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회 뉴스부문_대형병원 미루다 2살아이 사망_MBC 조국현 기자

환경부와 교육부, 보건복지부로 출입처를 바꿔오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한 가지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이 나라는 참 아이들이 살기 힘든 나라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학원을 다녀야 하고, 어린이집과 유치원 옆에는 유해물질을 내뿜는 공장들이 들어서 있으며, 어린이집 안에서는 심심치 않게 폭행 사건이 일어나고 심지어 부모에게까지 학대를 받는 세상. 믿고 따랐던 선생님들이 어린 제자들을 성추행하는 그런 곳…
 
좋은 소식보다 안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이 많아서겠죠.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변하는데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던 9월30일 금요일 밤이었습니다. 유독 피곤해 10시부터 침대에 누웠던 기억이 납니다. 11시가 갓 넘었을 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알고 지내던 취재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별일 아니겠지’하는 생각에 전화를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 분으로부터 다시 온 전화를 받아들었을 때 저는 전날의 게으름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살배기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대형트럭에 깔려 골반부터 다리가 완전히 부서졌다는 얘기였습니다. 뒤이은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대형병원들이 받아주질 않아서 치료를 받지 못하다 결국 사망했습니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두 살 김민건 군이 처음 이송된 곳은 전북대병원. 수술방이 다 찼다는 이유로 치료에 난색을 표했습니다. 이후 환자를 옮기는 전원 시도를 대형병원 13곳에 하지만, 치료를 하겠다고 나선 곳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지 4시간 만에야 아주대병원에서 “치료가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한시가 급한 그 때, 이번엔 민건이를 옮겨야 할 헬기 담당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입니다. “야근 상황에 따른 매뉴얼 상 다른 근무자를 부르기 전까지 헬기를 띄울 수 없다.” 전북소방본부 관계자의 말을 접했을 때 다시 한 번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결국 중앙응급구조대가 있는 남양주에서 출발한 헬기가 전주로 내려와 민건이를 태우고 수원 아주대병원에 가는 바람에 안타까운 3시간은 또다시 허비됐습니다.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하나씩 사라져 간 거였습니다.
 
사고가 난지 7시간, 자정 무렵에야 아주대병원에서 처음으로 치료다운 치료가 시작됐고 골든타임을 놓친 민건이는 새벽 4시쯤 세상을 떠났습니다. 함께 사고 당한 외할머니 역시 이튿날 삶을 마감했습니다.
 
민건이를 받지 않겠다고 한 병원 상당수는 국비를 지원받고 있는 권역외상센터와 권역응급의료센터였습니다. 수천억원의 예산을 받고도 필요할 때 제 기능을 못하는 사이, 한 아이가 고통 속에 숨을 거둔 것입니다.
 
기사가 나간 뒤 많은 분들이 댓글로, 메일로 함께 분노했습니다. 적어도 ‘아이들은 건강하게, 안전하게 살아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한 격노였을 겁니다. 또 많이 아팠을 아이 하나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어른으로서의 죄책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함께 분노해주는 사람들 때문에 큰 힘을 얻었다는 민건이 부모님, 두 분이 원하는 건 하나였습니다. 더 이상 민건이와 같은 일을 당하는 아이가 없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보건복지부에서 잘못을 저지른 병원에 징계를 내리고, 대책을 내놨습니다. 민건이 부모님의 바람이 이뤄지도록 지켜보고, 감시하는 건 이제 우리 기자들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이달의 방송기자상을 받는 건 정확히 5년만입니다. 그런데 이 ‘수상후기’를 쓰고 있는 제 마음이 기쁘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부끄럽습니다. 기자로서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자문했을 때 ‘부끄러움’ 이외에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을 한 뒤 과연 공정한 보도, 공정한 방송을 하기 위해 노력했나’ ‘나는 얼마나 싸웠나’ 그렇지 못했습니다. 특히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기사를 쏟아낼 때 따라가기에 급급했습니다. 시청자가 원하는 보도,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보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상을 받는 자체가 참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저는 앞으로 이 상을 기억하며, 상 받았던 사실을 내세우며 기자 생활 하지 않겠습니다. 제대로 열심히 보도하지 못했던 것, 잊지 않고 송구한 마음으로 더 치열하게 노력하는 기자로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