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회 전문보도부문_소녀상 보셨습니까? 심층분석_KBS 김태형 기자

소녀상 보셨습니까?… 역사 앞에 던지는 물음표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 북유럽의 역사 깊은 도시 한 가운데에 외벽이 타일 형태로 돼 있는 현대식 디자인의 건물이 있다. 식민지역사박물관(The Museum of the Occupation of Latvia)이다. 소련 식민지였다가 나치 독일의 식민지가 되고, 다시 소련 땅에 편입됐다 독립한 라트비아는 오고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도심 한복판에 그들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박물관을 세웠다. 2012년 가을, 그곳을 방문했던 내게 박물관 안내원은 ‘시내 중심가에 박물관을 세웠기에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독일 관광객들도 와서 과거 나치 독일이 어떤 만행을 했는지 보고 간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소련과 독일의 식민지 시절, 라트비아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분노, 그리고 그들의 독립을 향한 열망과 투쟁을 생생하게 기록해 놓고 있었다.
2015년 겨울,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를 했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진정한 사과로 볼 수 없다고 밝혔고,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사과 내용이 모호하다며 회담 결과를 ‘외교적 담합’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분노했고, 전국 곳곳에 더 많은 평화의 소녀상이 잇따라 세워졌다. 소녀상이 건립되면서 ‘소녀상이 세워집니다.’, ‘소녀상이 세워졌습니다.’, 관련 기사도 쏟아져 나왔다. 개인적 경험 때문일까? 소녀상 건립 소식을 전하는 기사를 보게 되면 라트비아 리가의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떠오르고는 했다. 박물관 안내원이 했던 말도 새록새록 기억이 나고는 했다. 그러면서 궁금증이 일었다. ‘평화의 소녀상도 사람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에 세워지고 있는 것일까?’ 궁금증은 취재로 이어졌다.
 
지리정보시스템, GIS를 통한 소녀상 위치 분석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자료를 받고, 여기에 몇 가지 정보를 보완해 무료 프로그램인 구글 마이맵스로 소녀상 지도를 만들어봤다. 역시 시내 중심가에서 소녀상을 찾기란 어려웠다. 더 정확한 분석을 해보기로 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엑셀 자료를 바탕으로 전국주요상권지도를 만들었고, 공개 프로그램인 QGIS를 활용해 유동인구 많은 곳을 나타내는 전국주요상권지도 위에 소녀상을 겹쳐보았다. 2017년 2월 현재, 66개 소녀상 가운데 55개가 주요 상권 밖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접근성이 좋은 도로변에 있는 소녀상은 4개뿐이었다. ‘소녀상 대부분이 상대적으로 외진 곳에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셈이다. 취재를 더 했다. 소녀상 건립 추진을 하던 사람들도 같은 얘기를 했다. “그게 문제입니다. 언론이 소녀상 세운다는 기사를 쓰는 건 좋은데, 우리의 고민에는 무관심한 거 같아요. 더 많은 사람들이 소녀상을 보게 하고 싶은데, 법규나 제도에 막혀서 자꾸 외진 곳으로 내몰리는 느낌이 들어요.”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람·현장 취재·제도·정책 다시보기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봤다. 법과 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지자체와 정부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소녀상과 관련된 이슈의 실체에 다가설 수 있도록 관련 데이터 수집과 분석에 나섰다. 외교 문서 확인도 병행했다. 당연히 현장 취재도 했다.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은 낮에 가보고, 밤에 가보고, 비오는 날 가보고, 수요집회가 있을 때 가보는 등 수차례 찾아가봤고, 수도권과 부산, 원주 등 전국의 소녀상 십여 곳도 현장을 찾아가 확인해 봤다. 소녀상을 만드는 사람들, 지키는 사람들도 만났다. 사진과 인터뷰동영상은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두 달여의 노력 끝에 인터랙티브 지도와 인포그래픽 등이 포함된 11편의 인터넷 기사를 출고했다. 나름 데이터가 있는 스토리텔링을 했다고 생각한다. 기회가 되면 후속 기사도 쓰고 싶다.
기사는 모두가 힘을 모아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데이터저널리즘팀에서 함께 고생한 김웅규 선배와 김양순 기자, 정한진 개발자, 윤지희, 이지연 데이터 분석가, 임유나 인포그래픽 디자이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없었다면 ‘소녀상 보셨습니까’ 기사는 제대로 된 취재를 시작도 못한 채 아직도 내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저널리즘이 원래 그렇다 하지만, 이번 취재를 하면서 데이터저널리즘 또한 협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체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