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다. 우리에겐 ‘희망’이 남아있다_KBS 김경래 기자



외롭지 않다.
우리에겐 ‘희망’이 남아있다.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은…. 우리가 얻은 최고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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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김경래 기자



여름은 매년 찾아온다. 그리고 매년 덥다. 심리적으로는 언제나 기상관측 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다. 지난 7월도 마찬가지다. 에어컨이 없는 광장 (우리는 그곳을 개념광장이라고 부른다)은 생각보다 더 뜨거웠다. 그 시멘트 바닥에서 우리는 한 달을 꼬박 보냈다.


파업 전야. “형, 우리가 파업을 일주일 정도라도 할 수 있을까?” 대의명분이 아무리 그럴싸해도 KBS라는 현실이 있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제대로 된 파업을 해 본 일이 없다. 노조에서 잔뼈가 굵은 한 선배의 대답. “야, 그래도 2주는 해야지.” “에이 농담하지 말고.” 허허로운 웃음으로 대화는 끝났다. 아무도 몰랐다. 7월 1일부터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2008년 8월의 기억은 예상외로 강했다. 우리의 심장과 혈관에는 아물지 못한 상처가 남아있었다. 8월 8일 KBS에 난입한 경찰. 두 눈 뜨고 언론의 자유와 KBS의 숨통이 끊어지는 순간을 우리는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경찰과 사원들 간에 몸싸움이 벌어진 건물에 우리의 땀과 눈물이 천장을 타고, 벽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바닥은 체액으로 진창이 됐다. 그 위로 동료들이 나뒹굴었다. 공기는 거친 숨으로 헐떡였다. 분노의 절규가 공명했다.


그 뒤로 벌어진 일은 대한민국 언론사(史)에 오욕과 굴종의 한 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KBS를 지키고자 했던 동료들은 잘려나갔고, 먼 고장으로 기약 없는 귀양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핑계로 회사를 쉬고 팔자에 없는 공부를 시작했다. 뉴스는 집권 세력의 국정철학을 충실하게 반영하며 퇴행했다. 프로그램에선 날 선 저널리즘의 칼을 느낄 수 없다. 애꿎은 연예인들, 진행자들마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렇게 악랄하고 졸렬하게 역사가 청산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사원행동’이라는 조직 아닌 조직이 만들어져 대응했다. 하지만 당장 이길 수 없는 싸움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무력. 좌절. 절망. 포기. 방관. 적응.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사랑하는 프로그램들이 한 칼에 목이 잘리고, 자랑스러운 팀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도 어떻게 해야 할지 눈만 껌뻑거렸다. 오더가 내려오면 오더를 수행하고 술자리에서나 목소리를 높이다 결국 싸움이 벌어졌다. 그리고 쓰린 속과 어지러운 머리, 불쾌한 기분으로 다시 오더를 받았다. KBS는 우리에게 더 이상 자랑스러운 존재가 아니었다. 시청자를 기만하고 권력을 봉헌하고 그들만의 밥그릇 혈투가 벌어지는 작은 지옥이었다. 그저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 직장이었다.



2009년 말 새 노조가 결성됐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600명, 900명, 1000명. KBS를 더 이상 이렇게 둬서는 안 되겠다는 절박감은 우리의 유일한 힘이었다.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 회사와 권력에 대항해 우리는 결국 2010년 7월, 파업으로 일어섰다. 2008년 8월 시작된 눈물이 거름이 됐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에게 방송을 멈춰 KBS를 바꾸겠다는 수사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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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작한 파업은 그것 자체로 새로운 역사였다. 돈도 없고 집회할 공간도 없는 최악의 상황.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참여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상황. 우리는 뜨거운 광장에서 울고 웃고 서로를 위무했고 다짐했다.


그렇게 29일 지나고 파업이 끝이 났다. 업무에 복귀한 우리에게는 파업 중단 결의문이라는 종이 쪼가리 한 장과 무노동 무임금으로 삭감된 깡통 월급 명세서가 남았다. 파업에 참여한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쫓겨났다. 권력의 비판하는 프로그램이 불방 되는 사태가 이후에도 반복됐다. 우리에게 파업은 한 여름 밤의 꿈에 불과했을까.



그럴리가!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언론인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싸움은 이제 정말 시작이다. 우리는 이미 서로를 확인했다. 알고 있다. 저널리즘의 가치, 한국사회에서 KBS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같은 방향을 걸어가는 수많은 동료들의 존재를 몸으로 느꼈다. 가치를 위해서는, 동료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알량한 이익 따위는 포기할 수 있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봤다. 외롭지 않다는 것.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단어가 남아있다는 것. KBS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는 것. 파업으로 우리가 얻은 최고의 선물들이다.


방송을 멈춰 KBS를 바꾸는 싸움은 중단됐다. 하지만 방송을 통해 KBS를 바꾸는 지난한 역사(役事)는 다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