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제22회_다큐부문_YTN 임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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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하지 못한 말들

YTN 특집기획팀 임수근 기자

한국전쟁 60년, 일제강점 100년, 독일통일 20년. 올해 꼽아본 주요 연표들이다.

특집부서에 있는 기자나 PD들은 이런 해를 맞으면 뭐라도 한 가지는 해야만 한 해가 지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마련이다. ‘총 맞아서 할 거면 아예 자원을 하자’ 처음 생각은 이랬다. 더군다나 지인으로부터 한림대가 한국전쟁 관련 미공개 영상을 갖고 있으니 이걸 활용하면 어떠냐는 제안까지 받은 터였다. 그러나 200만 명 가까운 사상자를 낸, 3년 동안 전 국토를 초토화시킨 이념전쟁은 구비마다 안타까운 사연을 품고 있는 큰 산으로 비쳤다. 이야기 거리가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다.

“타이완으로 간 중국군 얘기는 잘 아실 거고, 혹시 화교 정보원들 한 번 취재해 보세요”

특집을 맡고나서 답답한 마음에 찾아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던진 말이다. 자신도 한국전쟁에 참여한 화교 정보원들에 관심이 많은데 취재해 보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화교들이 한국전쟁에 참여했다는 것은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 솔깃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화교정보원들의 소재를 모른다는 점. 이 연구원은 최근까지만 해도 자신이 인천에 살던 화교정보원 한 분과 연락을 하고 지냈는데 그분이 지난해 돌아가셔서 연구에 어려움이 많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돌아가신 정보원의 이름 석 자만 달랑 가르쳐 줬다. ‘아니 전문가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찾아‘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어쨌든 흥미있는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무작정 명동에 있는 화교협회로 찾아갔다. 화교협회면 그분을 알고 있는 사람한 두 명쯤은 있으리란 계산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아니 운이 좋았다. 선친이 화교정보원이었던 김 모 씨가 마침 화교협회에 일을 보러왔다가 우연히 나를 만난 것이다. 김 씨는 이들 화교정보원들이 몇 년 전 한국정부에 보상을 신청했으나 국적이 타이완으로 돼 있는 화교들은 보상을 못 받았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정보원들의 연락처가 담긴 보상신청서 사본 넉 장을 보내줬다. 취재가 순조로워 보였다. 그러나 보상을 신청한 화교들은 불과 몇 년 만에 대부분 숨진 뒤였다. 딱 한 분 광주광역시에 사는 정보원 한 명과 연락이 닿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분도 몇 년 전 찾아온 뇌졸중으로 말을 못한다고 했다. 방송 인터뷰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화교정보원과의 인터뷰는 결국 필담으로 진행됐다. 몇 년 생이고 언제 한국으로 건너왔으며 중국의 고향은 어디인지 기초적인 사실만 확인하는데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올해 여든인 이 정보원의 기억은 가물가물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작전 내용이나 자신이 당한 고문을 말하는 대목에서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신청했으나 거부된 보상얘기를 했다. 결론은 ‘보상 안 해줘도 되니 한국 화교들이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과 중국군에 맞서 싸운 점만은 알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랬다. 한국전쟁의 당사자들은 할 말이 너무나 많아 보였다. 방송과 신문, 책에서 60년 동안 수없이 한국전쟁을 되짚었어도 자신이 겪은 전쟁의 깊은 속내를 시원하게 말해본 사람은 많지 않아 보였다. 이번에 제작한 <한국전쟁을 말한다>도 마찬가지다. 불과 백여 명의 사람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했으니 천분의 일, 만분의 일도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전쟁 경험 세대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인 듯싶다. 앞으로 10년 뒤에 우리 곁에 남아있을 전쟁 세대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점이 이들의 증언, 경험담이 중요한 이유다.

<한국전쟁을 말한다>는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소재들로 한국전쟁을 재구성하고자 했다. 짧은 시간 내에 한국전쟁 통사를 쓸 수는 없었다. 대표적인 소설가들이 겪은 전쟁 경험담과 여자해병과 소년소녀 학도병, 한국전쟁에 실질적으로 참전한 타이완과 중국군 이야기, 사회의 무관심 속에 힘들어하는 미군, 맥아더의 용병이라며 손가락질 받았던 프랑스 참전군인 이야기들이 주요 소재로 프로그램화 됐다.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전쟁세대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취재진에게 모두 고맙다고 했다. 오히려 고마운 건 취재진이었는데… 이 자리를 빌어 그분들과 같이 취재했던 이성모, 최계영, 장아영 기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방송이 끝나고 나서 좋은 소식, 나쁜 소식이 함께 들렸다. 여군에 자원했던 이수덕 할머니는 방송이 끝난 뒤 전쟁기념관 관계자가 자신을 찾아와 애지중지 소장하고 있던 군복과 용품들을 모두 인수해 갔다고 했다. 전쟁기념관에서 잘 보관할 것이라며 간곡하게 부탁하는 통에 안 내어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어차피 자신이 숨지면 간직해 줄 사람도 없는데 잘 된 일이라며 취재진에게 고맙다고 했다.

광주에 있는 화교 정보원 부인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우리정부에서 보상해 줄 것 같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건강이 무척 악화돼 걱정이라고 했다. 전화상으로는 아주 상황이 안 좋은 것 같았다. 그 분이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