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연평도에서의 사투는 계속된다_SBS 김종원 기자

 


못다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연평도에서의 사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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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의 연평도…취재를 시작하다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했습니다. 물불 가리지 않는 기자들이라지만, 배가 없이 섬에 들어갈 순 없는 법. 군이 입도를 엄격히 통제했기 때문에 뭍에서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얘기로라도 들어 볼까, 가까스로 연평도를 빠져나온 주민들을 만나려는 취재진이 인천 연안부두에 몰렸습니다. 놀란 주민들이 묘사하는 연평도는 절망이었습니다. 반 토막 난 집에서부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중국집은 전쟁터의 모습이었고, 연락이 두절된 채 생사조차 확인이 안 되는 이웃, 친지를 걱정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전쟁 피란민과 같았습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에, 주민들의 증언을 들을수록 충격도 더해졌습니다.


사흘이 지나서야 연평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포격 후 처음으로 열린 바닷길이다 보니, 수백 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부두로 몰려들었습니다. 여객선과 옹진군청 소속 배, 해군 고속정까지… 연평도로 향하는 배라면 어디든 취재진이 올라탔습니다. 제가 탄 옹진군청 배는 5시간이 지나서야 연평도에 도착했습니다.


실제로 보니 제가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심했습니다. 영화 세트장에 와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골목골목 성한 곳 없는 마을은 기왓장 한 장, 깨진 유리조각 하나까지 모두 기사거리가 됐습니다. 취재진은 들어왔지만, 주민들은 떠날 준비에 분주했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주민이 뭍으로 나간 상황에서 남아있던 주민 백여 명 도 일제히 섬을 비우기로 한 겁니다.



민박 할 곳도, 먹을곳도 없던 그 곳


옷가지만 간신히 챙겨 떠나는 주민들은 불안감에 아쉬움을 느낄 틈도 없어 보였습니다. 이렇게 주민을 태운 배가 섬을 떠나자, 연평도가 말 그대로 텅 비어버렸습니다. 주민도 아닌 제가 다 섭섭했습니다. 이러다보니 민박을 할 곳도, 밥을 먹을 곳도 없었습니다. 결국 내국인 기자들은 물론, 머리가 노란 서양 외신 기자들까지 연평초등학교에 몰려들어 숙식을 해결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제 섬에 남은 사람이라곤 취재진과 공무원, 그리고 끝내 고향을 떠나지 못한 30명 남짓 되는 주민이 다였습니다. 기자들하는 일이 다 비슷하다 보니, 회사는 달라도 그날그날 취재하는 내용은 다 비슷했습니다. 인터뷰이를 만나러 가도, 포탄 떨어진 곳 취재를 가도, 북한의 개머리 진지가 보이는 해안절벽에를 올라도, 어디서든 타사 취재진을 서너팀 씩은 만났습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취재 경쟁도 나날이 뜨거워졌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피해상황을, 이 텅 비어버린 적막감을 어떻게 하면 더 있는 그대로 시청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나날이 깊어졌습니다.



취재진 철수 요청, 유래없는 풀단을 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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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점심 무렵, 싸이렌이 울렸습니다. 모두 대피하란 긴박한 방송도 나왔습니다. 한번 경험했던 공무원과 마을 주민들은 놀라 비명을 질렀습니다. 기자라고 겁이 안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대피소로 다 피할 수도 없는 법. 무슨 일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대피소 밖에서 계속 취재를 했습니다. 그날 저녁 군은 취재진 철수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안전상의 이유라고 했습니다. 추측컨대, 대피상황과 같은 비상상황이 생길 경우 취재열에 불타는 기자들은 마을 주민처럼 쉽게 통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취재진의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군의 요청대로 모두 철수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대로 다 남아 있을 수도 없었으니까요. 일단 장비가 많은 방송사들은 따로 만나 협의를 했습니다. 결국 회사당 취재기자 2명, 카메라 기자 2명씩만 남긴 채 모두 섬에서 빠져나가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풀단’이 꾸려졌습니다. 취재내용은 모두 공유를 하고, 방송기자들의 스탠드업도 각 사 카메라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촬영해 주기로 했습니다. 매일 아침 각 방송사 취재진들이 모여 아이템 회의를 함께 하는 진풍경도 연출이 됐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이런 풀 방식에 처음엔 당황스러웠습니다. 취재경쟁이 완화되면서 몸은 편해졌지만, 똑같은 그림을 재료로 더 효과적인 기사를 써야 하는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연평도 사건 열흘째 되는 날, 저는 일주일간의 취재를 마치고 섬을 나왔습니다. 그새 작은 섬마을에 정이 들어, 막상 나간다니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북한이 연평도에 폭탄을 쏜 지 20일이 다 돼 갑니다. 피난했던 마을 주민들도 하나하나 섬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들의 못다 한 얘기를 듣고 전하기 위해, 연평도엔 아직도 취재진 100여명이 남아 취재를 벌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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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김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