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특별위원회] 언론,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저널리즘 특별위원회] 
언론,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2기 저널리즘특별위원회 집담회

기자들의 자존감이 말이 아니다. ‘기레기’란 말은 일상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보라. 조금만 기사가 마음에 안 들면 해당기자에 대한 온갖 조롱과 냉소가 쏟아진다. 물론 과거를 돌아보면 반성할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그래도 의미 있는 기사마저도 악플에 난도질당할 때면 마음속은 썩어 들어가기 일쑤. “나는 달라요, 우리방송은 달라요”. 차별화도 쉽지 않다. 대중은 기자 집단을 도매금으로 평가한다.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한 언론. 해법은 뭘까? 저널리즘 특별위원회 3월 회의에선 이에 대해 논의했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자업자득이라고 자책할 것까진 아닐 거다. 학자들은 시민사회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라고 작은 위로를 건넨다.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를 맞아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신념과 감정을 우선하기 시작했다고, 반지성주의가 확대되고 엘리트를 혐오하는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있다고, 특히 한국은 정파주의가 강력해 모든 이슈를 네 편 내편으로 갈라 판단하는 경향이 갈수록 독해지고 있다고, 한마디로 기자들도 엘리트 전문가를 혐오하는 시대적 변화의 대표적 희생양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사실 돌이켜보면 언론의 권위가 살아있었다는 시절, 개별 기자들의 능력과 윤리의식이 지금보다 뛰어났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권력에 대한 굴종도 있었고 ‘구악’으로 불리는 갑질도 많았다. 그래도 그때는 진실의 검증자이자 수호자로 존중받곤 했으니 확실히 시대의 변화에서 신뢰하락의 이유를 찾는 것도 한 방법일거다. 그러니 심하게 자책하진 말자. 그저 변화된 시대에 새로운 적응을 고민해보는 수밖에.


▲ 사실에 대한 팩트체크를 하는 뉴스 코너 (KBS의 팩트체크K, MBC의 팩설기, SBS의 사실은)

“힘들수록 기본에 충실하자”. 참석자들은 진실추구와 정확한 보도가 신뢰회복의 출발이라는데 이의가 없었다. 다만 진실이란 개념의 모호함이란. 객관적 팩트의 나열과 기계적 중립은 더 이상 진실도 아니고 그런 책임 회피 때문에 신뢰를 잃은 만큼 좀 더 적극적으로 가치에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반면 과거에 기계적 중립조차 지키지 못한 업보 때문에 신뢰가 추락했던 만큼 기계적 중립이라도 당분간 철저히 지키는 게 우선적 과제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른바 ‘팩트체크’에 대해서도 의견은 다양했다.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시대, 기성언론의 확실한 차별화 포인트임은 분명하지만 주제선정과 취재에서 어쩔 수 없이 편향성이 드러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방송사별로 주 시청층의 성향에 코드를 맞추려는 상업적 계산이 ‘펙트체크’에도 깔려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었다. ‘펙트체크’ 자체가 신뢰회복의 지름길만은 아니라고 할까.
신뢰의 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또 다른 해법은 ‘투명성’이다. 마치 위생문제로 의심받는 식당이 주방을 투명하게 공개하듯이. 해외 언론과 비교해 한국 언론의 뉴스룸은 여전히 폐쇄적이고 불투명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사선정과 논의과정을 좀 더 공개하고 고민을 공유한다면 그만큼 신뢰회복에 일정부분 도움이 될 걸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뉴스룸을 공개하고자 했던 일부 대안 언론 사는 여론의 압박으로 오히려 저널리즘의 자율성을 침해받는 느낌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투명성이 자칫 독립성을 위협할 수도 있는 불편함을 시사한다.

정파적 갈등이 유난히 두드러진 한국에서 진보 보수를 뛰어넘어 저널리즘이 추구해야 할 근본가치로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자유언론은 표현의 자유에 기초한 근대 민주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이고, 실제 언론을 정치적 목적의 실현 도구로 간주하려는 권력에 맞서는 방어 논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어떤 민주주의냐에 대한 이견은 존재한다.
신뢰회복을 위한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제안들도 나왔다. 예를 들자면 기업이나 이익단체들처럼 직역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회사나 협회 차원의 조직적 노력이 필요하다든지, 권위적 엘리트 이미지를 벗기 위해 겸손하게 소통하는 장을 마련한다든지, 이달의 방송기자상 수상작들에서 보듯이 땀과 열정으로 만들어낸 뛰어난 보도들을 더욱 널리 알린다든지.
마녀사냥 식의 악플로 인한 기자들의 고충도 소개됐다. 자유언론의 상식으로 비판보도를 했을 뿐인데 정파적 시민들에 의해 악플에 시달리는 건 물론 신상이 털려 트라우마에 가까운 고통을 겪은 기자들이 적지 않았다. 한 기자는 “여론의 비판과 공격이 때론 권력기관보다 더 두려운 대상이 되고 그것이 자기검열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시간이 답일까? 꾸준히 대중과 소통하면서 저널리즘의 사회적 효용과 편익을 이용자들이 인식하게끔 부단한 노력과 결과를 축적해나가는 방법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신뢰란 스스로 신뢰할 만해야 남도 신뢰할 수 있는 법이다. 스스로 돌아보기. 자성은 그 출발이 될 거다. 그런 면에서 저널리즘 특별위원회에선 다음번엔 ‘뉴스룸 내부의 소통’을 집중 논의하기로 했다.

MBC 박상권 기자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