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한국방송기자대상 기획다큐부문_<시사기획창>회장님의 미국 땅_KBS 노윤정 기자

<해외부동산 추적보고서> 1,2,3편은 KBS 탐사보도팀이 꼬박 1년을 투입해 만든 성과물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한국의 언론 환경에서 기자들이 1년이라는 긴 시간을 하나의 주제에 오롯이 투자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해외 부동산’이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뚝심있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건 부동산의 특수성에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은 제 3자가 자금 흐름의 흔적을 합법적으로, 당당하게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자본 거래입니다. 주식이나 예금, 채권 같은 금융 거래는 접근이 사실상 제한돼 있지만 부동산 거래에는 단서나 흔적이 남습니다. 재벌, 부호들의 은밀한 해외 부동산 거래들을 추적한다면 비자금의 ‘꼬리’를 잡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막연한 기대와 아이디어로 시작한 취재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습니다. 천8백여 명의 방대한 취재 대상을 선정해놓고 나니 영문명을 확인하는 것조차도 간단치 않았습니다. 조사 대상으로 정한 5개주 35개 카운티의 부동산 검색 시스템도 지역마다 제각기여서 애를 먹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초 자료를 수집하는 데만 6개월 가까이가 걸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확인한 취재 대상 거래는 270여 건. 외환거래 신고를 했는지, 세금은 냈는지, 무슨 돈으로 부동산을 샀는지 확인 취재에 들어가자 이번에는 ‘사생활 침해’라는 반발에 부딪혀야 했습니다. 페이퍼컴퍼니까지 동원된 불법성 짙은 거래에도 당사자들은 모르쇠로 대응하기 일쑤였습니다. 어렵게 취재하고 더 어렵게 제작한 <해외부동산 추적보고서 1편-회장님의 미국 땅>과 <2편-회장님의 수상한 법인>은 세월호 보도로 촉발된 공영방송 쟁취 투쟁에 힘입어 무사히 전파를 탈 수 있었습니다.

<3편-회장님의 나라는 어디입니까>는 1,2편을 취재하고 제작하는 과정에 느낀 취재팀의 고민을 담아낸 프로그램입니다. 재벌과 부호들을 상대로 미국 부동산 거래를 한국에 신고했냐, 신고하지 않았다면 무슨 돈으로 샀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심심찮게 돌아온 답변은 바로 ‘나는 미국인입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유학과 미국 지사 근무, 이 과정에 미국에서 자녀를 출산하는 것이 재벌가의 로열 코스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입니다.

떳떳하게 미국 국적을 내세우는 그들의 모습에 취재팀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해외여행조차 자유롭지 않던 시절, 개인 자격으로는 외화 유출이 엄격하게 금지됐던 시절, 대기업의 미국 지사를 발판삼아 해외에 집을 사고, 미국 지사에 근무하며 아이를 낳고, 미국에서 공부를 시키고, 미국 시민권을 자녀들에게 대물림한 것이 과연 이렇게 떳떳한 일일까. 개인의 선택이라는 말로 다 이해하고 넘어가도 되는 걸까. 혹시 국적을 내세워 불법과 반칙을 저지른 경우는 없을까.

이렇게 시작된 3편 취재는 1,2편 취재 못지않게 지난한 과정이었습니다. 천여 명의 재벌 일가를 대상으로 국적과 교육 과정을 조사했고, 외국 국적인 경우에는 병역이나 납세 의무를 회피하지 않았는지 일일이 검증했습니다. 국적 확인을 위해서는 35년 치 관보에 수록된 국적 상실 명단 52만 건을 엑셀로 옮겨 대조했습니다.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취재 과정에는 온갖 인맥과 정보망을 동원해 탐문을 벌여야 했습니다. 재벌가의 개인 정보에 대한 방대한 뒷조사였던 셈인데, 그만큼 역풍도 대단했습니다.

되돌아보면 칭찬보다는 항의와 반발에 더 익숙해져야 했던 지난 1년이었습니다. 한국방송기자대상이라는 큰 영광으로 좋은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최근에는 금감원이 KBS 방송 내용을 토대로 조사를 벌여 65건, 천3백억 원대의 불법 외환거래를 적발했다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가진 돈이 곧 특권이 되는 일이 없도록 감시하겠다고 했던 원고 구절이 헛구호는 되지 않은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취재와 제작 과정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프로그램 기획과 1,2편 취재 과정을 이끌어 주신 이주형 전 탐사보도팀장, 어느 때보다 힘들었던 3편 취재 과정을 흔들림 없이 지켜 주신 안양봉 탐사보도팀장,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루하기 짝이 없었을 자료 조사와 기초 취재를 묵묵히 도와준 김지혜, 정운기, 김대석, 서지윤, 탁희연 리서처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KBS 탐사보도팀 성재호, 노윤정, 김시원, 김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