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회 뉴스부문_사관생도 뽑는데 산부인과 수술기록 요구 등 연속 단독 보도_YTN 강정규 기자

우리 만 모르는 2줄짜리 문제
 
– 女 생도 뽑는데 ‘과거 산부인과 수술기록’ 내라
– 최종 면접 땐 ‘너희 부모님 뭐하시니?’
 
이번 연속 기사는 이렇게 딱 두 줄로 요약된다.
군대의 작전명령만큼 간단·명료하다.
그러나 우리 군은 무엇이 그렇게 큰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태도다.
우리 군의 의식 수준이 병영 밖의 시민사회와 얼마나 동 떨어져 있는지 보여 준다.
우리사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성 평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민간에서는 오직 실력만 보고 사람을 뽑기 위해 집안 배경이나 부모님의 직업 등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일선 학교에선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가정 방문마저 폐지했다.
그러나 우리 군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마치 흑백 영화의 주인공이 디지털 컬러텔레비전 속에 불쑥 나타난 것처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군은 특수 조직이지만, 분명히 우리 사회의 일부다.
위의 단 2줄만으로도 병영 내에 남아 있는 성차별과 인권침해 문제를 환기시키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취재는 그런 확신 속에 시작됐다.
 
단순 표기 실수로 빚어진 오해일 뿐이다
기사 작성에 필요한 모든 자료는 육군3사관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었다.
처음에 고개를 갸웃 거리게 만든 것은 내년도 신입생 모집요강이었다.
여성 지원자들에게만 ‘과거 산부인과 수술기록’을 내라고 명시돼 있던 것이다.
성차별이자, 사생활침해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선발의 최종 관문인 3차 면접 때 제출하는 설문 자료는 더 가관이었다.
첫 질문부터 달동네나 유흥가, 우범지역에 살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밖에 부모님의 학력이 중졸 이하인지, 어머니의 월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등 상식 밖의 질문이 이어졌다.
리포트는 ‘두 꼭지’로 벌려 제작하기로 했다.
YTN의 보도가 나가자, 국방부는 군 내 성차별과 인권침해 요소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집 요강에 있는‘과거 산부인과 수술기록’이란 용어는 단순한 표기 실수였다며 다음 전형부터 삭제하겠다고 덧붙였다.
남녀 지원자 모두에게 신체검사에 필요한 과거 수술기록 요구하려던 것인데 잘못된 표기로 오해를 샀다는 것이다.
궁색하고 무책임한 변명이었다.
모집 요강엔 산부인과 수술 기록을 제출하라는 문구가 두 군데나 명시돼 있었다.
심지어 ‘여자만’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생도를 선발하기 시작한 2014년부터 이런 실수를 계속 되풀이 해왔다는 뜻도 된다.
오직 합격 하나만 바라고, 감추고 싶은 기록까지 공개해야 했던 여성 지원자들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는 군의 의식 수준을 재확인 시켜준 대답이었다.
 
여성 지원자 성 검열 받는 느낌이었다.”
 
YTN은 후속 보도를 하기로 했다.
첫 보도에 넣지 못했던 육군3사관학교 여성지원자의 목소리를 방송에 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인터넷 카페와 입시 학원 등을 대상으로 인터뷰에 응해 줄 여성 지원자들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다들 합격을 기다리는 처지였기 때문에 선뜻 카메라 인터뷰에 나서겠다는 수험생은 없었다.
어렵게 어렵게 전화 인터뷰에만 응하겠다는 여성 지원자를 찾았다.
이 여성은 모집 요강을 보면서 ‘성 검열을 받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과거 산부인과 수술기록을 내라는 것이 여성 지원자들의 성 생활이 어땠는지 보겠단 뜻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후속 취재과정에서 3사관학교가 여성 생도를 처음 모집할 때부터 값비싼 산부인과 검진 비용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는 점도 추가로 알게 됐다.
민간 병원의 산부인과 검진 비용은 20만 원 안팎으로 5,000원에 불과했던 3사관학교 입시 수수료보다 무려 40배나 비싼 금액이었다.
민원이 빗발치자, 3사관학교는 이듬해부터 최종 합격권 안에 든 여성 지원자들에게만 산부인과 검진 기록을 내도록 제도를 바꿨다.
시험에 떨어진 100명가량의 여성 지원자들은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한 셈이었다.
후속 보도도 2꼭지로 늘렸다.
하나는 단순 표기 실수였다는 군의 해명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여성 지원자들은 과연 모집 요강의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목소리를 직접 들어 보는 내용이었다.
다른 하나는 산부인과 검진비용 논란을 다루면서 군의 행정 편의주의식 뒷북 조치가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켰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게이트 키핑’ 과정에서 첫 번째 꼭지는 빠지게 됐다.
군의 해명에 대한 재반박성 기사가 자칫 출입처와 불필요한 감정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또 ‘팩트’로 비판을 하는 것이 군 당국을 더 아프게 할 것이란 설득도 있었다.
결국 ‘성 검열을 받는 느낌’이었다는 여성 지원자의 말은 방송을 타지 못했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바통은 이미 넘어갔다.
현재 여군 선발 과정에서의 산부인과 검진 기록 제출 문제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다루고 있다.
군 인권 단체가 YTN 보도를 바탕으로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기 때문이다.
인권위의 조사 결과가 나올 때쯤엔 우리 군도 자신들만 모르던 2줄짜리 문제를 자각하게 될까?