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한국방송기자대상_뉴스부문_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 추적보도_SBS 김윤수/김요한 기자

비정상의 정상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민주주의는 귀족제나 군주제, 독재체제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북한과 우리를 구분 짓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장치 중 하나가 선거 제도다. 선거가 공정하지 않게 이뤄지는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때문에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들은 선거 사범을 매우 엄하게 처벌한다. 선거를 망칠 의도가 있었다는 것만으로 처벌의 대상이 된다. 범행이 선거에 어떻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야 선거제를 지킬 수 있다 여기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움직였다. 그래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당사자들은 한사코 부인하며 검찰 수사의 부당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증거와 진술이 이어지고 있다. 심리전이라는 다소 아리송한 업무를 수행하던 조직원들은 대선을 앞두고 대폭 증원됐고, 특정 후보를 노골적으로 비방하거나 지지하는 글들이 상당수 발견됐다. 검찰은 국정원 직원들이 안간힘을 쓰며 없앤 증거를 찾아내느라 애를 먹었다.

‘그 까짓 댓글 따위가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겠느냐’는 의견이 있다. 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먼저 물어서는 안 되는 질문이다. 사안의 본질을 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 사범은 의도를 가지고 실행한 것 자체로 중한 처벌을 받는다. 선거에 미친 영향이 미미했다면 형량이 좀 줄어들 뿐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정원의 수많은 엘리트들에게 ‘그 까짓 댓글’을 쓰도록 지시한 자체가 대단한 잘못이라는 이야기다. 영향이 없었다며 핏대를 올리는 일은, 결과에 승복하지 말자고 선동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고 불손한 짓이다.

우리가 표방하는 민주주의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고수해야 한다. 어떤 정파와 이념도 우선할 수 없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을 앞세워서도 안 된다.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그래야 한다. 어떻게 일군 대한민국인가. 민주주의를 위해 지금껏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와 눈물을 쏟아냈는가 말이다. 조금 더디고, 조금 비효율적이라 여겨지더라도, 우리가 표방하기로 한 사회적 합의는 엄수하는 것이 맞다. 어느 누구도 예외여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를 망치려는 일은 반드시 엄단해야 한다. 국가기관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개입하는 일도, 공당이 절차를 무시한 채 엉터리 후보를 내는 일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지하는 편이 가담한 일이라 해서 적당히 넘겨서는 안 된다. 당장은 수세에 몰리고 어려워 질 수 있겠지만 길게 보면 그게 모두에게 이익이다. 법적인 절차에 넘겨진 이상 검찰은 공정한 수사를, 법원은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은 그 일이 제대로 진행되는지를 감시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산다.

검찰의 국정원 사건 수사팀은 수사 착수부터 기소, 재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외압에 시달렸다. 수사 보고서가 유출되고, 석연찮은 방식의 의혹이 몰아치고, 황당한 갈등 끝에 피바람도 불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인생이 망가졌고, 누군가의 가족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법원이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이미 서로가 편을 갈라 손가락질만 하고 있다. 황당하고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식을 전한 기자는 고생했다며 상을 받는데, 사건 당사자들은 징계를 받고 좌천됐다.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뭔가 잘못된 게 많은데 지적하는 이가 물다. 사실이 무엇인지를 따지면 어김없이 누구 편인지 부터 묻는다. 어쩌다 이리 됐는가. 답답할 따름이다.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리라 믿는다. 사회가 조금 더 성숙하면 이러지 않으리라 기대한다. 그 때가 되면 각자의 역할이 무엇이었든, 민주주의를 고수하려 애쓴 이들이 꼭 정당한 평가를 받길 바란다. 누구의 편이어서가 아니라, 각자의 본분에 충실했기 때문에 인정받고 박수 받는 사회. 그것이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