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인들에게 우리는 한류 또는 한류의 한계_MBC 오정환 방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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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2월 태국은 영토 곳곳에 상륙한 일본군의 압력에 굴복해 동맹조약을 맺고 다음해 1월 연합국에 선전포고를 한다. 수십만 명의 일본 군대가 태국을 거쳐 말레이시아와 버 마로 밀고 들어갔는데, 이 때 수많은 우리 청년들이 징병이나 징용으로 함께 끌려온다. 처음으로 한국인 집단이 태국에 들어온 것이지만, 당시 태국 사람들은 아무도 이들을 한국인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지금도 이들에 대한 기억은 태국에 남아있지 않다. 해방이 되고 이들 대부분이 고국으로 돌아가고 일부는 태국 땅에 남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패망이 확실해지자 태국은 1944 년 8월 일본과의 모든 전시협정을 파기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태국 입장을 두둔하지만, 동남아 정글에서 일본과 혈전을 치렀던 영국과 프랑스는 태국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 때 한국에서 전쟁이 터진다. 태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파병을 발표하고 1950년 11월부터 연인원 만 3천여 명의 병력을 파견해 136명의 전사자를 기록한다. 그리고 귀국하는 병사들을 따라 적지 않은 한국 신부들이 태국으로 온다. 요즘 동남아 신부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한국에 오는 것과 비교돼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일제 징용자나 한국인 신부들은 1958년 한・태 수교 이후 형성되기 시작한 초기 교민 사회와 거의 교류가 없었다. 오래 전해져온 이야기와 희미한 기억들만이 이들과의 가느다란 유대를 확인해줄 뿐이다. 방콕 특파원으로 부임한 뒤 그들을 만나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제는 후임자에게 과제로 넘겨야할 것 같다.



1960년대가 되자 한국의 건설업체들이 태국에 진출하기 시작한다. 열대의 나라에서 힘든 근로조건을 겪어낸 그 분들이 우리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건설업 진출의 기본은 우수한 기술력이 아니라 저임금이었다. 태국 노년층은 그 때 가난한 한국에서 온 건설 노동자들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이후 한국의 급속한 발전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자국의 상대적인 낙후에 대한 한탄과 질시를 마음 한켠에 가지고 있다. 더구나 일부 한국인 관광객들이 보이는 교만한 행태는 그들을 분노시킨다.



1989년에 해외관광 연령 제한이 완전 폐지되고 해외여행 붐이 일면서, 1988년 73만 명이었던 출국자 수가 1994년에는 315만 명으로 늘었다. 해외로 나선 우리 국민들이 처음으로 찾은 나라 중 하나가 태국이다. 그로부터 약 10년간 태국의 한국 여행업체들은 초호황기를 누렸다. 가이드 부인들이 하루 종일 다리미로 달러 지폐를 폈다느니, 식당 주인 부부가 새벽에 귀가해 돈을 세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전설이 되어 남아있다. 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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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오정환 기자
2000년대 들어 한국인 관광객은 다시 한 해 100만 명을 넘어섰지만 그들은 더 이상 싹쓸이 쇼핑이나 보신 관광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인은 성미가 급하고 주문한 식사가 늦어지면 참지 못한다는 인식이 아직도 태국 사회에 남아 있지만, 해외여행의 경험이 쌓이는 만큼 해당국에 대한 예의도 높아지는 것 같다. 한국인 출입금지라고 써 붙인 골프장도 이제는 없다.


한국을 찾는 태국인 관광객도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숫자로만 보자면 아직은 한 해 20만 명 선이지만 그들은 구매력 등에서 90년대 해외여행 초기 우리 한국인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고소득층 뿐 아니라 젊은 직장인 학생들 사이에도 한국은 최고의 관광선호국 중 하나이다. 여기에는 한류가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태국에서의 한류는 2003년 ‘대장금’, 2005년 ‘풀하우스’ 등 한국 드라마의 폭발적 인기로 시작해 이제는 태국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또 많은 한국의 대중 가수들도 태국에 열성 팬을 확보해, 인기 가수의 공연이 열리면 10만 원짜리 입장권을 구입한 청소년들이 대형 운동장을 가득 메운다. 4천 달러인 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을 감안하면 한국인 기자인 내가 ‘저 돈이 어디서 났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한류는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쳐 태국산 제품 포장에 한글이 들어가고, 한국의 중저가 화장품이 인기를 끌고, 태국 드라마에서는 ‘한국인처럼 피부가 희다’는 대사가 나올 정도이다. 반면에 한류의 한계 또한 우리의 기대를 한참 벗어난다. 먼저 한국 문화의 소비층이 일부 드라마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젊은 층에 국한된다.


또 드라마와 가요 이외 장르의 현실은 때로 초라할 정도이다. 차마 기사로 쓰지 못했지만, 영화의 경우 한국에서 천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모은 한 영화는 개봉관 하나를 잡고 끝났고 또 다른 영화는 태국에서 ‘2천 달러’를 벌었다. 그리고 일부 분야 공연은 객석에서 태국인을 찾기가 힘든 사실상의 교민 위안 잔치인 경우가 많다. 아직 태국인들은 우리의 일부분만을 좋아할 뿐이다.



덧붙임


방콕에는 MBC와 KBS 연합뉴스 3개사 특파원이 상주한다. 태국 특파원이 아닌 동남아시아 특파원이고 담당 구역이 때로는 그보다 훨씬 넓지만, 아무래도 일상적인 접근이 가능한 태국이 주 취재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MBC의 경우 태국의 뉴스 전문 채널인 TPBS와 업무 제휴 협약을 맺고 뉴스 화면 입수 등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반면에 TPBS를 비롯한 태국의 TV들은 아직 해외 특파원 제도가 없고 외국 뉴스에 대한 관심도 우리보다 훨씬 낮다. 한국 관련 기사에 대해 TPBS는 로이터나 APTN이 제공하는 화면으로 충분한지 MBC에 협조를 요청한 경우가 한 번도 없었고, 다만 태국 정부의 고위 공직자가 한국을 방문하거나 자사 간부들이 출장을 갈 경우 도움을 청해오곤 한다. 전 세계에서 온 외국인들로 북적이는 수완나품 국제공항이나 방콕 중심가를 생각하면 의외인데, 아마도 태국은 자기 나라를 개방하는 것은 빨랐으되 아직 세계로 나가려는 생각은 부족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