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집중하고 ‘현재’를 산다_KBS 이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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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 기자실에 처음으로 여성 숙직제를 도입한 사람. 차도르를 쓰고 ‘이란’에서 리포팅한 당돌한 여기자. 이런 사람이 책을 냈다면 아마 뻔한 스토리를 예상하긴 힘들 것이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 방송기자 ‘최초의 여성 파리특파원’을 만나러 우리는 방송회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8월의 햇살만큼이나 환하게 웃고 있는 그를 만났다.



Chapt.1 ‘책’ – 내 인생의 재조명



“책 반응은 지극히 주관적이죠. (내가) 주로 좋은 것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자리에 앉자마자 최근 발간한 책 ‘여자 특파원 국경을 넘다’의 반응에 대해 물었더니 질문한 사람이 머쓱해질 정도로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땠어요?” 이야기를 들으러 간 자리에서 되레 질문을 받고 우리는 잠시 당황했다. “아, 좋았어요. 일단 소재가 다양하다보니 전체적인 스토리가 아주 흥미진진했고….” 호의적인 감상평에 다행이라며 반색하는 그녀. 갓 문단에 등단한 작가가 처녀작을 내놓고 궁금해하는 모습이다.



“당신과 같은 상황에서 당신과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책을 출간한 계기를 물으니 오히려 내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았단다. “남들보다 조금 더 경험했을 뿐인데… 글도 잘 못 쓰면서….” 무엇보다 ‘이 세상에 방송기자가 이렇게나 많은데 굳이 나까지…’라는 생각이 컸다. 계속되는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책 쓰는 일을 고사했지만, 사실 그녀는 학창시절 매일 일기를 썼을 정도로 글 쓰는 일을 좋아했다. 기자가 되고 나서 너무 바빠진 생활 때문에 일기를 포함한 모든 기록행위를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 늘 아쉬웠다. ‘책’이라는 큰 과제를 앞에 두고 고민에 빠져있던 어느 날, 지인이 “세상에 기자는 많지만 당신과 같은 상황에서 당신과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책을 써야 할 이유를 찾았다.



“여자가 어떻게 이라크 전을 (리포트)하나?”사용자 삽입 이미지


막상 글을 쓰려고 작정하니 어떠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게 걸림돌이 됐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신없이 바빠져서 간단한 메모조차 남길 생각을 못 했다. 글은 체계적으로 써야 하는데 머릿속에 들어있는 경험들이 죄다 뒤죽박죽 섞여 있어서 시작할 엄두조차 안 났다고.



“우연히 한 선배가 예전에 내게 ‘여자가 어떻게 이란, 이라크 전을 (리포트)하나?’라고 물었던 게 떠올랐고 그 때 영감을 받아 글을 막 써내려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정확히 37일을 논스톱으로 집필에만 매달렸다.


막상 글쓰기에 제대로 발동이 걸리니 원고지로 1200매가 넘는 분량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반 이상을 빼고 만든 책이 지금의 완성본이다. “그 긴 세월을 다 기록해 두진 못 했지만, 대신 순간순간의 ‘느낌’들을 오랫동안 머릿속에 간직해 두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책을 다시 읽으면서 ‘아, 이때는 이랬었지’하며 새삼 놀라기도 해요.(하하)” 자신의 책을 넘기며 아득한 기억 저편의 ‘순간’들을 회상하는 그녀의 눈빛에, 30년 기자 생활의 희로 애락(喜怒哀樂)이 담겨있었다.




Chapt.2 ‘아버지’
– 기자가 된다는 것, 그리고 기자로 산다는 것



“아버지는 내 인생의 잠재적 멘토(mentor)”


책의 첫 페이지에 ‘나의 아버지 이강현 기자께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헌서(獻書)가 눈에 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있어 ‘누구보다 강직하고 가난하셨던 분’으로 기억된다. 당시 만연하던 촌지문화를 거부하고 언론의 자유를 위해 기자협회를 만들어 초대회장과 2대 회장을 역임하셨던 일은 단순히 ‘아버지’가 아닌 ‘기자선배’의모습. 취재와 보도에 있어서만큼은 어떤 편견에도 치우치지 않기 위해 애쓰셨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집이 조금 힘들 때도 있었지만 한 번도 아버지를 원망해본 적은 없다. 다만 소설가가 꿈이었던 어린 시절, 신문기자인 아버지께 왜 소설이 아닌 뉴스 쪼가리만 쓰냐며 투정을 부려보긴 했다.


그러나, ‘기자’라는 이름아래 집요하게 취재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건, 그로부터 머지않은 어느 날이었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여성이고 싶었어요.”


대학 졸업 후 ‘기자’란 직업을 택한 이유는 생각외로 단순했다. “경제적인 독립”. 30여 년간 꾸준히 기자생활을 해 온 사람의 발언이라기엔 뭔가 부족해 보였지만, 당시엔 남녀가 동등한 위치에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이 거의 없었다는 말에 수긍이 갔다. 불문과 전공을 살리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피’가 어디로 가나. ‘기자’는 필연이었다.




Chapt.3 ‘특파원’
– 해외로, 세계로 뻗어 나가는 삶



“해외연수는 우연과 운명의 장난이었죠.”


처음 국제부 발령은 온전히 그녀의 불어실력 덕분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배워온 불어를 놓지 않고 틈틈이 해외연수 기회를 노리던 찰나, 입사 7년 차에 한 선배의 팩스 심부름을 하다가 우연히 모집공고를 발견했다. 때마침 그 날이 모집마감일이었고 바로 지원서를 넣어 잡아챈 기회. 파리에서의 1년이 그렇게 다가왔다. “그 때만 해도 해외를 여행할 수 있는 기회는 무척 한정적이었는데, 기자학교 틈틈이 배낭을 메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보니 내 시야가 많이 트이는 것을 느꼈어요. 다른 나라 방송기자들은 어떻게 리포트를 하는지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죠.”



“제가 좀 무대뽀 정신이 강해요.”


파리 해외연수 후 10년이 지난 어느 날, 꿈에 그리던 파리특파원 발령을 받았다. 늘 꿈꿔온 일이긴 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프랑스뿐 아니라 주변 동유럽, 서유럽, 중동지역,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전부 커버해야 했고, 입사 초기의 마인드로 돌아가서 ‘맨땅에 헤딩’하는 정신으로 뛰어야 했다. 그래도 일이 힘들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그녀, 기자가 천직(天職)인가 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나라로 ‘예맨’을 꼽았다. 의외였다. 예맨이라면 사막으로 뒤덮인 세계 최빈국 중 하나가 아닌가. “나도 어렸을 적 세계지도를 보며 이 나라는 절대 가지 말아야지 했던 곳이었어요. 그런데 이 나라를 나중에 세 번이나 가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 예멘은 중앙정부가 존재하고 있긴 하지만 원시부족국가다. “그들은 마치 옛날 ‘예수님 시대’ 때에 살던 사람들 같았어요. 하고 다니는 복장 하며 샌들에 나귀까지…. 그 모습이 흡사 그 곳만 세상으로부터 시간이 멈춰버린 듯해 보였죠.”



“선진국 위주의 사고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국제화나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거죠.”


예맨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선진국 위주의 사고방식’을 꼬집어 비판하기도 했다. “주로 ‘글로벌화(globalization)’라고 하면 자연스레 사람들은 선진국을 떠올리고 그들의 논리로 세상을 보죠.” 문득 스쳐가는 그녀의 얼굴에 진심어린 우려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런데 이 세상은 선진국보다 선진국이 아닌 나라들이 훨씬 더 많지요. 진정한 세계화를 이루려면 이런 소외된 나라까지 포용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줄도 알아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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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4 ‘기자’ – 이 길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심도 있는 뉴스로 뉴미디어 시대에서 기자로서의 입지를 넓혀가세요.”



뉴미디어 시대가 도래 하면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나타나는 오늘날, 기자라는 직업 자체가 모호해진 것도 현실이다. “1인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기자가 설 자리가 좁아진다는데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심층취재에 집중해야 해요. 또 뉴 미디어 시대에서 지상파뉴스의 역할과 자세에 대해서도 심각히 고민해봐야 하죠.” 심도 있는 취재 보도로 뉴스에 신뢰성을 더하며 국제화된 리포트 수를 더 늘려 세계정세를 따라가야 한다는 진심어린 조언이었다. 다른 나라의 아이템 선택도 유심히 관찰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자는 ‘전달자(傳達者)’입니다.”


기자를 세 글자로 표현해달란 질문에 기자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이란다. 기자는 남이 안 가본 곳을 가거나 남이 보지 못 하는 것을 보는, 그런 ‘특권’을 가진 직업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당부가 뒤따랐다. “예전에 누군가 이런 말을 했어요. 요즘 기사는 기사가 아니라 해설 같다고…. 아무리 세월이 흐르더라도 기자라면 항상 팩트(fact)에 충실해야 합니다!”



Chapt.5 ‘꿈’ – 방송이란 전시에 계속 살고 싶다



“미래에도 계속 방송 현장에 남아있고 싶어요.”


모든 꿈을 다 이뤘을 것만 같은 그녀에게도 혹시 더 이루고 싶은 ‘꿈’이 남아있을까? 스스로 소박하다면서 꺼낸 꿈은 역시나 ‘기자’ 였다. 취재 현장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그 외의 다른 형식으로라도 방송을 계속 하고 싶다고. “저는 모든 부문에 열려있어요. 미국 CBS 방송의 <60minutes>란 뉴스프로를 알고 있나요? PD와 진행자가 모두 7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임에도 방송을 하지요.” 기자가 되고 난 후 늘 전문기자를 꿈꿔 왔듯, 지금도 현장에 남아 끝까지 기자로 살다 은퇴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세상 각지를 여행하며 사진을 남겼으면….”


언제부턴가 그녀는 해외 오지 같은 델 갈 때면 “내가 (살아서) 여기를 또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은퇴 후 꼭 하고 싶은 일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것이다. 30여 년 간 기자생활을 하며 개인적인 기록은 하나도 못 남겼던 한(恨) 때문이었을까? 그간 기자일로 바빠서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순간’의 느낌들을 손에 잡히는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기자로서 모든 것을 다 이뤘을 것 같은 사람. 세상만물 전부 다 접해봤을 법한 사람. 하지만 직접 만나 본 그녀는 서슴없이 “We are the world!”를 외치며 세상이 분쟁 없는 평화로운 곳으로 바뀌기를 소망하는 사람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철칙으로 하루하루를 정직하게 사는, 그런 사람.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현재에 집중하며 사는 그녀의 치열한 삶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남들이 가는 길을 가기보다 스스로 개척한 길을 걷길 선호하는 그녀, 그녀의 발걸음이 또 어디로 향할지 기대해본다.


<노현주, 유성애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