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과 아이폰_KBS 송형국 기자

<매트릭스>와 <인셉션>의 차이


  ‘제2의 현실’을 다룬 영화들은 많습니다. <매트릭스>가 대표적이고,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엑시스텐즈>도 흥미롭지요. <아바타>의 주인공들도 기계장치에 연결돼 ‘다른 세상’과 만납니다. 여기까지는 <인셉션>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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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와의 링크를 그린 영화들.
<매트릭스> <엑시스텐즈> <아바타>. (위부터)



  이전의 영화 속 인물들은 다른 세계와 링크됐을 때 잠들어있을 뿐, 논리적으로 별다른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주인공이 잠들어있을 때 누군가 생명을 위협하거나 링크를 방해하는 정도였죠. <인셉션>에서는 등장인물이 잠들어있는 꿈과 꿈들이 강하게 영향을 주고,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합니다. 영화 속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방식에서 <인셉션>은 한단계 나아간 플롯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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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계에서 자동차가 뒤집히면, 다음단계에서
천장과 바닥이 바뀐다 – 꿈과 꿈의 상호작용.


  <인셉션>에서는 꿈, 그 꿈 속의 꿈, 이렇게 최대 6단계까지 들어갑니다. <인셉션>의 긴장감은 각 현실들이 서로 충돌하고 간섭하는 데서 나옵니다. 전 단계의 꿈에서 자동차가 뒤집히면 다음 단계 꿈에서 호텔 복도의 천장과 바닥이 바뀌는 식입니다. 각 개체들이 자발적인 생명활동을 하면서 서로 관계하도록 한 것이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영화 속 엑스트라들을 인체의 백혈구에 비유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같은 전개를 논리적으로 가능하게끔 각 현실마다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는 점, 중력에 차이가 있다는 점 등 물리학적 장치를 동원한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인셉션>과 아이폰


  거친 비유지만, 이같은 영화의 줄기는 21세기가 유지 운영되는 패러다임과 개념상 걸맞습니다. 이를 들여다보기 위해 IT 발전에 따라 인류의 생활상이 변화해온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80년대 : PC (개인화, 이념의 퇴조)


                              ↓


     90년대 : 인터넷 (네트워크화, 탈권위)


                              ↓


     2000년대 : 모바일 (무선망, 공유의 확장)


                              ↓


     2010년대 : 스마트폰 (新생태계 구축)



 


  너무 도식적인가요? 개인의 가치가 이념보다 중시되고 이들 개인이 망으로 연결되면서 그간 세상을 지배하던 권위와 수직구조는 급격히 붕괴됩니다. 개인들의 망이 모바일이라는 날개를 달고, 이런 흐름이 아이폰이라는 혁신적인 물건으로 수렴되고 있는 요즘입니다.


 
  아이폰의 혁신성과 관련해 최근 KBS 홈페이지에 실린 안철수 교수의 강의가 명쾌합니다. 안 교수는 각각의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활동하며 각자의 이익을 얻고, 그렇게 ‘아이폰 생태계’를 형성하는 모습에 주목합니다. 개별 생명활동이 다른 개체와 유기적으로 맺어지면서 영역간 ‘통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애플과 국내 대기업의 대결을 두고 “수평적․자발적 비즈니스 모델과 수직적․효율적 비즈니스 모델의 일대 충돌”이라고도 했지요. 명료하고도 설득력 있는 정리입니다. 다만 국내 대기업들이 애플과 실적 대결은 할 수 있을지언정 창의에 있어서는 그저 뒤쫓아갈 뿐이라고 봐야겠죠. 어찌 됐건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각자의 위치에 기반한 서비스를 즐기며, 모바일화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이전과는 다른 생태계에서 살아가게 됐습니다.



  <인셉션>은 현실과 현실, 꿈과 꿈들이 자발적으로 상호작용하며 뛰어노는 마당입니다. 혹여 오해하실지 몰라 첨언하면, 저는 <인셉션>과 아이폰의 제작 철학이 서로 통한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창의적인 예술작품이나 제품이 나오는 데는 이처럼 시대적 배경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다만 각 현실들의 연결구조가 직선적이라는 점은 <인셉션>의 한계라고 보겠습니다.



 


노장사상이 유의미한 이유


  <인셉션>을 보고 노장사상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노장사상을 비롯한 동양적 세계관이 오늘날 주목받는 이유는 ‘나’를 우주의 중심에 놓고 접근했던 과거 서양철학의 존재론과 달리 인간을 우주의 일부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근대 과학이 발전하기 이전 자기중심적인 인간들은 감히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자기중심적 인간들이 아이폰과 같은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여전히 수직적, 권위적 사고방식에 갇혀 살고 있는 모습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요. <인셉션>처럼 ‘수직’과 ‘수평’을 정교하게 직조한 작품을 생태학적 세계관으로 접근해볼 가치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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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의 최신 연구결과에 근거


  <인셉션>의 설정이 황당하다는 반응도 많지만 영화의 이야기는 현대 뇌과학에 탄탄한 근거를 두고 있는 대목이 많습니다. 뇌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꿈과 현실 모두 뇌가 만들어내는 가상 실제라는 관점에서 거의 동일하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최신 뇌과학 연구 결과에 근거한 ’꿈의 공유’ 설정.



  또 꿈꾸는 동안 자신이 꿈을 꾸고 있음을 아는 ‘자각몽’ 이론도 꾸준히 연구되고 있는데,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스티븐 라버지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자각몽을 꾸며 꿈을 공유하는 실험도 이미 수십년간 진행했다고 하더군요. 꿈과 현실, 의식을 아우르는 ‘자각몽 이론’으로 학계에서 주목하고 있답니다. 모두 영화에서 적극 채용한 최신 이론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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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대칭의 붕괴’를 그린 영화 속 이미지들.



  영화 속 각 현실들의 활동은 ‘대칭-대칭의 붕괴’에서 뼈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주 탄생의 빅뱅 이후 대칭과 그 붕괴가 행성을 만들고 인간의 생명활동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은 현대 자연과학의 상식입니다. 영화에서는 대형 거울이 마주보거나 파리 시가지가 통째로 접히는 등 대칭의 이미지들이 직접 드러나기도 합니다. 건축물들이 끊임없이 붕괴하는 이미지를 곳곳에 심어놓은 것도 의도된 연출입니다. 주인공 일행이 설계한 꿈대로 작전이 진행되다 무의식에 의한 돌발 변수가 튀어나오면서 균형이 무너지고, 다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인물들을 보며 관객은 고민하게 됩니다.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어떡해야 하는 걸까, 좀더 적극적으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인셉션>을 2번 보는 관객이 유난히 많은 이유이기도 하고, 관객의 태도 변화까지 이끌어내려 애쓰는 감독이 평가를 받을 만한 대목입니다.


  그나 저나, 마지막 장면에 돌아가던 토템은 도대체 도는 걸까요 쓰러지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