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고, 세련되게 싸우고 싶다.

당당하고, 세련되게 싸우고 싶다.



내가 파업에 참여한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다.


2007년 입사했을 때만 해도 KBS 보도본부는 활기가 넘쳤다. 그 때도 지금처럼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일했지만 취재하거나 기사를 쓰면서 부딪치는 일은 드물었던 것 같다. 누구도 깨지 못할, 깨뜨려서는 안 될 원칙이 있었다.


‘성역 없는 비판’, ‘공영방송의 가치를 증명하는 보도’.


KBS 보도본부에 확고하게 둘러쳐진 이 원칙 안에서 나는 진보주의자보다 매력적인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오히려 젊은 내가 ‘아차’ 싶을 정도로 참신하고 날카롭게 권력의 치부를 드러내는 선배들의 보도를 볼 때마다 질투가 날 정도로 자극을 받곤 했다.


….정권이 바뀐 지 2년 반. 4년차 기자가 된 지금, KBS 보도본부는 조용하다. 기사 아이템을 가지고 “왜 권력의 눈치를 보느냐”라고 따져 묻는 광경도 사실은 보기 어렵다. 얼마 전 ‘박재완 청와대 수석의 논문 이중게재 의혹’ 리포트가 9시 뉴스에서 누락돼 탐사보도팀 선배들이 문제제기를 했을 때, 함께 분노하면서도 그렇게 싸울 수 있는 선배들이 한편으론 반갑고 부러웠을 정도다.


KBS가 비판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적에 대해 윗사람들은 ‘평기자들이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비판하는 아이템을 들고 오지 않는다’라고 받아친다. 평기자들이 ‘나태’하기 때문이지 윗선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는 거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맞는 말이다. 현재 사건기자인 나만 봐도 소위 ‘얘기되는’ 아이템을 낸 적이 거의 없다. 하루에도 몇 번 씩 스스로 무능하고 무기력하다고 생각한다. 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 ‘센’ 아이템으로 ‘세련되게’ 싸우고 싶지만 이내 포기하고 만다. ‘성역 없는 비판’ 원칙이 무너진 지 2년 반. KBS 보도본부는 정권의 통제보다 무서운 ‘무력감’이라는 무시무시한 적에 포위당했다. 정권에 굴복한 조직의 문제가 개인의 능력문제로 완벽하게 치환돼버렸다. 의지도 약하고 끈기도 부족한 나는 더 이상 KBS에서 신선한 자극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은 꿈도 솔직히 희미해졌다.


‘KBS를 살리고 싶습니다.’


언론노조 KBS본부의 총파업 슬로건이다. 흰 수건에 검게 쓰인 글씨를 보고 있으니 울컥했다. 비판기능을 상실한, 죽은 거나 다름없는 KBS를 살리는 일, 그것은 나를 살리는 일이다.


내가 자극받고 발전할 수 있는 조직으로 KBS를 되살리고 싶다. ‘왜 이런 것은 고민하지 못했냐’고 따져 묻는 조직에서 일하고 싶다.


파업 이틀째, 사무실이 아닌 본관 계단에 모여 앉은 선후배, 동기들… 그동안 너무 ‘조용하게’ 있어서 파업에 참가할 것인지 물어보기도 조심스러웠던 사람들이 더위와 비를 뚫고 이렇게 와 있다. 합법 파업인데도 폭력으로 우리를 내쫓는 회사에 맞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의 무력감을 깨는 생생한 자극이다. 총파업을 통해 노조가 내세운 조건 전부를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살리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파업에 참가한 나는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 파업을 통해 기자가 되려고 했던 초심을 되찾고 싶다. 당당하고 세련되게 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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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