시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을까?



아타카마 사막은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라고 한다. 우윳빛 구릉들 너머 광부 서른 세 명을 집어 삼킨 산 호세 광산이 숨죽인 채 웅크리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져 방한복을 입었는데도 한기가 파고 들었다. 사막에서는 낮과 밤의 일교차가 매우 크다고 가르쳐 준 것은 고등학교 때 지리선생님. 두 달이 넘도록 모닥불을 피워 밤을 밝히고 있는 저 아내, 아들과 딸들의 사랑의 깊이가 아득하기만 하다.




언론인 천
5백 명이 와 있었다. 생중계된 구조 작업은 인류의 달 착륙이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 취임식에 견줄 만큼 관심을 모았다는 말도 있다. 서양 기자들에게는 멀리 동양에서 온 기자가 신기하게 보였나 보다. 소재가 궁해졌는지 급기야 기자들이 기자를 취재하려 헤메는 지경이었다. 영국 BBC와 미국 ABC, 칠레의 어떤 민영 텔레비전과 신문사 한 곳, 그리고 스위스 라디오 방송이 인터뷰를 요청했다. 대개가 칠레 광부의 생사에 한국사람들이 정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지, 한국 언론이 얼마만큼 이 사건을 중요하게 다루는 지 등을 물었다. 그때마다 이번 사고와 구조에 이르는 과정은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는 감동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는 것, 불가항력의 시련과 불굴의 용기, 동료애와 가족애, 어려움 속 국민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정부의 모습까지 너무나 완벽한 극적 구조를 갖추고 있어 믿기 힘들 정도라는 정도의 대답을 한 것 같다.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 박사 출신, 게다가 한때 지상파 방송사를 소유했던 자산 10억 달러 규모 억만장자인 대통령 피녜라는 홍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자체 카메라 8대는 광부들의 땅속생활을 비롯한 그림거리를 날마다 새롭게 언론에 제공했다. 공보직원 40 여명을 진두 지휘하는 방송전문가 레이날도 세풀베다 씨의 노련한 솜씨를 기자들은 한 눈에 알아봤다. 구조 당일 생중계를 고집한 것도, 건강이 악화된 광부들의 모습은 방송을 타면 안 된다고 미리 단속을 해둔 것도 대통령이었다는 후문이다. 광부들이 구조 캡슐을 열고 지상으로 나오는 결정적 순간 카메라는 자주 딴 곳을 비췄다. 광부들의 상태가 방송 적격인지 가늠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는 추측이 무성하다.




구조작업이 무사히 끝났을 때 아타카마 주의 주도 코피아포 시내 광장을 인파가 가득 메웠다
. 70년대 초 군부 쿠데타와 아옌데 대통령의 실각, 독재자 피노체트의 인권유린 등 굴곡의 현대사를 헤쳐 나온 칠레 국민들은 그 순간만큼은 보수-진보의 구분, 심한 빈부 격차도 뛰어 넘어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는 듯 보였다.



광부들의 생환 직후 유럽순방길에 나선 피녜라 대통령은 영국 엘리자베스여왕 등 각국 정상들에게 광부들이 땅속에서 가져온 돌 조각을 선물했다. 가는 곳 마다 이제 선진국 도약을 위해 칠레는 빈곤문제 해결과 노동환경 개선을 통한 사회 통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90년대 독재자 피노체트가 하야한 뒤 중도 실용을 표방하며 집권에 성공한 첫 우파 대통령의 변신에 아직도 반신 반의하는 시선이 많지만 부자가 좋은 대통령이 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는 쉬울 것이다. 지금은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여야함이 마땅한 감격의 시간이다.



KBS 정제혁 기자
영웅으로 지상에 돌아온 광부들은 대통령과 축구시합을 했고 어떤 광부는 마라톤을 뛰었으며, 방송 출연 등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차라리 땅속에 있을 때가 더 나았다는 볼멘 소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유명해진 이와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이, 그리고 그렇지 못한 광부들 사이도 예전 같지는 않다고 한다.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동화에는 후일담이 없다. 현실은 동화보다 곡절이 많다. 세상은 영웅의 탄생에 언제나 열광한다. 영웅이 몰락할 때 어김없이 또 장이 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