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스무 살이 두 번째 스무 살에 묻는다_SBS 이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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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무슨 기자를 놓고 인터뷰를 합니까?” 이주형 기자의 조용한 첫마디였다. 여전히 쑥스러운 듯 한 표정. 테이블에 ‘페퍼민트’ 잔이 놓이고 나서 우리는 “요즘도 야구를 하느냐”고 운을 떼었다. 그가 쓴 ‘그래도 당신이 맞다’라는 책의 담담한 문체와 야구라는 운동의 이미지가 충돌했지만, 야구 이야기에 어색(혹은 긴장?) 했던 그의 입매가 부드러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주형 기자는 모어린이 야구단의 ‘원년’ 멤버인데다, SBS입사 다음해부터는 꾸준히 사회인 야구를 해왔다고.


10여년의 선수생활을 지나 팀에 젊은 선수들이 들어올 때까지, 꽤 오랫동안 주전으로 뛰었다. 휴일에는 수영이나 등산으로 건강을 다지고, 가끔은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달리기도 했다. 운동은 그의 몸에 밴 습관이었다.



지난 해 9월 1년 2개월 동안 진행하던 SBS뉴스의 ‘人터뷰’ 코너를 마무리 중 갑작스레 찾아온 오른쪽 얼굴 마비 증세는 그래서 더욱 큰 충격이었다. 빡빡한 일정속에 열정적으로 몰입했던 탓에,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가 조금 느슨한 틈을 타 몸 안에 사고를 친 것이다. ‘방송’기자생활을 접어야 하나 겁이 날 만큼 두려웠던 시기였다. 치료를 받으면서 많이 회복했지만, 아직까지 웃거나 말할 때 불편한 점이 있다고.(상대방은 잘 느끼지 못한다.) 무엇을 하든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며 살짝 미소를 짓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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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터뷰’ 마무리 단계에서 기획했던 책 출간 작업은 몸이 회복기에 들어서야 시작해 넉 달이 걸렸고, 올해 8월 ‘그래도 당신이 맞다’란 제목으로 출간할 수 있었다. 책을 통해 그는 허영만, 강효, 송진우, 육심원 등 각계의 명사들이 어떻게 좌절과 실패의 위기를 견디고 이겨냈는지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지만, 15년간의 기자생활을 통해 느끼고 고민했던 것들도 털어 넣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 나누려 책을 썼지만 책은 본인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한 번 정리해보고 싶었어요. 나를 위해서, 내가 보기 위해서. 책을 통해서 정리를 해놓으면 10년, 20년 후에는 40세 때의 나를 반추를 해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글, 그리고 기자


글쓰기가 취미냐고 물었다. 그래서 책도 쓰고 블로그(http://storydna.blog.me)도 하느냐고. ‘그건 매일 청소하는 청소부에게 동네 청소하는 게 취미냐고 묻는 것과 같은 얘기’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일상이었던 것이다. “뉴미디어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서 블로그와 트위터를 시작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글을 올리는 일에 의무감이 생기더군요. 그렇다고 싫은데 억지로 하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는 또 조용한 미소. 이주형 기자는 방송기자란 직업에 애정이 깊어 보였다. 기사에 대해 말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작품을 다루는 영화감독이나 작가처럼 보였다. 감독이나 작가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작품을 사람들이 좀 더 재밌게 볼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도 작품성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애쓰지 않는가. 그도 사람들이 딱딱하다고 느끼는 뉴스를 어떻게 하면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있다 한다. ‘뉴스를 이야기로서 전달해보자’는 생각도, 그런 바람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WBC(World Baseball Classic/야구월드컵-편집자 주)때 국가대표팀의 패배를 ‘행복했던 대한민국’과 같이 따뜻한 시선으로 보도할 수 있었던 것도, 시청자를 배려하는 기자의 노력이었다.


“미국 뉴스를 보면 아무개의 보도(report)라고도 하지만, 아무개가 이야기를 한다(has a story 또는 tells a story)고도 말해요. 딱딱하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한테 얘기를 하는 거죠. 좋은 뉴스든 나쁜 뉴스든 그건 다 이야기들이니, 나도 되도록 기사를 이야기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보자. 이런 면에서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옛날이야기


기자가 되기 전 그가 기억하는 스무 살 시절은 어떠했을까. 이 기자가 대학에 입학한 89년은 운동권의 큰 흐름에서는 끝물이었지만, ‘민주화’는 여전히 중요한 화두였다.


“철학과에서 4년쯤 공부하면 ‘세상의 이치’를 달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당시로서는 뭔가 ‘새로운’ 물줄기로 확 들어서는 듯했어요.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과 인식이 올바른 것이었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고민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그래서인가. 이주형 기자의 블로그나 기사에는 ‘말’이 아닌 ‘철학’이 담겨 있다.사용자 삽입 이미지


“편리함으로 위장한 것들에게 혹시 우리는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중에 운전대를 잡고 목적지에 가려하니 길이 생각나지 않는 그런 처지가 되지는 않을까 기우를 한다.”
– 스마트폰에 대해



“3000이닝의 의미는 뭘까? 이겨서 기쁠 때나, 져서 슬플 때나 계속 마운드에 섰다는 것. 또 그렇게 실력을 유지할 만큼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했다는 것.”
– 은퇴하는 송진우 투수의 출전기록의 의미



맨날 ‘고민’하느라 살이 찔래야 찔 수가 없다는 이주형 기자. 한 포스트에는 편상욱 기자의 익살스런 댓글이 달려있다. “살을 희생해서 사유의 주제를 제시하는 당신의 글 솜씨와 사유의 깊이에 공감합니다.”



‘좋은 방송 기자’로 남고 싶어요


이주형 기자는 9월에 중국으로 연수를 떠난다. 북경에 있는 청화대학(淸華大學)에서 ‘연수생’ 자격으로 1년간 공부만 하며 지낼 예정이다.



“제일 후회가 되는 점이 대학 시절에 책을 좀 더 많이 읽지 못한 거예요. 입사 준비하느라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지만 지금이 빠른 거예요. 트위터 보다는 고전을 읽는 게 투자라고 생각해요. 시대가 흐를수록 점점 더 인문학적 소양을 필요로 할 거에요.”



그리고선, 어떤 일을 하든 한 번 방전되면 꼭 시간을 내어 ‘충전’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 또한 내근직 시절 틈틈이 저녁시간을 내어 문화센터의 철학수업과 카메라 강의 등을 챙겨 들었다고.



이주형 기자의 인터뷰를 마무리 하며, 그가 인터뷰 했던 조정래씨 처럼 ‘위대’해지고 싶은 분야가 있냐고 물었다. 우스갯소리로 답하는 듯했지만, 돌아온 답에는 그의 진지한 소망이 담겨 있었다.


“철학을 하면 세상의 이치를 다 알 것 같았다니까!(웃음) 사실 어느 분야에서 위대해지겠다는 생각보다는, ‘좋은 방송 기자’로 남고 싶어요.”



지금은 중국하늘 아래 심각한 표정으로 사유하고 있을 이주형 기자. 내년 이맘때쯤 연수를 마치고 더 좋은 방송기자가 되어 우리 곁에 돌아 올 ‘이주형 기자’를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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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김하나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