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그리고 센다이






MBC 이학수 기자



* 갑작스런 취재 지시


금요일 오후. 조금만 버티면(?) 퇴근할 수 있을 거 같았던 시간. NHK와 CNN이 긴급뉴스를 토해냈습니다. “쓰나미, 일본 동북부 지역 강타” 기자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외신 영상을 들고 영상편집실로 달려가는데 걸려온 선배의 전화 한통. “일본 출장 준비해라” 6일 남짓 일본 취재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 준비 없이 떠나다


여권과 여벌 옷만 챙긴 채 공항으로 달려갔지만 현지 사정으로 그날 저녁 일본행 비행기는 모두 취소. 취재 장비를 점검할 시간을 벌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 것도 잠시였습니다. 지진 피해지역의 통신망이 두절되면서 사전 현지 취재는 불가능했고 현지 코디네이터나 이동수단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맨 몸으로 출발할 판이었습니다.



* 1보는 낼 수 있을까


후쿠시마에 도착한 것은 이튿날(12일) 오후. 우여곡절 끝에 코디네이터는 구했지만 이동이 문제였습니다. 렌트카는 이미 품절됐고 택시를 대절했습니다. 쓰나미가 훑고 간 미야기 현 해안도시 미나미 소마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도로 곳곳이 끊어지면서 우회하기를 몇 차례, 결국. 피난 차량 행렬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시간만 속절없이 흐르고 마음은 천근만근이었습니다. ‘오늘 1보는 보낼 수 있을까.’



* 대피소를 취재하다


벌써 오후 5시. 2시간 남짓 걸리는 영상 송출시간을 생각하면 해안가 접근은 불가능했습니다. 막막함만 더해 가는데 우연히 눈에 띤 초등학교에서 낯선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몸통만한 이불을 들고 모여들었고 버스는 학교 앞마당으로 피난민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단수가 되면서 도로변에는 이동급수차가 물을 나눠줬습니다. 사상 최악의 재난을 맞았지만 일본인들은 그동안 배워온 대로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었습니다. 최소한의 취재만 마친 뒤 위성장비를 이용해 첫 소식을 보냈습니다.



* 배고프고 기름은 없고


1보를 보냈다는 안도감도 잠시. 식당과 편의점은 모두 문을 닫았으니 쫄쫄 굶을 판이었습니다. 숙소마다 피난민들이 넘쳐났고 휴업한 곳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숙소를 구하지 못해 취재진 일부는 차안에서 밤을 지샜습니다. 가솔린 부족도 내내 발목을 잡았습니다. 대부분 주유소는 영업을 중단했고 가뭄에 콩 나듯 문을 연 곳도 주유소 앞 대기차량만 수백 미터였습니다. 판매량도 10리터로 제한된 상황. 끊어진 도로를 돌아가다 보니 가솔린 소비는 더 많은데 구할 길은 마땅치 않고 취재반경이 급격히 쪼그라들었습니다.



* 통신마저 끊기다


지진으로 통신망이 붕괴되면서 회사와의 연락도 쉽지 않았습니다. 취재 지시를 받던 중 전화는 쉴새 없이 끊어졌고 간혹 연결되던 무선 인터넷도 불통. 어떤 스트레이트 기사가 나오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취재나 기사작성도 현상 스케치에 머물렀습니다. 그야말로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었습니다. 서둘러 출발한 탓에 위성전화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 내내 후회로 남았습니다.



* 센다이로 들어가다


1보를 보낸 이후부터 주요 취재무대는 이번 지진의 최대 피해지역인 센다이 시와 외곽 도시로 바뀌었습니다. 생필품 대란을 겪는 시민들의 모습과 폐허 속 병원에서 중증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을 취재해 뉴스로 제작했습니다. 취재 내내 느낀 건 일본인들이 재난 상황을 비교적 침착하게 견뎌낸다는 점이었습니다. 뉴스 송출을 위해 찾은 센다이 TV에서도 마찬가지. 직원들은 여진이 발생했는데도 큰 동요 없이 생방송을 진행했습니다. 그 중엔 쓰나미로 집을 잃고 친척마저 실종된 직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상 최악의 재난 속에서도 일에 매진하는 동료 언론인들의 모습에 한동안 숙연해졌습니다.



* 험난한 취재환경


후쿠시마 지역의 원전이 잇따라 문제를 일으키면서 방사능 오염 문제도 취재진의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통신이 원활치 않다보니 어느 지역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는지, 또 얼마나 심각한지 제대로 알기 어려웠습니다. 원전이 문제를 일으켰던 시점에도 일부 취재진은 사고지역으로 향하고 있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의지할 데라곤 현지 라디오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일본어가 서툴거나 현지 가이드가 없으면 무용지물. 눈 뜬 장님과 같은 상태에서 다닌 셈입니다.



* 잇단 경보..‘현장에서 철수’


결국 회사가 전격적으로 철수명령을 내렸습니다. 기자들의 안전을 우선 고려한 조치였습니다. 최대한 원전지역에서 떨어지라는 지시를 받고 야마가타 시를 경유해 아키타 시까지 벗어났습니다. 피난민들로 붐비는 아키타 공항. 귀국 비행기 편에 탑승하는 발걸음은 무거웠습니다. ‘이제 겨우 적응했는데 현장을 떠나야 하다니’ 아쉬움을 표시하는 선후배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 재난 취재 매뉴얼


재난취재는 당연히 고생스럽습니다. 부족한 것도 많고 생각치도 못한 것들이 발목을 잡습니다. 물론 열악한 현지 상황을 극복하는 것도 기자의 역할일 겁니다. 하지만 모든 취재가 개인기에만 의존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 재난 취재를 위한 신속대응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취재기자 개인의 경험으로만 남기지 말고 함께 공유하자는 것이지요. 이 매뉴얼엔 생존 장비 목록과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요령 같은 게 담기면 좋겠습니다.



* 맺음말


일본인들의 고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원전 방사능 유출처럼 급한 불을 끄느라 바쁘지만 이번 쓰나미의 영향은 꽤 오래 이어지겠지요. 일본 사회를 바꿔놓는 중요한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분투하고 계신 동료 선후배 여러분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