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바고, 藥과 毒의 경계에서_YTN 윤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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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출입처에서 취재활동을 하다 보면 엠바고와 적지 않게 만난다. 주지하다시피 엠바고는 일정 시점까지 보도를 유예하는 것을 말한다. 취재원, 대개 정부 부처 당국이 출입기자단에 나름대로의 사정을 설명하고 엠바고를 전제로 브리핑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최근 외교통상부 기자단은 ‘미디어오늘’이라는 매체와 일부 언론인, 언론학자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주 리비아 한국 대사관 소속 국정원 직원 추방사건을 한국 국민만 몰랐다며 이는 기자들이 정부의 엠바고 요청을 수용하는 바람에 일어났다는 지적이었다. 언론의 직무유기였다고 힐난한 것이다.


엠바고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 7월 18일 외교부 고위 당국자(유명환 장관의 막말과 관련해 공인의 발언은 실명 보도가 원칙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약속한 이상 익명으로 한다)가 엠바고 브리핑을 자청했다.



“주 리비아 대사관 정보담당관의 현지 정보활동과 관련해 리비아 정부 당국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로 인해 한-리비아 양국 간 이견이 발생하게 됐다…(중략)…한국 정보당국 대표단이 다음주 초 리비아로 가서 리비아 정부와 협의할 예정이다. 국내 언론보도가 나올 경우 리비아 정보당국의 반발이 예상돼 원만한 협의의 진행을 어렵게 할 수 있기에 ‘국익차원’에서 별도의 통보가 있을 때까지 보도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한다…(이하 생략)”



이 고위 당국자가 말한 ‘국익’이란 포스코가 추진 중인 5조 원 짜리 계약, 현대건설이 서명 직전단계에 있는 12억 달러 짜리 계약 등 한국 언론의 보도가 양국 간 협의에 악영향을 미칠 경우 리비아에 진출 중인 국내 기업의 수주 활동 등에 문제가 생기고 결국 경제적 측면에서 국익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다는 것이었다.


이 엠바고 브리핑이 이뤄질 때까지 국정원 직원 추방 사건을 인지하고 있던 언론사는 없었다. 혹시 새나갈 경우에 대비해 미리 엠바고를 요청하며 사건의 개요를 기자단에 알려준 것이다. 물론 이상득 특사의 리비아 방문이 영포회 사건과 관련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나오자 그게 아니고 국정원 직원 추방사건 해결을 위해 갔다는 것을 설명함으로써 진화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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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윤경민 기자

‘국익’이라는 ‘미끼’


결국 ‘국익’이라는 ‘미끼’에 기자단은 엠바고를 수용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 선교사와 농장주 체포사건과 주한 리비아 경제협력대표부 잠정폐쇄라는, 국정원 직원 추방과 관련이 있지만 엠바고에는 직접 저촉되지 않는 사항이 제보를 받은 특정 언론사를 통해 보도됐고 (이 두 가지 사항은 엠바고 브리핑에 없던 내용이다) 뒤이어 리비아 언론이 국정원 직원 추방사건을 보도한데 이어 ‘미디어 오늘’이 ‘한국 국민만 몰랐던 리비아 의혹’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내면서(7월 27일) 엠바고는 자동 파기됐던 것이다.



그렇다면 기자단은 직무유기를 했던 것일까? 변명 아닌 변명이지만 기자단은 ‘국익’을 위해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보도를 유예해 달라는 정부 당국의 요청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MBC의 신경민 전 앵커가 처음부터 잘못된 엠바고라고 지적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그는 외교부가 말한 ‘국익’이란 게 ‘국익’이 아니고 ‘권력의 이익’이란 점을 꿰뚫고 있었던 것일까?




권력의 ‘이익’과 언론의 ‘직무유기’


필자는 권력에 대한 견제가 언론의 임무라는 신념을 갖고 기자생활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국익으로 포장한 권력의 이익을 구별해 내는 것 또한 언론의 임무일 테다. 언론의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그 비판대로 수용하되, 국익과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도 치열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직무유기에 대한 평가를 하기는 아직 이른 듯 싶다. 리비아 사건이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구체적 개요, 다시 말해 국정원 직원이 어떤 활동을 하다가 리비아 당국으로부터 추방당했는지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정부 당국은 아직도 속 시원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엠바고 해제 후 언론사 간 경쟁이 붙으면서 리비아가 10조 원에 해당하는 건설공사를 요구했다는 보도와 한국인 선교사 등을 추방형식으로 석방하기로 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보도도 잇따랐다. 정부는 그런 추측성 보도는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이런 보도들이 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훗날 드러날 것이다.



편의주의?…!


그러나 나는 엠바고가 언론의 편의주의라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한다. 지난 7월 23일, 베트남 하노이. ARF(아세안 지역안보 포럼)에 참석했던 유명환 장관이 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한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파장을 일으켰다. “한나라당 찍으면 전쟁이고, 민주당 찍으면 평화라고 해서 거기에 다 넘어갔다. 그렇게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살아야지…”



당시 헤드 테이블에 있던 나로서는 매우 아픈 기억이다. 오찬이 끝나고 프레스센터로 돌아온 기자들은 장관 발언을 다음 날인 24 일(일요일) 정오부터 기사화하기로 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로 익명처리하기로 한 것도 유 장관의 요청이 아닌 기자단 자체의 결정이었다. 그야말로 언론 편의주의가 작동한 것이다. 이 역시 ‘미디어 오늘’의 보도로 유명환 장관의 실명이 보도됐고 야당이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의 날을 세우는 바람에 모든 언론이 고위 당국자라는 익명보도에서 유명환 장관이라는 실명보도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어처구니없게도 필자는 처음엔 아예 그 기사를 쓰지도 않았다. 일요일 정오부터 쓰기로 했지만 월요일 오전 늦게서야 쓰고 말았다. 또 한 번 변명하자면 유 장관의 그 발언보다는 다른 발언에 주목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통해 북한을 특정하는 포괄적 추가 제재에 나설 것이라는 것과, 연말까지 매달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실시돼 북한을 압박할 것이라는 점, 또 아인혼미 대북제재 조정관이 8월 초 한국과 일본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순방하며 대북제재 방안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할 것(8월 초 한일 양국만 방문했지만)이라는 점이었다.


ARF를 무대로 한 치열했던 남북 간 천안함 외교전에 이어 한미 양국이 북한 압박을 더 강화할 것이라는 것이 유 장관 발언의 요지라는 게 외교안보 현안을 담당하는 나의 판단이었다.


솔직히, 앞서 말한 ‘막말’은 전혀 기사꺼리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만큼 정치적 감각이 무뎌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공인의 발언을 기자단이 알아서 익명 보도한 것은 빗나간 담합이라는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의 따끔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빗나간 담합’이라는 따끔한 비판


하지만 엠바고가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순기능도 있다. 지난 4월 4일 인도양에서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드림호 사건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당일 밤 9시 반 외교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사건의 개요를 기자단에 알렸다. 한국인 5명이 탄 유조선의 피랍사건이라는 대형사건이란 숨긴다고 해서 숨겨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일단 관계부처 회의 후 즉시 언론에 알린 것이다.


이후 각 언론사들의 경쟁적인 보도가 쏟아졌다. EU 해군 대변인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해적들이 몸값 2천만 달러를 요구했다는 내용까지. 그러나 관련 보도는 4월 하순 이후 거의 사라졌다. 정부가 언론의 보도는 해적들과 선주사 간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보도 자제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기자단의 편의주의(?)가 맞물려 아예 사건 해결 때까지 엠바고가 걸리게 됐다. 통상 피랍사건과 관련한 경쟁적 언론보도는 석방협상에 악영향을 미친다. 한 외교부 관계자에 따르면 해적들은 한국 언론보도를 모니터하면서 협상에 이용한다고 한다. 특히 가족들이 애태우는 모습,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지 여부 등을 확인하며 몸값을 올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언론이 아예 조용히 있어주는 게 협상에 유리해진다는 것이다.



때론 순기능도 있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배 한 척 납치하면 몸값으로 통상 40만 달러를 받는 것이 국제 시세라는데, 소말리아 해적들은 한국 선박을 납치하면 횡재를 한양 몸값을 천정부지로 올린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 언론의 보도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게 외교부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피랍사건은 사람의 목숨이 걸린 사안이다. 권력은 견제해야 하지만 애꿎은 인질의 안전에 위협이 가해질 수 있는 경쟁적 보도는 자제돼야 할 것이다. 여기에 언론편의주의와 엠바고의 순기능도 있으니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바로 얼마 전에는 남미 볼리비아를 방문한 정부 관계자들을 동행 취재한 모 방송 취재진이 지역개발 요구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던 지역 주민들이 도로를 봉쇄하는 바람에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한 마을에 고립됐다가 24 시간만에 풀려났다. 이 방송사는 혹시라도 취재진의 신변안전에 이상이 있을까 걱정돼 외교부에 기자단에 엠바고를 걸 것을 요청했다가 바로 그날 밤에는 볼리비아 정부를 움직이게 할 목적으로 엠바고를 해제할 것을 요구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고 한다.


더 황당한 건 이 방송사의 한 경쟁사가 그게 왜 엠바고가 성립되느냐며 문제제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동종업계 동료들의 신변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사안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