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이해관계 속, 정의란 무엇인가?_한국경제TV 박준식 기자



한국경제TV 박준식 기자



지난 9월 어느날 늦은 귀가길이었다. 아파트 입구에 붙어 있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성남보호관찰소 이전 반대”


‘님비현상이 우리 동네도 마찬가지네’


범법자들의 관리 시설 설치를 반길 주민은 없을 터이다. 그런데 우리 아파트만이 아니었다. 인근의 다른 아파트 곳곳에도 같은 내용의 플랫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렇게 취재를 준비하는 가운데 우연히 접한 책이 ‘정의란 무엇인가’다. 성남보호관찰소 취재와 이 책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잠시 화제를 돌려 또 다른 결론부터 내리자면 이 책은 절대 ‘정의’의 의미를 분명하고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책의 중간 중간 단편적으로 정의의 개념을 설명하지만 나같은 보통사람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속 시원한 결론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저자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말한다. “정치철학은 논쟁을 주고받는 학문이며, ‘정의’ 수업의 묘미 하나는 학생들이 철학자에게, 다른 학생에게, 그리고 나에게 반박한다는 점이다.” 정의는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이해 당사자의 처지에 따라, 때로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책을 접한 것이 정말 기막힌 우연이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보호관찰소 반대는 뻔한 님비현상이며 보호관찰소 설치로 누군가는 선의를 피해를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머물렀을 것이다. 정부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국민들은 당연히 받아 들여야만 하는가, 주민들은 자신들이 당할 불이익에 대해 어느 정도의 목소리와 주장을 할 수 있는가.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문제를 다루고 전달해야 하는 기자에게 폭넓고 유연한 사고는 필수이건만, 잠시 나는 그런 태도를 버린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책에는 한때 세계적으로 악명을 높였던 ‘유나바머’, 데이비드 카진스키(과학기술에 반대에 학자를 대상으로 폭탄 테러를 벌렸던 인물)와 그의 동생 테드 카진스키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회적 책임감에 형을 신고했지만 결국 가족에 대한 충직으로 형의 구제 활동에 나서야만 했던 동생. 가족애가 우선일까 사회적 책임감이 우선일까. 최선을 다해 활동하고 있지만 신체 장애를 겪고 있는 대학의 치어리더를 팀에서 제외시키는 문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운동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보기 좋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치어리더의 조건에 완벽한 신체조건은 반드시 필요한가. 천문학적인 수익을 거두고 있는 미국의 프로선수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타당한 일일까.


타고난 재능에 따른 보상이라고 하기에는 수익이 너무 크다는 비판도 일리가 있지만 그만한 보상을 통해 그런 재능을 백분 발휘하게 것이 굳이 잘못된 일이라고 볼 수는 없는 문제다.


미국도 대학 입학이 우리만큼 큰 관심사다. 그리고 교육과 대학 입학에 있어 부모의 소득이 큰 영향이 미치는 것이 우리나 미국이나 다르지 않다. 그래서 미국의 상당수 대학은 경제적으로 열등한 소수인종이나 특정 집단에게 특혜를 주고 있다. 우리로 치면 농어촌 특별 전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회적 약자나 특정 계층에게 대학 입학의 특혜를 부여하는 것은 합리적인 절차인가.




한국경제TV 박준식 기자

이렇게 책에서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정의라는 잣대를 통해 다시금 생각게 한다. 기자는 법관도 아니고 경찰도 아니다. 어떤 사건과 현상에 대해 심판을 내리거나 섣불리 결론을 내려서는 안되는 처지다. 다만 독자들이, 시청자들이 올바른 판단과 이해를 할 수 있게 치우치지 않는 판을 깔아줄 수만 있다면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칼과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를 실천하려는 정의의 여신상처럼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자칫 편견과 오만함에 빠질 수 있는 기자들에게 균형과 형평성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