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을 무기로 세상을 흔드는 인간_MBC 최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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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다. 솔직하다.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그는 MBC 최일구 기자이다. 그는 지난 7월 5일부터 9일까지 열린 ‘방송기자와 함께하는 저널리즘 스쿨’ 제1기에서 최고의 강연자이자 ‘다시 만나보고 싶은 언론인’으로 선정되었다. 이렇듯 예비 언론인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받고 있는 최일구 기자의 매력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꿈을 꾸고 꿈을 이뤄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에게는 아직도 이루고 싶은 꿈이있다. 솔직하고 유쾌한 매력을 가진 최일구 기자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를 만났다.


‘숫기 없던 한 아이’가 ‘최고의 앵커’가 되기까지


햇빛이 쏟아지는 어느 카페에서 만난 그. ‘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최일구 기자의 눈은 햇빛을 받은 커피 잔처럼 반짝거렸다. 최일구 기자가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막연하게 간직했던 꿈은 세 가지였단다. 작가, 기자, 그리고 가수. 그 중에서 그가 방향을 잡은 쪽은 ‘기자’였다. 기자는 사회에 도움을 주며 자신도 발전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민을 이어가던 어느 날 신문에서 본 ‘사진 한 장’은 그의 꿈을 확신하게 했다. 해외로 발령을 받게 된 어떤 특파원의 사진과 이름이 실린 기사였다. 그는 그 사진을 보면서 나중에 ‘나도 이런 사람이 되면 멋지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그의 표현대로 ‘우연’이 ‘필연’이 된 순간이었다.


당시 경쟁이 치열했던 사회부 기자가 된 그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가슴 속에는 또 다른 도전과제가 있었다. 바로 ‘앵커’가 되는 것이었다. 이왕 신문이 아닌 방송 기자로 들어온 만큼 나중에 한번은 앵커를 해 봐야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꿈은 훗날 그에게 앵커의 이름을 가지게 하는데 큰 자산이 됐다. 기자 생활에 열정을 다하는 것은 물론 방송에서 필요한 순발력과 침착함을 기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결국 그는 오디션을 거쳐 당당히 앵커의 자리에 선다.



촌철살인의 한 마디를 여유 있게 날리는 최일구 기자에게도 의외의 모습이 있다. 어릴 적부터 ‘숫기가 없고 어수룩해서’ 남들 앞에 서는 것이 어색했다는 것이다. “생방송을 하는 첫날이었어요. 이런 제가 깜깜한 스튜디오에 혼자 앉아서 얘기를 한다는 건…. 정말 긴장되는 겁니다. 첫 방송을 위해 일주일 동안 밤낮으로 열심히 연습하고 준비했었는데, 9시가 땡! 하고는 시작을 알려주는 빨간불이 들어오지 않는 거예요. 순간 멈칫 했는데 당황해서 실수를 연발했죠. 심지어는 너무 긴장해서 여당을 야당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소설에 등장하는 ‘손오공’마냥 도망치고 싶었어요. 그 때 만약 더 못하겠다고 박차고 나왔다면 정말 대형사고 났을 거예요.(웃음)”


이러한 크고 작은 실수들은 그에게 큰 ‘보약’이 됐다. 녹화된 영상을 반복해서 보고 잘못된 몸짓이나 멘트를 고치는 등 첫 날의 실수를 만회해 나갔다. 이제는 그때의 일을 추억으로 생각하며 웃을 수 있는 베테랑 진행자임에도 생방송이라면 언제나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록제조기’, ‘준비된 애드리브’, 속 시원한 멘트로 시청자들 매료시켜…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는 사람의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그의 멘트는 언제나 거침없다. ‘어록제조기’라 불리는 최일구 기자의 ‘속내’를 들어봤다. “홈쇼핑 채널을 보면 쇼 호스트들이 시청자들에게 관심 받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하죠. 나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어떻게 하면 뉴스를 소개하는 곳에서 짧은 시간 동안 시청자의 눈을 고정시킬 수 있을까 고민해요. 물론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을 높이겠다는 욕심도 있었고…(웃음)” 애사심을 바탕으로 시작된 그의 색다른 앵커멘트는 커다란 이슈가 되곤 했다. 최일구 기자의 어록만 모아 만들어진 영상이 있을 정도다.


단순한 웃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짧게 던지는 한마디는 뉴스계의 새로운 ‘바람’이 되었다.



물론 그에게도 자신에 대한 그런 이미지로 부담이 될 때가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해진 멘트로 자칫 무미건조한 진행에 지루해 있었던 시청자들에게 뉴스 진행의 색다른 묘미를 주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자신의 철학으로 ‘꼬집을 것은 꼬집고 넘어가는’ 그는 뉴스에서의 새로운 앵커상(像)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포기란 없다


‘카메라 출동’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던 시절, 최일구 기자의 취재 열정도 남달랐다. 초창기에 카메라 기자들만 구성되었던 ‘카메라 출동’은 90년대 초반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취재기자와 카메라 기자가 함께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그가 취재 중에 겪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줬다.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 중에 하나가 ‘포항 ○○ 아파트’ 사건이에요. 어느 날 부산 화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재를 불법 매립한다는 제보가 어느 교수님의 편지로 왔어요. 그 제보를 받자마자 현장에 가서 몰래 버리는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해서 성공적으로 취재를 마쳤죠. 그런데 다음 날 해당 군청에 확인해보니 유해 쓰레기가 아니었던 거예요. 방송은 내보내야 하는데 정말 큰일이었죠!”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절대 그냥 돌아갈 수 없었어요. 결국 새로운 취재거리를 찾아냈어요. 수소문 끝에 포항의 한 아파트가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고 있다는 사실을 입수하게 되었지요.” 실제로 1994년 2월에 보도된 이 사건은 현장에서 붕괴 위험이 높은 아파트 문제를 파헤침으로써 결국 해당 업체를 통해 아파트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수 있도록 조치가 취해지기도 했다. 최일구 기자의 기자 정신이 느껴지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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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의 옥석이 가려지고 있으니 이제 만두 먹어도 되는 것 아닙니까?


저희들도 저녁 때 만두 시켜 먹었습니다.


항공기 상대로 장난전화하면 큰일이니까 장난전화하지 마세요. 징역 3년입니다.


Interviewer, 카메오출연, 예능 나들이, 자문위원회, 강연회… 다양한 활동 종횡무진


뉴스에서만 그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07년 대선특집 방송 차원에서 진행된 MBC ‘무릎팍 도사’ 출연은 그가 역시 어록 스타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당시 선거기획단의 권유로 나가게 되었다는 ‘무릎팍 도사’에서는 강호동의 거침없는 질문공세에 곤혹을 치렀다고.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는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천만관객을 동원한 자칭 영화배우(?)로서의 자부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영화가 흥행이 되었을 때 기분이 좋았죠. 카메오도 배운데…(웃음) 저에게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일구 기자는 현재 ‘뉴스와 인터뷰’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인터뷰 상대로부터 ‘진심’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한다. “나도 아직 경험이 풍부하지 않지만 최대한 질문을 짧게 하고 그 사람에 대한 공부를 하고 들어간다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잊지 못할 인터뷰 상대로는 원로배우 남보원 씨를 꼽는다. “지금 일흔 다섯 살이신데 내가 그 나이가 되어 남보원씨처럼 ‘건강하고 정열적으로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요. 정말 존경스러운 분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러한 유명세로 많은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리게 되었지만, 가끔은 부담감과 당혹감이 따르기도 한단다. 최일구 기자의 말을 빌리면 영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있다’에서 처럼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느닷없이 친한 척 하면 조금 당황스럽다고.


‘연예인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최일구 기자는 길을 건널 때에도 신호를 지키려고 애를 쓰게 된단다.


각종 강연 섭외도 잇따른다. 벌써 전국 대학교를 돌아다니며 강연할 계획도 있다. 한편 ‘해군발전자문위원’에 참여하기도 했다. “2005년에 국방부를 출입하면서 대한해군 취재를 했는데 그 해 해군에서 감사패를 받고 그 인연으로 자문위원회를 하게 되었어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싼 우리나라에서 해군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전문가적인 식견 때문이 아니라 해군을 사랑하는 한 국민으로서 참여했어요.”



나의 제 3의 꿈, 그리고 인생


바쁜 와중에도 그의 꿈은 계속되고 있다. 노래를 만들어보고 싶어 틈틈이 작업하고 있다는 그는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콘서트를 열어보고 싶다고. 뉴스데스크 마이크가 아닌 노래하는 마이크를 들고 콘서트 무대에 서 있는 최일구 기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언론인의 경험을 담은 책 출판에 대한 관심도 있다. 언론사에 지망하는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싶은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진정성과 유머’야 말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대답한 최일구 기자. 진실하며 가식적이지 않는 삶은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기 위한 유머로 채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한다.


삶을 유머와 진정성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그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의 마음속 에도 꿈틀거리고 있는 꿈이 있나요?”


<조을선, 방혜정 명예기자>




일 문 일 답


Q. 최일구 기자에게 애드리브란?


삶의 경험이다.



Q. 나에게 가장 치명적인 매력은?


솔직함



Q. 다시 태어나면 하고 싶은 일은?


멋진 사업



Q. 가장 행복했던 순간?


내가 태어났던 순간



Q. 가장 힘들었던 순간?


인생이란 항상 힘든 것이다. 군대 있을 때, 신병훈련소, 취직할 때



Q. 인상 깊게 읽은 책은?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우리말도 한자다’



Q. 요즘 제일 고민하는 것은?


‘뉴스와 인터뷰’의 인터뷰이를 어떻게 고를까



Q. 요즘 제일 관심 있는 것은?


건강



Q. MBC 안에서 가장 친한 사람은?


김동섭 논설위원



Q. 나의 멘토는?


선친



Q. 나에게 카메오란?


삶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