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뉴스 앞에 서면 두렵다_SBS 김소원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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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면 어김없이 「SBS 8시 뉴스」 데스크에 앉아 시청자를 기다리는 이, 김소원 앵커다.
차분한 중저음과 신뢰감 가는 외모로 7년째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1995년, 23살의 나이에 입사했으니 방송경력 15년이 조금 넘었다. 그 중 10년은 보도국에서 뉴스를 전했다.

한국방송협회는 ‘올해의 앵커상’에 김소원을 선정했다. 기자가 아닌 아나운서 출신으로 앵커상을 받은 것은 최초이기에 의미가 더 크다. 보도국 내 모든 기자들의 뉴스를 전달하는 그는 기자에 대해 누구보다 객관적인 평가를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방송기자연합회가 만난 사람’ 첫 번째 주인공으로 꼽은 이유다.


가급적 인터뷰를 피한다는 그와 어렵사리 약속을 잡았다. 찜통더위에 매미도 숨을 멈춰 버린 일요일 오후 SBS사옥 1층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청바지에 하얀 재킷을 걸친 그의 모습은 30대 초반 줄에서 시간을 잊은 듯 했다.


어색함을 깨려 “방부제를 섭취하는 모양”이라며 농담을 건넸는데, 반응이 영 신통찮다. 인사치레나 과도한 친절함은 키우지 않는 스타일이다.



올해의 앵커상을 받으셨는데, 아나운서로는 ‘최초’라면서요?



그러게요. 10년 동안 보도 일만 했어요. 의도치는 않았는데 꾸준히 하다 보니 장벽들을 깨뜨리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어느 때부터인가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더라고요. 상을 주셔서 영광이고, 저로 인해서 주변환경이 환기된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나운서 출신 앵커여서 도움이 된 게 있습니까?



아나운서가 앵커를 하는 것엔 분명 장점이 있어요. 기자는 보도국, 기자 사회 안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수용자 입장을 고려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전 기자수업을 받거나 출입처에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정말 순수하게 시청자 입장에서 뉴스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뉴스와 시청자 간 브릿지 역할을 해주는 앵커 역할을 최대한 살리려고 하죠. 뉴스의 주인은 결국 보도국이 아니라 시청자니까요. 그래서 회사에서 절 (앵커로) 오랫동안 썼다고 생각해요. 예뻐서 쓴 것 같진 않아요.



여기자를 앵커로 앉히는 추세인데, 현장에 대한 갈증은 없나요?



두개를 모두 갖고 있으면 좋겠죠. 기자가 요리사라면 저는 상차림을 해서 ‘드셔보시라’고 설명해 주는 사람이에요. 음식에 대해선 만든 사람이 제일 잘 알겠지만, 먹는 사람 입장에선 음식을 설명하고 서비스해 주는 사람도 필요한 거잖아요?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앵커멘트 작성은 어떻게 하나요?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사를 쓴 기자, 편집부, 부서와 끊임없이 대화를 해요. 기자들이 써 놓은 앵커멘트를 참고로 해서 다시 작성하죠. 기사 내용엔 담기지 않지만 앵커멘트로 소화해주길 바라는 멘트는 넣어주고요. 앵커멘트에 많은 양의 정보를 담을 필요는 없어요. “이제부터 이러이러한 뉴스가 시작되니 봐주세요.” 하는 뉘앙스를 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함께 진행하는 남자 앵커와의 호흡은 잘 맞나요?



의사소통을 원활히 해요. 뉴스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하죠. 축구를 할 때도 공만 차는게 아니라 서로 소통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야 좋은 경기가 된다고요. 뉴스도 그래요. 편집부, 취재부서, 시청자와 이야기를 많이 해야 좋은 뉴스가 나오는 것 같아요.



김소원 앵커가 본 ‘기자’는 어떤 건가요?



기자만큼 근사한 직업이 없다고 봐요. 사회적으로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공감대를 확산시킬 수 있죠. 그런데 그만큼 양날의 칼을 쥐고 사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고, 그 칼로 자기뿐 아니라, 시청자도 찌를 수도 있고요. 언제나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야겠다는 마음을 잃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기자 초년병 때 서슬 퍼렇던 마음이 출입처에 매몰돼서 무뎌질 수도 있잖아요? ‘거리두기’가 중요할 것 같아요.


기자가 기자로 남느냐, 출입처의 홍보맨으로 남느냐는 거리두기에 달린 것 같아요. 기자도 양날의 칼을 가지고 있듯 기자를 보는 세상의 시선에도 양날의 시선이 있거든요. ‘기자는 권력과 친하게 지내잖아’ 라는 시각과, ‘그래도 사회의 썩은 부분을 지적해주는 건 기자밖에 없다’는 생각, 이렇게요.



앵커 자리를 7년째 꿰차고 계신데, ‘장수 비결’ 좀 알려주세요.(웃음)



글쎄요.(한참 곰곰이 생각하다) 수행하듯 살면 된다고 할까요? 전 생활이 뉴스예요. 다른게 없죠. 정~말 재미없게 사는 사람입니다. 뉴스를 보고, 뉴스를 위한 분장을 하고, 뉴스를 위한 원고를 만들고….



8시 뉴스에 맞춰 돌아가는 그의 하루 일과는 매일 매일이 똑같다. 점심 때 즈음 출근해서 오후 2시에 회의를 하고 4시까지 취재정보와 신문을 읽으며 준비를 한단다. 5시에 회의를 한 번 더 하고 나서 분장, 머리를 하고 지하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6시 30분쯤 8시 뉴스 사전 녹화를 하고, 끝나자마자 주요뉴스를 사전 녹음 한다. 그리고 8시 뉴스가 시작하기 바로 직전까지 앵커멘트를 쓰고 다듬는다. 뉴스가 끝나면 뉴스내용과 의상, 중간에 들어온 뉴스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등을 평가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퇴근하면 10시, 그 이후엔 ‘자기만의 시간’이란다. 이 생활이 7년째다. 득도의 경지가 머지않아 보인다.




매일 같은 시간에 한 자리를 지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몸과 마음에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분기별로 한 번씩 아프고, 링거도 많이 맞았어요. 그런데 수행을 해서 그런지, 내공이 쌓여서 그런지 이젠 조절이 가능해졌어요. 목소리가 안 나오면 큰일이니까, 여름에도 실내에선 스카프를 잘 하죠. 김소원, 하면 ‘스카프 패션’이라고들 할 정도로요. 주말엔 체력관리를 해야 하니까 무조건 ‘널부러져’ 쉬어요.



힘든 날도 있을 텐데, 어떻게 견디나요?



힘이 들 땐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 생각해요. 정말 지나가더라고요.



그는 한 글자 한 글자 연필로 꾹꾹 눌러 쓰듯, 성실히 답했다. 한참을 생각했고, 대답하다가 자신이 없다 싶으면 “난 생각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대체로 생각을 많이 하면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줄게 마련이다. 최대한 자기를 숨기는 인터뷰가 되길 바란다고 해서 ‘그러마’ 했다. 그랬더니 심각한 뉴스를 전하는 표정으로 “저 정말 재미없이 사는 사람인데, 뭘 물어볼 건데요?”라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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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실제가 많이 달라요. 뉴스에선 힘차고 중성적인 느낌이었는데, 아주 여려 보이네요.
(방송에서 보여 지는 이미지와 실제의 그는 놀랍도록 달랐다.)



그렇죠? 방송이랑 굉장히 다르다는 말을 곧잘 들어요. 제가 뉴스에서 카리스마가 있어보인다면 8시에서 9시, 그 시간에 저를 ‘베스트’로 만들어놨기 때문일 겁니다. 막 아프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기침도 안 나오고, 배도 안 아파요. 8시 뉴스에 맞춘 인간형이 된 거죠.



원래 보도 쪽에 관심이 많았나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95년도 입사했을 땐 선배들이나 팀 내에서도 ‘쟤는 예능으로 빠질 아이’라고 했었어요. 목소리도 우렁찬 편이고 좀 건강해 보였나보죠? 끼가 있단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쪽으로 안 빠졌죠.



그럼 뉴스와 인연은 어떻게 맺어진 건가요?


입사해서 뉴스를 하기 전까지 6~7년 정도 기간이 있었는데, 그 때까진 특정 부분에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어요. 어디에 넣어도 무난한 정도? 뉴스형 아나운서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없었죠. 그 무렵 뉴스오디션 공고가 나서 지원했는데 앵커로 발탁돼 이렇게 오래하고 있네요.



그가 처음부터 탄탄대로만 걸었던 건 아니다. 광고회사에 다니다가 친한 동기를 따라 입사원서를 내고 재미삼아 시험을 치렀는데 어라, 단계 단계마다 통과를 했단다. 그러고선 아무런 준비 없이 ‘덜컥’ 아나운서가 됐고, 호되게 당했다. 동기들이 잘 나갈 때 그는 라디오 뉴스도 못해 어미를 연습해야 했고, 리포터를 하러 다녀야 했다. 예쁜 옷을 입고 따뜻한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새벽에 오들오들 떨며 가스 배달하는 아저씨를 만나고, 검정고시 준비하는 학생 인터뷰를 하고, 돼지똥도 치웠다.


한번은 해남에 촬영을 갔는데 차가 막혀 서울까지 올라오는데 무려 16시간이 걸렸다. 촬영도 힘들었는데, 차까지 막히니까 서러워서 눈물이 나더란다. 방송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힘든 고비가 있을 때마다 그만두고 싶단 생각도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다행이다. 그 때의 경험들이 사람 냄새 나는 ‘김소원표’ 뉴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김소원표’ 뉴스는 어떤 겁니까?



몸으로 부딪히는, 투신하는 뉴스죠. 감정을 드러낸다는 말은 아니에요. 내가 오늘 뉴스에 뛰어들었구나, 느끼는 날이 있어요. 저는 그걸 알죠. 뉴스 안에서는 얼마든지 자신을 감출 수 있는데, 그런 날엔 스스로 부끄러워요. 뉴스 안에선 앵커도 발가벗고 있어야 해요. 최고의 레시피로 완벽한 뉴스를 만들어서 후회 없이 전해드리고 내려와야 시원한데, 뉴스가 잘 안될 때도 있어요. 솔직히 어떤 때는 무난히 ‘읽고 내려온’ 적도 있어요. 그런 날엔 후회가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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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진행 시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은 뭐죠?



뉴스의 첫 시청자는 저라고 생각해요. 내 안에서 김소원이 또 다른 김소원에게 전달하는 것을 모니터링 하죠. 앵커 멘트를 소화해서 전달하는 게 정말 단순한 업무인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론 설명할 수 없이 복잡해요. 똑같은 멘트라도 어느 부분에 힘을 주느냐에 따라 맥락이 달라지거든요.


평이하게 뉴스를 전달하는 앵커들도 있는데, 전 앵커가 전달하는 내용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요. 가슴 아픈 일인 경우엔 마음에 절절하게 와 닿을 수 있게 멘트를 치고, 가당치도 않은 내용은 드라이하게 가요.



얼마 전 천안함 사건 보도 때 ‘눈물 보도’가 화제가 됐었죠?



눈물을 안 흘렸으면 좋았겠죠. 뉴스 진행 시 감정조절은 기본인데, 부끄러웠어요. 그런데 의외로 사회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어요. ‘김소원이 시청률 1, 2%는 올렸다. 하지만 다시 울면 안된다’고 했어요. 울보앵커 된다고요. 앞으로는 안 그러려고요. 앵커가 미리 재단해서 울어주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이전에도 방송에서 몇 번 눈물을 보였었는데, 평소 눈물이 많은가요?



그 날 뉴스를 보셨으면 다들 우셨을 거예요. 저희는 오픈스튜디오인데, 울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을 봤더니 다 울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마음이 더 흔들렸죠. 가장 기억에 남는 뉴스예요.



여성 앵커로 힘든 점은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32살에 메인 앵커를 맡아서 회의실에 들어갔는데, 까만 양복 입은 남자들만 스무 명 넘게 앉아계신 거예요. SBS공채 1기가 아직 부장 승진 연차가 안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지금까지도 여자 부장이 한 분도 안계세요.



나지막하던 김소원 앵커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여성들의 자발적 노력과 환경이 함께해야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는 얘기는 ‘일하는 여성’이라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여성에 국한해서 보자면, 육아와 가사 때문에 회사 일을 ‘서브(sub)’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니 남자동료들처럼 치열하지 않다는 말을 듣게 돼요. 여성들 스스로 자초하는 부분도 있죠. 그리고 죽어라 노력해도 알아주지 않고 승진도 안 시켜주고, 좋은 출입처도 안 주는 상황도 존재해요. 이런 환경 또한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여성과 환경이 함께 바뀌어야할 문제예요.



그에게 ‘롤 모델’은 딱히 없다. 혼자 잘나서가 아니라, 뉴스를 꿈꾸면서 공부한 게 아니라서 그렇단다. ‘저렇게 뉴스 해야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달려왔다고.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뛰었더니 어느 순간 ‘앵커 김소원’을 롤 모델로 삼는 후배들이 생겼다. 그는 후배들에게 “욕심 부리지 말고 일에만 집중하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고 했다. 얼굴이 알려지면서 얻게 되는 부수적인 이득에 관심 두지 말고 콘텐츠에 몰두하라고 충고한다.


뉴스에 발탁되기 전까진 ‘내가 앵커하면 이렇게는 안해야지’라고 생각한 것들이 있어요. ‘가르치려 하지 말아야지, 잘난 척 하지 말아야지, 내가 먼저 판단해서 앵커멘트 하지 말아야지…’ 초창기엔 이런 게 확실했는데 10년을 하다 보니 점점 헷갈려요. 남들은 10년 하면 누워서 떡도 먹겠다고 하는데 저한테 뉴스는 절대 쉽지 않아요. 그래서 더 애가 닳게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뉴스앞에서 한 없이 작아진다고 해야 할까요? 점점 앵커라는 자리가 어렵게 느껴져요.



아직도 “뉴스 데스크 앞에 서면 두렵다”는 그의 고백에서 수십 년 간 글을 쓴 여류작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쓰기 전에는 항상 두렵고, 무섭고, 도망가고 싶다”고. 맞다. 세월 쌓인다고 알게 되는 일도 아닌 것 같다. 극한 완벽을 향한 그의 시선이 한없이 매력적으로 느껴진 건 비단 기자만의 것이 아닐 게다. 그녀는 가슴 저 깊숙한 곳에 ‘불’과 ‘얼음’을 품고 뉴스를 전한다. 일에 대한 열정, 뭔지 모를 결핍. 자신의 좌우명 ‘스스로 떳떳한 삶을 살자’를 지키고자 그녀는 오늘도 저녁 8시에 자신을 맞추고 있을 것이다.


<임지은 편집위원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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