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특별위원회] 피의사실 공표와 춤추는 저널리즘

[저널리즘 특별위원회]
피의사실 공표와 춤추는 저널리즘

9월 26일, 저널리즘 특별위원회는 2개월 동안 온 나라를 큰 소용돌이 몰아넣은 이른바 ‘조국 사태 보도’,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및 언론의 받아쓰기’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피의사실 공표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야 하며, 검찰의 흘려주는 정보를 ‘단독 기사’라는 제목으로 보도해 온 언론의 관행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데 참석자 전원이 깊이 공감했다. 하지만 피의사실 공표금지라는 우산 아래서, 수사 기관이 법과 상식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은폐한다면 이를 어떻게 견제할 것인지, 즉 우리 사회가 이런 권력 기관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지, 어떻게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 것인지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위원 A 피의사실 공표 금지 강화는 박상기 전 장관 시절부터 준비하고 있던 안이다. 당장 시행이 마땅하지만, 이 방안이 시행되면 법조 기자들은 기사 쓰기 매우 힘들어질 것이다. 

위원 B 현재 검찰발 기사는 검찰이 흘려주는, 검증되지 않은 보도가 대부분이다. 피의자에겐 반론의 기회도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검찰과 언론의 공생이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은 언론사별로 돌아가면서 기사를 흘리는 방식으로 경쟁을 붙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언론도 알면서 용인해 왔던 단독 기사란 게 기자가 발로 뛰어서 쓴 것인가? 여론 재판 관행, 검·언 공생 관계는 깨야 한다. 지금보다 기사량이 줄어도 양질의 기사를 쓰는 일이 더 중요하다. 현재 보도는 재판 단계는 기사는 거의 없고, 기사가 오로지 검찰 수사 단계에만 집중되는 기형적인 구조다.

위원 C 피의사실 공표가 검찰의 실수나 기자와의 친소 관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검찰 수사, 특히 특수 수사 기법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검찰은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된 수사를 할 때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여론몰이를 통해서 수사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방법을 써 왔다는 뜻이다. 검찰이 한두 마디 흘리면 맥락을 아는 법조기자들이 스토리텔링을 하고, 검찰은 이를 다시 수사의 동력으로 삼아온 것이다.

위원 B 검찰이 흘려주는 걸 단독 기사라며 사실처럼 보도하는 관행은 바꿔야 한다. 취재와 보도 관행을 바꾸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위원 D 일본에는 검찰발 뉴스가 거의 없다. 압수수색 현장 스케치 같은 것도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검찰의 브리핑과 기자회견 정도가 검찰발 기사의 전부라고 봐도 된다.

위원 E 그런데 우리는 이미 국민의 심판이 내려진 상황에서 재판 과정으로 간다. 

위원 C 왜 법조에서 현재와 같은 취재·보도 관행이 정착됐는지 역사적으로 살펴볼 필요도 있다. 예전에는 특히 시국 사건의 경우 검찰의 공소장대로 판결문이 그대로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까 검찰 단계에서의 기사가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경쟁적으로 검찰이 흘리는 말 한마디 더 듣는 기자가 유능한 기자였고, 검찰로부터 정보를 경쟁적으로 얻어내는 게 취재였던 셈이다. 이런 식의 기사 경쟁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으면 조국 사태 보도와 같은 일은 되풀이될 것이다.

위원 E 현장 취재는 품이 많이 들고 힘든 일이다. 여기저기 가봐야 하고, 싫다는 취재원 쫓아가서 반론도 들어야 한다. 그런데 검찰의 정보는 생생하고 그림도 쫙 그려진다. 여기에 언론사간 경쟁까지 껴들게 된다. 검찰이 비공개적으로 흘린 발언을 확인하다 보면 다른 언론사에서 이미 기사가 나가는 것이다. 일선 취재기자 입장에서는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위원 C 만일 ‘법조 기자들이 30대~40대 초반 기자들이 아니라 서구의 주요 언론처럼 전문기자로 구성돼 있으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쓸 기사와 안 쓸 기사를 좀 더 지혜롭게 걸러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봤다. 어쨌든 이번 조국 사태는 한국 언론사에서 큰 분수령이라고 생각한다. 인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위원 E 참고할 사례가 있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자살보도 준칙에 따른 기사 쓰기는 그나마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자살보도 준칙과 같은 기준이 필요하다. 전 언론사가 공통으로 시행해야 한다. 다만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다. ‘서초동’의 진짜 권력은 수사·기소를 하는 게 아니라 수사해야 할 대상을 안 그대로 놔두는 것이다. ‘빼주는 것’이 진정한 권력이고 기술이다.

위원 C 현재 법무부의 피의사실 공표 금지 강화 방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검경이 수사하지 않고 기소하지 않는다면, 즉 재판까지 가지 않는다면 언론의 감시가 약화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사각지대가 생길 텐데 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위원 B 하지만 조국 장관 관련 기사를 보면, 검찰이 예단하고 언론이 이를 기정사실로 만든다. 무서운 일이다. 앞으로 누가 법무장관 하겠다고 나서겠는가? 더욱이 사회가 양분 정도가 아니라 사분오열됐다. 심지어 한 언론사 안에서도 ‘언론의 본령은 살아 있는 권력 비판’이라는 젊은 기자들과 ‘언론이 형식 논리에 너무 집착하다 오히려 공정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라는 데스크급 이상 고참 기자들의 시각이 엇갈리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위원 C 검찰 권력에 대한 통시적 시각도 필요하다. 어떤 검사가 속칭 ‘언론플레이’를 통해 이른바 ‘큰 수사’를 하면서 승진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고 해 보자. 그 검사는 ‘옷 벗고 나가면’ 유명 법무법인(로펌)에 가서 전관예우로 큰돈을 벌 가능성이 상당하다. 어떤 전직 검찰 간부는 1년에 120억 원이나 벌었다고 한다. 아주 단순화해 보면 피의사실 공표가 그렇게 활용된 것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검사는, 다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변호사 돼서 큰돈 벌 사람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심하게 말하면 피의자의 인권, 인생을 대가로 검찰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론이 단독 기사 경쟁에 몰려 이런 장단에 춤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